[만화로 본 세상]세월호는 한 번만 침몰한 것이 아니다

그림은 위아래 반으로 나뉘어 있지만 담겨 있는 세상은 셋이다. 물 위의 세상, 물 아래의 세상, 물결에 비친/드러나는 세상. 작가는 의도적으로 물 아래 세상과 물결에 비친 세상을 중첩시켜 놓았다.

며칠 전, 한 만화가가 SNS에서 ‘세월호 잊지마세요’ 캠페인에 참여하며 그림 하나를 공유했다. 놀라웠다. 레진코믹스에서 <피아노 마주보기>를 연재하는 한지원 작가의 그림은 지금까지의 만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추문’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데도, 보면 볼수록 그 추문이 확고히 드러나 보였다. 지금껏 한 100번은 이 그림 앞에서 서성였다. 볼 때마다 새로온 것이 보였다.

구둣발에 밟혀 침몰한 종이배
실로 인상 깊었던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먼저 내가 이미 쓴 ‘추문’과 곧 쓰게 될 ‘자기기만’이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 말인지 설명해 두어야겠다. 이것은 오래전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김현은 만화가 문화로도 취급받지 못하던 70년대 중반에 이미 만화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이다. 그의 시각에서 ‘만화는 문학이다’(1977). 그의 견해대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한 구절을 만화로 현 시점에 맞게 살짝 바꾸어 옮기면 이렇게 된다. “[만화]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화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이 존재하게 만든 현실]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안은 수정한 부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현실을 추문으로 만드는 지점을 드러내고 자기기만을 고발하는 일을 만화는 할 수 있다.

한지원 작가의 ‘세월호 잊지마세요’ 캠페인 참여작 그림. | 한지원 작가 제공

내가 아는 한 그동안의 만화는 상당히 직접적인 방식으로 추문을 드러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고, 그것을 알기 쉽게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만화가 천착해온 추문은 이런 것이었다. 만화는 ‘세월호 참사를 존재하게 한 나라’를 추문으로 만들었으며, ‘이 나라의 정치인들’과 ‘이 나라의 기업들’이 늘 그랬듯 그 자체로 추문임을 다시 보여주었으며, ‘구하지 못한 이 시대의 어른들’이 추문임을 고백했다. 다 정말 옳고 또 지겨운 추문이다.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추문을 이미 지목했는데, 더 남은 추문이 있었던가? 한 작가의 그림을 보라.

그림은 위아래 반으로 나뉘어 있지만 담겨 있는 세상은 셋이다. 물 위의 세상, 물 아래의 세상, 물결에 비친/드러나는 세상. 작가는 의도적으로 물 아래 세상과 물결에 비친 세상을 중첩시켜 놓았다. 따라서 물 속/물그림자는 작품의 해석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물 위 세상의 의미도 변하기 때문이다.

먼저 물 위의 세상. 빛바랜 노란 리본이 초라하게 걸려 있다. 어른들은 걷고 있지만, 한 여학생만은 서서 물로 가득찬 도로에 뜬 종이배를 향해 있다. 종이배에는 교복 입은 아이들이 타고 있고, 그 위로 한 남자의 구두가 날아온다. 이대로라면 곧 종이배는 밟히고 만다.

놀라운 것은 그 세상의 아래다. 종이배는 세월호처럼 이미 침몰해 있다. 물그림자일지, 물 속일지 알 수 없지만, 종이배는 이미 남자의 구둣발에 밟혀 침몰했다. 그리고 여자의 구두는 그것을 모르고(혹은 외면하고) 지나쳐 버렸다. 이것이 먼저 강조되어야 할 추문이다. 세월호를 침몰하게 한 것은 ‘구둣발’이었다는 사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이미 침몰한 세월호, 비치지 않는 여학생. 하수구 아래로 세워진 망부석. 그렇다면, 물그림자야말로 그림 밖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물 위 세상에서 빛바래져 있는 리본
이제 시간을 그림 해석에 더하자. 이제 이 그림이 만화라는 것을 다시 상기할 때다. 만화는 연속예술이다. 시간은 만화의 한 축이다. ‘종이배가 밟히고 만다’는 다음 일을 물 위 세상에서 생각했듯이. 그런데 물 속/물그림자에서 이미 종이배는 밟혔고 침몰했다. 그렇다면 물 속/물그림자는 물 위의 미래이며 그림 밖 세계(현실)의 현재다. 거꾸로 말하면, 물 위 세상은 현실의 과거다. 아직 종이배(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던, 하지만 예감되었던 순간이다. 그래서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은 위에만 있고, 아래에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저 리본이 물 위 세상 속에서 빛바래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지금이 아닌가? 이 질문에 이르면, 이 작품의 그림 안팎의 시간-현실 축조가 녹록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따져보면 이렇다. 물 위나 물 속/물그림자나 모두 현재이고 과거이고 미래다. 이 그림 속에는 두 현실, 세 시간이 동시에 새겨져 있다. 이제 아래 위를 번갈아 보면 된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종이배는 남자의 구둣발에 밟혔고, 밟히며, 또 밟힐 것이다. 구두 신은 여성은 외면하며(혹은 모르고) 지나쳤으며, 지나치며, 또 지나칠 것이다. 양쪽에 모두 있는 이미지는 이렇게 해석된다. 그것이 진짜 추문이다.

세월호는 한 번만 가라앉은 것이 아니다. 매번 구둣발에 밟히고 외면되어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다시 쓰자. 세월호는 매번 여러 구둣발에 밟히고 외면되어 수차례 다른 방식으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세월호 1주기였던 어제도 그랬다. 언제까지일지도 알 수 없다. 이 그림 속의 악무한이 멈출 날이 올까? 추문을 보지 못하고, 억압의 정체를 보지 못하는 것을 두고 김현은 ‘인간의 자기기만’이라 말했다. 그러니 다시 묻자. 이 그림 속의 악무한을 누가, 어떻게 멈출까? 주어와 방법이 없는 곳에는 기만이 넘칠 뿐이다.

세월호 정국에서 만화는 많은 애를 썼다. 희생자의 초상을 그린 원로 만화가 박재동, 이동수 화백을 필두로 하여 여러 작품활동과 전시와 참여가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부족하나마 위로를 전했고 사회에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이제 1년이 지났고, 1년 동안 세월호는 여러 차례 밟히고 외면되어 가라앉았다. 그것을 밟은 이가 누군지, 외면한 이가 누군지 우리는 그것을 안다. 이제 그것에 대한 조금은 용감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지원 작가의 작품은 그것을 다채롭게 담고 있었기에 놀라웠다. 굳이 ‘내가 당신을 위로하고 있습니다’라고도, ‘내가 당신을 거리로 뛰쳐나가게 하겠습니다’라고도 말하지 않으면서도 추문만큼은 명확하게 드러내었고 직면하게 했다. 그리고 ‘나’와 ‘우리’라는 추문의 주어를 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로 본 세상

추문을 직면하게 하는 또 다른 만화를, 주어를 되돌려놓는 더 많은 만화를, 세월호 1주기를 보내며 기다린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