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나는 쎄시봉을 듣지 않고, 정태춘을 듣는다

정태춘의 1990년대 문제작 ‘아, 대한민국’이나 ‘우리들의 죽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화도 없는 이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산물인데, 지금 이 순간 다시 들으면, 금세 눈물이 주르르 흐를 만큼, 여전히 살아 있는 음악이다.

길 위에서 음악을 듣는다. 이는 어떤 은유가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쓴 것이다. 역마살이라고 했던가. 어디 따스한 사무실에 앉아서 일에 몰두하지 못하고 사시사철 경향 각지를 떠돌며 글도 쓰고 강의도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실제로 길 위에서 음악을 듣는다.

길 위에서 듣는 음악은 각별하다. 능곡의 내 작업실에는 그럭저럭 오디오 전문가들에게 힐난을 듣지 않을 정도의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어 뭔가 집중하고 몰두해야 할 음악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두문불출로 그 앞에 틀어박혀 앉아서 광맥을 찾듯이 음악을 듣지만, 대체로는 길 위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음악을 듣는다. 그럴 때 듣는 음악은 암막 커튼처럼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틀어놓는 것이지만,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들 듯이 완전한 방음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게 주변의 소음과 음악이 서로를 밀쳐내는 희미한 공간 사이로 나는 운전을 하거나 기차의 차창에 머리를 대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러는 순간, 갑자기 음악이 또렷이 들려올 때가 있다. 제법 구색을 맞춘 오디오 앞에서 듣는 음악보다 더 강렬하게, 간절하게, 절실하게 명치끝을 움켜쥐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 그 순간 그 음악은 단순한 선율이나 어떤 장르가 아니라 나의 취향과 기억을 통과하며 스파크를 일으킨 우리 시대의 어떤 삶의 무늬이자 표정이다. 그것을 독자들과 함께 듣고 싶다.

1990년대에 발매된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앨범.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예언의 노래가 된 ‘에고, 도솔천아!’
이를테면 지난주에는 경기도 평택의 일이 생각난다. 새 학기부터 강의를 하게 된 학교를 찾아가기 위하여 강변북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였고 귀가할 때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봉담 쪽으로 가다가 그만 평택으로 하향하는 도로를 이용했는데, 그 끝이 새로 건설되는 거대한 미군기지였고, 어느 이정표에 ‘도두리’라고 쓰여 있었다.

도두리! 2006년 평택 미군기지를 둘러싼 이 일대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이 먼저 떠오른다. 미군기지의 남쪽 방향에 ‘도두리 게이트’도 완공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적어도 내 추억의 골짜기에서 이 지명은 정태춘의 노래 ‘에고, 도솔천아!’와 직결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섬말 고개 넘어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 도두리벌 뿌리치고 먼 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물론 정태춘이 이 노래를 만들고 불렀을 때는, 도두리가 미군기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5년도에 발표한 걸작 앨범 <북한강에서>에 수록된 ‘에고, 도솔천아’는 급속한 도시 산업화와 황폐해져 가는 시골 풍경을 오버랩시키는 그 당대의 일반적인 문예정서, 즉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이나 이문구의 ‘공산토월’ 또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같은 작품들과 흡착되는 ‘고달픈 탈향’을 다룬 작품인데, 아뿔싸, 그로부터 20년 후 정태춘이 나고 자란 평택의 도두리벌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뜻하지 않은 예언의 노래가 된 셈이다. 정태춘은 자기가 나고 자란 도두리에서 기지 건설에 맞서 싸웠다.

정태춘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매우 희귀하고 그래서 존귀한 인물이다. 잠시 내 기억을 빌리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19살 때부터 2년여 동안 음악다방 DJ를 했다. 고교 앞 분식집이나 대학가 앞 카페에서 판이나 갈아끼우는 알바 판돌이가 아니라 직업적 DJ였다. DJ 메카인 종로까지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청량리, 돈암동, 미아리 등에서 일했다.

그 무렵 음악다방 DJ는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초보 견습 DJ는 낮 시간에 손님 뜸할 때 멘트 없이 음악만 튼다. ‘뉴힛팝송 대백과’ 같은 책을 놓고 줄 치고 외우는 수련기다. 이렇게 수련하는 DJ는 그렇게 밑줄 치고 외우다 끝난다. 음악은 암기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친구들은 LP 음반에 동그라미가 쳐 있는 음악을 무조건 튼다. 선배 DJ가 마땅한 곡이 없으면 동그라미 쳐 있는 거 틀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스모키의 ‘왓 캔 아이 두’ 같은 곡들이 그렇다. 그 다음 단계로 세컨드 DJ가 있다. 오후 4시에서 7시 즈음에, 간단한 곡목을 소개하면서 음악을 튼다. 다방으로 걸려온 전화로 손님 이름을 불러주는 멘트 정도는 가능하지만 자유자재의 멘트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때 낮에 견습을 하던 DJ가 DJ박스 구석에서 이 세컨드 DJ를 도우면서 음악을 ‘배운다.’ 그렇게 음악을 배우는 친구들은 계속 그런 일만 하다가 끝이 난다. 음악은 암기과목이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메인 DJ가 있다. 대체로 저녁 8시 이후 마감 때까지 황금시간대에 능수능란한 애드립을 치면서 음악을 튼다. 이때 세컨드 DJ가 박스 구석에서 신청곡을 찾아 턴테이블에 세팅을 하면서 메인 DJ의 다양한 팁을 배우게 된다. 메인 DJ는 손님들, 단골들, 예쁜 여성들과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세컨드 DJ를 두 달 한 후, 곧장 메인 DJ가 되어 2년여 동안 ‘내 인생의 황금시절’을 보냈다. 잠시 군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동아시아 최고의 핫 플레이스인 청담동의 화려한 재즈클럽으로까지 진출했다. 그곳에 찾아온 어느 선배가 ‘왜 이렇게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바람에 내 황금시절은 끝났지만 말이다.

대학가나 변두리 모두에서 통했던 가수
하여간 그 시절 음악다방의 DJ들은 슬슬 미묘한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나 늦가을 11월 같은 때, 70년대의 포크송을 많이 틀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7080 쎄시봉’ 음악들 말이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어떤 포크송은 이상한 마찰을 일으켰다. 돈암동이나 신촌 같은 대학가에서 잘 통하는 포크가 있고 청량리나 영등포 같은 변두리에서 잘 통하는 포크가 따로 있었다. 트윈폴리오를 비롯하여 한대수, 양병집은 대학가에서 틀기에 적당했지만 이를 변두리에서 틀면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았다. 대신 김정호나 이명훈이 더 열렬했다. 가령 김상배 작사·작곡의 ‘날이 갈수록’은 변두리 다방에서는 어색했다.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 물결…” 그 시절, 모두가 대학에 가서 캠퍼스를 거닐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양쪽에서 온전히 통했던 가수가 정태춘이다. MBC 신인가수상과 TBC 가요대상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장한 정태춘은 서서히 사라져가는 농촌의 정한(‘에고, 도솔천아’)과 도시에 진입하여 헛헛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애틋한 마음(‘촛불’, ‘시인의 마을’)과 인간의 존재론적 번민(‘북한강에서’)을 서정적으로 노래하였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로 시작되는 ‘떠나가는 배’는 노래가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되는 경지의 득의작이다.

정태춘의 노래가 귀한 것은 이런 시적 경지뿐만 아니라, 비애로 시작한 ‘에고, 도솔천아’의 정태춘이 옛 추억이나 회고하고 과거의 추억이나 팔면서 ‘감성팔이’를 하는 퇴행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의 90년대 문제작 ‘아, 대한민국’이나 ‘우리들의 죽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화도 없는 이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산물인데, 지금 이 순간 다시 들으면 금세 눈물이 주르르 흐를 만큼 여전히 살아 있는 음악이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18살의 발길을 붙잡은 ‘진도 혼맞이 노래’

‘쎄시봉’이라고 했던가. 그 시절의 스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순회공연도 하고 또 그 시절 이야기를 다룬 같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 음악들은 아름답고 영화 또한 수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시절의 다양한 삶을 전적으로 차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점에서는 ‘좋은 시절을 잘 만나서 청바지 입고 생맥주 마시고 미팅하면서 좋은 시절을 보낸’ 그런 노래들로 그 시절의 삶들이 일방적으로 기록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쎄시봉을 듣지 않고, 정태춘을 듣는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