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신과 함께>-만화의 ‘편견’을 깬 희로애락의 감동

<신과 함께>를 통해 나의 만화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선입견은 거의 무너졌다. 지금은 ‘새로운 기대’라는 이름의 ‘편견’을 가지고 만화를 본다.

만화평론가랍시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끔 듣는 얘기가 있다. “외모가 참 만화 같으세요.” ‘만화’ 관련 일하는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씀이니 칭찬이겠지 싶으면서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한 비유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대체 어떤 만화 같다는 거죠?”

만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품들의 그림 세계는 실로 다종다양하다. 눈·코·입을 거의 점 서너 개로만 채워넣는 그림체가 있는가 하면, 선과 명암과 색깔과 그림자 등등을 총동원하여 거의 사진 같은 느낌으로 얼굴을 묘사하는 그림체도 있다. 신체 비율과 얼굴 각 부분의 할당도 제각각이어서 만화마다 12등신과 2등신이 다 존재하며, 별빛이 담긴 눈이 얼굴의 50%를 차지하는 그림과 입술이 그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그림이 있다. 그러니 대체 어떤 만화인지 궁금할 밖에.

주호민 작가의 만화 <신과 함께> | 네이버웹툰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물론 거꾸로 생각하면, “만화 같은”이라는 표현은 말하는 사람이 ‘만화 같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다양한 의미가 담겨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만다. 결국 발화자가 기대고 있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만화의 대표적인, 혹은 지배적인 이미지가 대화를 위해서라도 전제되게 마련이다. 다른 문예 분야에서라면 이런 말들이 예가 되겠다. ‘배우처럼 생겼다’거나 ‘목소리가 음악 같다’거나 ‘인생이 영화’라거나 하는 말들. 이런 비유에서 얻게 되는 지배적인 인상이 그 문예 분야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을 공산이 높다.

그 경향을 추측해보자면, ‘배우’는 잘생기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의미로 주로 인물 좋은 주인공 역할을 뜻하겠지. 따라서 인물이 썩 뛰어나지 않은 조연 배우를 의미했다면 아마도 결례일 것이다, ‘음악’은 아마 최소한 데스메탈은 배제하고 있을 테고, ‘영화’도 다큐멘터리와 SF, 하드고어 정도는 해당되지 않을 성싶다. 이렇게 생각할 때, “만화 같이 생겼다”는 말은 아마도 ‘익살스럽게 생겼다’거나 ‘어딘가 과장된 구석이 있는 외모’라는 의미가 아닐까?

문득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그런 지배적인 이미지가 꽤나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편견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예를 들어 만화에 대한 편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갈은 이런 거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야!”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는지는 알 수 없으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말하는 분은 자신이 ‘만화’를 파악하고,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하지만 더 말할 것도 없이, 그가 아는 만화는 만화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일 터다. 빙산의 일각도 못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빙산이려니 생각하는 그런 사고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일면 이해는 간다. 나도 한때 비슷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적이 있기에.

어린 시절 나는 엄청나게 만화를 봐댔다. 그렇게 본 만화들이 나의 만화에 대한 인상을 만들었고 나는 그 인상대로 만화에 접근했다. 그 인상은, ‘만화는 웃기고 유쾌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것’(앞글자를 따서 ‘웃유재즐’이라 부르자)이라는 편견이었다. 내가 본 만화들이 대개 그런 요소를 담고 있는 당시의 주류 만화였던 탓도 있었겠지만, 사실 나는 순정만화도 꽤 본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순정만화도 ‘웃유재즐’로만 읽으려 애썼다. 유시진의 <쿨핫>이나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 카> 같은 꽤나 성숙한 만화들을 보면서도 나는 ‘웃유재즐’의 부족만을 감지하며 뭔가 다른 감상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굉장히 낯설어 했던 거다. 심지어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를 보면서도 나는 그 공포를 ‘재미’로만 소화했다. 뭔가를 잘못 알고서 그걸 고수한다는 건 이런 결과를 낳는다.

그러던 내가 ‘웃유재즐’의 편견을 그나마 벗은 것은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였다. 그즈음 공부로 인해 내가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다시 알아나가기 시작하던 나는 한 작품을 만나고서 만화평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논문을 쓰다가 무심코 클릭한 웹툰 <신과 함께>에서 내가 느낀 것은 ‘웃유재즐’을 압도하는 슬픔과 아픔이라는 이름의 감동이었다. ‘웃유재즐’도 분명히 있었지만, 재미나 즐거움이라는 말로는 담아내지 못할 여러 감정이 그 작품에는 있었다. 댓글에서 본 독자들의 감상 또한 내가 느낀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담은 따뜻한 말부터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까지. <신과 함께>를 통해 나의 만화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선입견은 거의 무너졌다. 지금은 ‘새로운 기대’라는 이름의 ‘편견’을 가지고 만화를 본다. 이 만화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주려나, 무엇을 가르쳐 주려나, 나의 어떤 부족함을 깨우쳐 주려나, 기대하는 편견이다.

주호민 작가의 만화 <신과 함께> | 네이버웹툰

만화로 본 세상

웃음과 재미를 압도하는 슬픔과 아픔
그렇게 <신과 함께>로 쓴 글로 데뷔하여 만화평론가 노릇을 한 지 이제 5년째다. 여전히, 혹은 갈수록 더 조심스럽다. ‘만화가 무엇이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말을 고르게 되고 망설이게 된다. 만화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순간, 그 무엇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결국 만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가 무엇인지를 말해야 할 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이런 만화도 있어요” 하며 작품을 들이미는 일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6년 만에 또 한 번 <신과 함께>를 들이밀어 본다. “이 작품엔 희로애락이 다 있습니다. 이것도 만화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일부죠” 하며. 그리고 이 글도, 그 일부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