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상상 고양이>-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위로를 받는다

나는 배 위에서 잠을 자는 복길이를 바라보고, 위로를 얻는다. 종현도, 복길도 모두 버림받아 혼자 남은 존재다. 둘은 다시 인연을 맺고 함께 기대고 살아간다. 사람과 정서를 나누며 함께 사는 동물들을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익숙한 풍경이다. 혼자 사는 외로운 작가가 있고, 그의 집을 찾아온 고양이가 있다. 좁은 방에서 동거하는 사람과 고양이, 고양이와 사람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에서 그린다. 동물이 나오는 일상만화는 기본은 한다. 안정적인 소재인데, 그만큼 뻔한 이야기가 될 위험도 있다. 또 작업실 타령, 또 고양이 타령. 이 위험을 어떻게 비켜갈 것인가.

상투성의 위험을 비켜가는 힘은 솔직함 뿐이다. 일상만화의 힘은 바로 솔직한 일상에서 나온다. 늙은 고양이의 일상을, 덜 유명한 만화가의 일상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보는 독자들에게는 ‘피식’ 하고 웃음이 날 정도의 단순한 일상이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순간들을 발견해 그걸 모아 붙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 앉아 샴푸통의 성분표시를 읽는 그런 행위들을 만화 안으로 끌어오는 일은 섬세한 감각이 없고서는 찾아내기 힘든 일이다. 일상만화를 그리는 많은 작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 섬세하다.

김경 작가의 만화 <상상 고양이>. / 다음 만화속세상

혼자 남은 종현과 길고양이의 만남
작가는 특별편에서 “‘종현’은 제 분신과도 같고 그 이야기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한 내용”이라고 밝힌다. 작가는 대면하기 힘든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찾아내 만화로 가져온다. <상상고양이>는 대화보다는 내레이션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내레이션이 많이 활용되면 자칫 감상적이기 쉬운데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이 어색하지 않다. 선과 색 하나까지 섬세하게 배려해 작업한 작가의 감성이 포착한 일상의 에피소드는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고 진실되게 독자의 감성과 만난다. 이 솔직함이 <상상고양이>의 힘이다.

더불어, 상투성을 비켜간 두 번째 미덕은 알콩달콩 벌어지는 사람과 고양이의 동거 이야기를 포기하고 만난 지 10년이 지난 시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동물만화가 주는 팬시함을 버리고 오래 묵은 위로를 선택한 셈이다. 시작하자마자 10살이 넘은 고양이라니,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게다가 주인공 나(종현)와 고양이 복길이는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주는 사이다. 10년의 시간 동안 어떤 감정을 쌓아왔는지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지만, 만화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버림받아 유기된 복길이는 거리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낡은 처마 밑에서 종현과 마주한다. 우연히 만나 함께 살게 된 지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고양이는 늙어서 뚱뚱해졌고, 어떤 일에도 좀처럼 흔들리는 일이 없다. 고양이 복길이도 첫 가족에게서 버림받아 거리를 떠돌았지만, 주인공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없었고, 형제도 없었으며, 어머니는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게다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까닭에 대해 종현은 ‘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평생을 쪼들리며 힘겹게 모으신 재산을 송두리째 날리셨는데… 아마 그 때문에 세상을 버리신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10대 후반에 마지막 남은 피붙이인 어머니와 이별하고 성인이 되었다. 종현은 마치 무덤 같은 고시원에서 살며 노동을 했다. 비교적 임금이 후한 인천국제공항 활주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또래 친구 수현을 만나 친해진다. 종현에게 새로 생긴 친구 수현은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존재였다. 하지만 수현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수현이 남긴 유서에는 ‘종현아, 미안하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종현의 마음은 병들었고, 약을 먹었으며, 자해를 했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 복길을 만난 것이다. 17·18화에서 감당하기 힘든 힘겨운 시간을 담담하게 설명한 뒤 바로 복길이를 등장시킨다. 침대에 돌아누운 나의 등 뒤로 복길이 나타난다. 복길은 나의 배 위에 올라 잠을 잔다. 나는 배 위에서 잠을 자는 복길이를 바라보고, 위로를 얻는다. 종현도, 복길도 모두 버림받아 혼자 남은 존재다. 둘은 다시 인연을 맺고 함께 기대고 살아간다. 사람과 정서를 나누며 함께 사는 동물들을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만화는 일반적으로 검정색 외곽선을 사용한다. 하지만 <상상고양이>는 갈색 외곽선을 사용한다. 흑백만화는 아니지만, 색의 사용을 억제하고 갈색 중심의 빛바랜 사진 같은 효과를 낸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의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에서 흔히 보는 ‘세피아톤’과 비슷하다. 세피아톤은 오래 묵은 흑백사진처럼 조금 더 차분하고 친숙하게 혼자 사는 주인공과 오래된 고양이의 일상을 보여준다.

한 칸은 사람, 다른 한 칸은 고양이의 시선
만화는 가로 2칸이 배치되어 아래로 스크롤된다. 왼쪽 칸은 사람의 시점에서, 오른쪽은 고양이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수평적으로 같은 위치의 칸은 동일 시간대의 사건을 각각 사람과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면이며, 필요에 따라 한쪽 시선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위에서 아래로 읽어도 좋고, 좌에서 우로 읽어서 다시 아래로 내려와도 좋다. 간혹 커다란 칸이 나올 때도 있다. 이 칸은 사람과 고양이 두 시선을 모두 포괄하는 전지적 시점이다. 만화 형식 중 가장 중요한 기준인 ‘칸’을 단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크리스 웨어처럼 적극적이지 않아도 두 주인공의 관계를 담아내기에 적당하다. 여기에 색상도 사람 쪽은 갈색 선으로, 고양이 쪽은 초록 선으로 되어 있어 좀 더 명확하게 두 시선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고양이 쪽이 초록인 이유는 고양이가 세상을 바라볼 때 초록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다. 이런 시도들이 반갑다.

만화로 본 세상

<상상고양이>는 매주 업데이트되는 작품을 꼬박꼬박 챙겨 보지 않아도 좋다. 문득 마음이 외로울 때 그 자리에 있는 이 만화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예상하듯 10년이 넘은 고양이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 종현은 ‘문득문득 생각한다. 복길이가 사라지면 내 주변의 공기는 얼마나 희박해질까…’ 이런 걱정을 하다가도,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고양이는 매번 즐거움과 위안과 따스함과… 이런저런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준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종현과 복길, 사람과 고양이는 남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시선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 잘 어우러진, 매력적인 작품인 <상상고양이>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위로를 받는다는 소박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처음부터 혼자인 사람은 없다. 살다 보면 혼자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하고, 셋이 되기도 하고… 조금씩 다를 뿐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