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Ho!」-시선을 맞추는 소통의 로맨스, 그리고 치유

작가는 의도적으로 Ho를 그릴 때 클로즈업 하이앵글로 잡아준다. 이 구도는 눈을 맞추고 Ho를 바라보는 원이의 시야와 일치한다.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를 몰래 훔쳐보는 욕망의 시선이 아니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관계의 시선만 보여준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보여준 묵시적 증언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 시절보다 삶의 질은 ‘대단히’ 좋아졌지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노동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불가능한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펙을 쌓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회장 선거에 나서고, 사교육은 여전히 불야성이니까. 그렇게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서도 토익점수를 따고, 어학연수를 떠나며, 취업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니까. 어렵게 회사에 들어가도 불안한 비정규직 신세를 면하기 어려우니까. 아니, 그보다 한 사람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문득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

만화들 중에 ‘치유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만화가 있다. 장르는 아니지만, ‘만화 좀 보는’ 독자들에게 낯선 구분은 아니다. 일본의 만화 독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장르 용어다. 치유계의 대표작은 <카페 알파>(이시나노 히토시)다. 어떤 일이 있고 난 뒤 바다의 수면이 점점 상승하고 있는 지구. 조만간 문명이 사라질 것 같은 시대에 사람과 똑같은 로봇 ‘알파’가 ‘카페 알파’를 운영한다. 이 카페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조용히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치고, 누군가가 오고 간다. 이 심심한 만화를 보며 우리 마음은 위로를 받는다.

치유계 만화는 서스펜스도, 노력과 승리도, 대결도, 격한 사랑도, 출생의 비밀도 없다.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조보다는 칸 안에 살아 있는 캐릭터들을 잡아낸다.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나 계속 사건이 벌어지는 일일드라마가 아니라, 그저 우리 옆에 그들이 있는 것 같다. 내 감정을 격정적으로 ‘올렸다/내렸다’ 하기보다는 잔잔하게 함께 나눈다. 그렇게 이 힘겨운 삶의 톱니바퀴를 잠시 멈추어준다.

작가 억수씨의 만화 / 네이버웹툰

잔잔하고 심심하지만 위로가 있다
오늘 이야기할 억수씨의 는 다른 치유계 만화와 달리 비교적 사건이 명확하다. 이야기는 두괄식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다 TV 화면을 끄고 나서, 주인공 원이의 내레이션으로 만화가 시작된다. “얼마 전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Ho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Ho는 울면서 좋다고 했다. 결혼이란 걸 내가 해도 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중략) Ho는 착한 아이고 똘똘하고 사랑스럽고 예쁘다. 눈이 너무 커서 밤에 보면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하고,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려 조금 부담스럽고, 장애가 있어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고, (중략) 나는 Ho를 사랑한다.” 내레이션만 보자면, 전형적인 로맨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당연히 갈등이 있어야 한다. 격렬한 사랑과 엇갈림 같은 그런.

하지만 는 미묘하게 다르다. 원이가 Ho에게 프러포즈를 한 뒤 어머니께 허락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가 둘의 첫 만남을 보여준다. 대학에 막 입학한 원이는 학원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원장은 원이에게 ‘말을 할 순 있지만, 귀가 안 들리는’ Ho를 맡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학원의 골칫덩이를 떠맡은 모양새였지만, 둘은 잘 맞았다. 원이는 “그냥 우연히 주파수가 맞았다”고 생각했다. 원이는 Ho를 평범한 아이처럼 대해줬고, Ho는 원이를 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Ho는 학원을 그만뒀다. Ho가 준 전화번호를 잃어버린 실수도 있지만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둘은 당연히 제 갈 길을 간다.

원이는 평범하게 군대를 가고, 연인을 만나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다. 애인도 있다. 원치 않는 접대에 나가기도 하고, 회사의 부조리함에 엮이기도 한다. 뭔가 완벽한 여자친구에게는 빈틈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외롭고, 쓸쓸하다. 2차를 피해 도망치다 우연히 고등학생이 된 Ho를 다시 만난다. 원이는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여자친구에게는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PC방에 처박힌다. 이야기의 흐름은 찌질한 남자 캐릭터와 착한 소녀의 연애담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흔한 로맨스물처럼 밀고 당기지 않는다. 대신 눈앞에 어딘지 손 잡아주어야 할 것 같은 Ho가 있을 뿐이다.

의 치유는 ‘시선’에서 나온다. 들리지 않아 구화를 해야 하는 Ho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눈을 맞춰야 한다. 귀가 안 들리는, 아무 반응이 없던 초등학생 Ho에게 원이가 눈을 맞추자 대화가 시작된다. Ho는 대화를 위해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한다. 원이도 Ho에게 집중한다. 그렇게 둘 사이에 관계가 형성된다. 원이는 ‘Ho 덕분에 의미 있는 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원이와 Ho, Ho와 원이는 자신을 바라봐 준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를 보다 보면, 원이의 시선과 하나가 되는 걸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Ho를 그릴 때 클로즈업 하이앵글로 잡아준다. 이 구도는 눈을 맞추고 Ho를 바라보는 원이의 시야와 일치한다.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를 몰래 훔쳐보는 욕망의 시선이 아니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관계의 시선만 보여준다.

찌질남과 청각장애인의 순수한 사랑
작가 억수씨의 능숙한 작화 역시 일본 만화풍 미소녀와 다른 사랑스러운 주인공을 창조했다. 턱선이 좁아 소위 ‘V라인’에다가 도톰한 입술을 갖고 있는 원이의 여자친구 무진과 달리, Ho의 얼굴은 동그랗고 눈과 입으로 풍부한 표정을 보여줄 뿐이다. 원천적으로 섹슈얼리티가 발화할 수 있는 여지를 모두 삭제했다. 가 치유계 만화가 될 수 있는 출발은 여자주인공 캐릭터 Ho가 섹슈얼리티와 결별하면서부터다.

만화로 본 세상

는 네이버에서 연재 중이고 단행본 1권이 거북이북스에서 출간됐다. 를 설명하는 카피는 ‘청각장애인 Ho와 찌질남 원이가 펼치는 연애이야기 같지 않은 연애이야기’다. 여자 주인공 Ho에게서 섹슈얼리티를 삭제하는 것만큼, 화자이자 남자 주인공인 원이에게는 카피처럼 ‘찌질함’을 계속 강조한다. 는 원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계속 말한다. “찌질해도 괜찮아, 모두 괜찮아!” 서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는 상식이 사라진 시대, 의 순수한 로맨스는 치유의 손을 내민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