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화장-깊이가 느껴지는 원작의 재해석

/명필름

제목 화장

영제 Revivre

제작연도 2014년도

감독 임권택

출연 안성기_오 상무, 김규리_추은주, 김호정_아내

상영시간 94분

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15년 4월 9일

화장. 국어사전을 보니 이 한자어를 쓰는 단어는 9개나 됐다. 그 중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아마도 다음 두 개일 것이다. 화장(火葬)과 화장(化粧). 주인공 오 상무는 화장품 회사의 중역이다. 부인은 뇌종양을 앓다 저 세상으로 떠난다. 화장장이 치러진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를 내건 외국 영화제에 이 영화를 소개하는 평론에는 한국어 ‘Hwajang’의 두 가지 뜻을 설명하고 있다. 중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자 김훈의 소설도?

아니다. 김훈이 200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화장에는 ‘火葬’이라는 한자가 붙어 있다. 어쩌다보니 개봉 날 영화를 보게 되었다. 화제를 모은 건 사경을 헤매는 아내(김호정 분)의 음모 노출 신이다. 다른 리뷰를 읽진 않았는데, 리뷰마다 거론하는 모양이다. 맥락상 에로틱한 욕망 따위와는 거리가 먼 장면이다. 김훈의 원작소설에서 ‘말라 비틀어진 성기 묘사’는 보다 집요하다.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 주인공 오 상무가 야릇한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추은주는 결혼해 애까지 낳는데, 오 상무는 어느 특근날 음식점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머리가 추은주의 산도를 통과하는 것까지 상상한다. 다시 말해, 아이의 머리에 전립선염으로 거의 쓸모없어진 자신의 성기를 투사하는 것이다.

영화에 의해 재해석된 몇몇 장면들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기르던 개 ‘보리’에 애착을 보인다. 병실에도, 원작소설에는 없는 별장에서도, 살아 있는 개의 웃는 사진을 작은 액자에 넣어 항상 옆에 둔다. 개는 순종적이다. 온전히 자신에게 속해 있는 존재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다. 자신이 낳은 존재가 아닌데도 그가 세상을 떠나면 생명을 거둘 수 있는 권리-보리라는 이름은 내세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지어준 이름이다-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을 남편이 제대로 키울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안락사하는 것이 차라리 행복해서라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남편이자 주인공인 오 상무는? 외면상 그 역시 순종적이다. 생명이 꺼져가며, 발작적으로 질투를 하는 아내에 대해 군소리 없이 인내하며 병수발을 한다. 그런데 그의 내면은 끊임없이 이제 막 입사한 젊은 처자, 추은주를 향한다. 아내와 마지막 여행에서 비아그라를 먹고 관계를 할 때도 사정하는 순간까지 머릿속에는 추은주의 나신(裸身)을 떠올린다. 그리고 추은주가 보낸 술. 임종을 앞둔 아내는 ‘여자의 직감’으로 그것이 자신의 경쟁자가 보낸 것이라는 걸 안다. 술을 마시고 괴로워하는 아내. 임종한 아내는 자신의 별장으로 그 술을 여러 병 택배로 보낸다. 홀로 여생을 보내야 하는 오 상무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 역시 영화에만 등장하는 이야기다.

원작소설에서는 오 상무와 전혀 교감이 없던 추은주는 영화에서는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다. 시쳇말로 오 상무와 추은주는 ‘썸’을 탄다. 유부남 상사와 여직원의 사내 연애는 당연히 흑역사이겠지만, 파혼해 다시 솔로로 돌아간 추은주는 경쟁회사의 외국지사로 지원해 취직하며 오 상무를 찾아가려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애틋한 감정’을 방해할 요소가 사라졌지만, 오 상무는 그 만남을 거부한다.

터치스크린

임권택 감독은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누구나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지만 더 나아가지는 않는” 일이라고 했다. 추은주의 몸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남성적 욕망이 읽힌다. 은밀한 욕망의 정당화. 신기한 것은 그게 추잡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말년 작품들이 연상됐다. 거장은 거장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