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원의 에브리컬처]좋은 음악은 마음으로만 알 수 있다

각종 TV 예능프로들만 봐도 신인이나 프로 할 것 없이 저울에 올려져 합격 또는 탈락이라는 지극히 대학입시스러운 판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대학입시적 사고방식은 이젠 대중음악까지 지배하고 있다.

얼마 전 폴 매카트니가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가졌던 라이브 녹음을 들었다. 이젠 노년에 접어들어 느긋하게 음악을 즐기며 노래를 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멋들어진 것이었는데, 여기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매카트니는 ‘My very good friend the milkman’이라는 곡 도입부에서 기타 연주에 맞춰 휘파람을 불고 들어가는데, 계속해서 키(key)를 못 맞춰 애를 먹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버벅거린 것인데 매카트니는 슬쩍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그렇죠.”

이 대목에서 나도 웃었다. 만약 매카트니가 영화 <위플래쉬>의 세계에 있었다면 뼈도 못 추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 <위플래쉬> / 에이도스 인터렉티브 제공

절대실력자의 신기에 가까운 지적질
<위플래쉬> 보셨는지?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채찍질에 대한 얘긴데, 줄거리인즉 이렇다. 극완벽주의-다혈질-욕쟁이-폭군인 명문 재즈스쿨의 선생 ‘플레처’는 방년 19세 재즈 드러머 지망생인 주인공 ‘앤드류’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거의 학대에 가까운 수준의 폭력적 지도편달질을 이어간다. 덕분에 처음에는 한없이 순한 양이었던 주인공은 점점 온 드럼세트, 나아가 온몸을 피칠갑하며 폭주하게 되는데, 음악영화로 시작해서 액션영화를 거쳐 거의 호러에 근접하는 사태까지 나아가는 그 과정이란 흠, 꽤 볼 만했다. 얼마 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영화가 사디즘을 파고든다면서 애처롭게 기염 토했다만, 이 영화의 제자 학대에 비하면 나노섬유로 옆구리 간지럽히기다.

아무튼.

이 영화의 중추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재즈스쿨의 선생인 플레처라는 인물인 바, 그는 거의 음악기계에 가까운 신기를 선보인다. 예컨대, 그가 카운트(라봤자 밑도 끝도 없는 ‘하나, 둘, 셋’이 전부)하고 들어간 템포에서 제자 앤드류가 0.004퍼센트 정도 빗나가자, 그걸 제대로 해낼 때까지 “(지금 너의 템포가) 빨라? 아니면 느려?”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뺨을 때린다(총 4회). 그 뒤 이어지는 고함과 욕설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우리나라 같으면 학생들에게 즉각 동영상 찍혀서 폭행죄로 경찰에 고발되고 뉴스 나갈 행위다만, 플레처에겐 거칠 것이 없다. 왜! 실력이 있으니까!

내가 이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내내 동의할 수 없었던 대목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실력’에 대한 이 영화의 정의 말이다. ‘절대 실력자’ 플레처는 10명이 넘는 편성의 빅밴드에서 채 2초의 연주도 듣지 않고 틀린 학생을 잡아내고, 악보의 몇 페이지 어느 마디 몇 번째 박에 무슨 음이 있는지를 전부 암기하는 등등, 실제로 그런 광경을 본다면 무척 놀라울 묘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때문에 플레처를 대단한 뮤지션이라고 칭송하진 않을 것 같다.

자, 여기에서 떠오르는 앨범이 하나 있다. 에릭 클랩튼의 2001년 공연 실황인 「One More Car, One More Ride」라는 앨범이다. 여기에서 ‘Got You On My Mind’라는 곡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그는 하필이면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뜻하지 않게 목소리가 두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본의 아닌 요들 창법을 구사한다. 본인으로선 공연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본인도 흥에 겨워 ‘자, 이 부분은 스튜디오 녹음하고는 약간 다르게 불러서 라이브의 맛을 살리자’라는 생각이었겠으나, 결과는 안타깝게도 본의 아닌 요들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삑사리사(史)에 아마도 가장 깊이 새겨진 족적은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앨버트 킹이 남긴 것일 것이다. 그는 그의 추종자이자 음악적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이하 ‘SRV’)과 함께 잼 세션을 갖는데, 그 현장이 「In Session」이라는 앨범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 앨버트 킹은 음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삑사리의 향연을 선보인다.

앨버트 킹이 누구인가. 그는 비비 킹과 함께 일렉트릭 블루스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대가 중의 대가, 명인 중의 명인이 아닌가. 그런데 60세라는 적지 않은 당시의 연세 때문이었는지, 자신을 신처럼 숭배하는 후배 앞에서 방심한 탓이었는지, 아무튼 SRV와의 잼 세션이 있었던 그날 이 앨범에 녹음된 총 11곡 거의 모두에서 그는 툭하면 정상적인 음계를 벗어나 안드로메다로까지 외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삑사리는 특유의 빈틈없는 연주를 보여줬던 SRV의 연주와 대조되며 더욱 더 두드러져 보이고 있는데, 아마도 SRV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이 「In Session」이라는 앨범은 결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밥 딜런’이 탈락하고 있을까
이 두 양반뿐이 아니다. 일렉트릭 기타의 역사에서 천재 중 천재라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 역시 많은 라이브 앨범들에서 굵직한 삑사리의 족적들을 다수 남기고 있고, 밥 딜런의 후기 공연실황을 들으면 아예 앨범 전체에서 ‘술주정 창법’으로 일관함으로써 아예 삑사리와 안 삑사리 사이의 경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거장들 역시 플레처의 강의실에 들어갔다가는 필시 귓방망이 연타의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뭔가. 이 ‘거장’들은 모두 전 세계를 상대로 거장을 사칭하며 몇십 년 동안 사기행각을 벌여온 희대의 음악 사기꾼들이었단 말인가!

됐고.

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하셨을 것이다. 좋은 음악을 위해서는 여러 기본기와 지식들을 연마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초일 뿐이다. 그 지반 위에 세워지는 음악은 결코 숫자나 점수 같은 것으로 계량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마음으로, 오로지 마음으로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담긴 음악은 언제나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손가락과 성대가 간혹 매끄럽게 굴지 않더라도.

물론 <위플래쉬>가 ‘음악 실력’에 대한 이런 단순화를 한 것은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영화 후반, 플레처가 작은 재즈클럽에서 연주하는 느릿느릿 소박하고 정감 있는 피아노 연주가 그 증거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음악을 다루는 방식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이 이야기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각종 TV 예능프로들만 봐도 신인이나 프로 할 것 없이 플레처식으로 작동되는 저울에 올려져 합격 또는 탈락이라는 지극히 대학입시스러운 판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대학입시적 사고방식은 이젠 대중음악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생각한다. 만약 밥 딜런이 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아마 1차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을 텐데, 라고.

한동원의 에브리컬처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밥 딜런들을 예선 탈락시키고 있을까.

<한동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