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애연가 홈즈, 담배로 수사 실마리 풀어

뒤팽 이후 등장한 많은 탐정이 애연가였다. 그 중에서도 담배와 관계가 깊기로는 셜록 홈즈가 으뜸일 것이다. 홈즈의 그림이나 영화 포스터 등을 보면 항상 사냥모자와 파이프 담배를 볼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할 때쯤이면 다양한 목표를 머릿속에 그린다. 대부분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목표를 정해 놓겠지만, 시작할 때의 단단한 각오와는 달리 작심삼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성공률 낮은 쪽으로 꼽자면 ‘금연’은 상위권에 속할 것 같다. ‘올해는…’ 하고 벼르던 사람들 중에는 때맞춰 담배 가격이 대폭 상승하자 화가 나서라도 금연에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결심하기도 한 것 같다.
10여년쯤 전에는 담배 가격 인상을 놓고 작가들이 반발한 적이 있었다.

‘애연가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문인들이 경제적 부담과 창작활동 감퇴를 우려해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삼라만상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홀로 원고지와 씨름하는 문인들에게 담배 한 개비는 유일한 안식처”라며 “2000원으로 친구는 살 수 없지만 담배 한 갑은 살 수 있듯 담배는 가난한 문인에게 둘도 없는 벗”이라고 호소했다.’(경향신문 2004년 11월 18일)

담배 피우는 셜록.(드라마 <셜록>에서).

담배 규제에서 자유로운 소설
과거에는 애연가 작가가 수두룩했다. 한국 추리소설의 선구자인 김내성은 1930년대에 하루 열 갑을 피울 정도의 애연가로 알려졌다. 당시의 담배 한 갑에는 열 개비씩 들어 있었으므로 모두 100개비, 지금 기준으로는 하루 다섯 갑의 양을 피운 셈이니 ‘줄담배’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흡연 인구가 줄어들었으며,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추리소설가들 중에는 담배를 아예 안 피거나 금연한 사람이 더 많아졌다. 다만 작가가 흡연자건 비흡연자건 흡연 장면 묘사에는 거리낌이 없다. 담배는 작품 속에서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소도구로, 담배를 피우는 습관, 태도를 통해 인물이나 상황 묘사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연지역도 점점 늘어나고, TV에서는 담배가 모자이크 처리되어 방영될 정도로 혐연권은 점점 커져 가지만 소설에서는 아직 그런 규제가 없어 흡연 묘사는 얼마든지 나온다.

금연 주식회사.(영화 <캐츠 아이>에서).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1844)는 명탐정 오귀스트 뒤팽과 그의 친구가 한 시간 가까이 아무 말도 없이 담배만 피우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 묘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뒤팽 이후 등장한 많은 탐정이 애연가였다. 그 중에서도 담배와 관계가 깊기로는 셜록 홈즈가 으뜸일 것이다. 홈즈의 그림이나 영화 포스터 등을 보면 항상 사냥모자와 파이프 담배를 볼 수 있으며, 홈즈를 연기한 덕택에 담배 광고에 출연한 배우도 있을 정도이다.

홈즈는 점토 파이프와 벚나무 파이프, 브라이어 파이프를 번갈아 썼다. 점토 파이프는 무겁고 깨지기 쉽지만 타르 흡수가 잘 되는 편이어서 쾌적(?)한 흡연이 가능했다고 한다. 반면 벚나무 파이프는 가볍고 깨지지 않아 휴대하기는 편하지만 불에 타기 쉬워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홈즈는 명상에 잠길 때는 점토 파이프를,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벚나무 파이프를 사용했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브라이어 파이프는 브라이어 나무 뿌리로 만들었는데, 앞의 두 파이프의 장점을 모두 갖춰 홈즈의 애용품이 되었다.

줄담배 탐정의 선구자인 그가 깊은 사색에 잠겨 밤이라도 꼬박 새울 때에는 1온스(약 28g)가량의 담배를 피우는데, 밀폐된 방에서 그만큼 피운다면 산소 결핍으로 오히려 사고력이 둔화되지 않았을까 의문스럽긴 하다. 한편 담배와 관련된 괴벽도 전해진다. 페르시아 슬리퍼의 코 속에 파이프 담배를 넣어두는가 하면 전날 피우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 벽난로에 잘 말린 다음 아침식사 전에 피우는 근검 정신도 발휘한다. 또한 홈즈는 단순한 애연가에 그치지 않는다. ‘파이프와 시가, 궐련 등의 담뱃재 140종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현장에 떨어진 담뱃재를 보고 그것이 어떤 담배인지 단번에 알아볼 정도의 감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담뱃재를 일부러 흘려가면서 범인의 자취를 증명하는 솜씨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담배에 관한 한 가히 장인(匠人)이라고 할 만하다.

샘 스페이드.(영화 <몰타의 매>에서).

재만 보고도 담배 종류 아는 홈즈
20세기 초반 등장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3대 주인공은 하나같이 줄담배를 피우는 애연가이다. 샘 스페이드(대실 해미트의 <몰타의 매>에 등장)는 담배를 직접 말아서 피우고, 필립 말로(레이먼드 챈들러 <빅 슬립> 등)는 카멜 담배를 피우며 사무실에서 생각할 때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또 루 아처(로스 맥도널드의 <움직이는 표적> 등)는 30년간 줄담배를 피우다가 1968년 돌연 금연을 선언하지만, 완전한 금연에는 실패했는지 가끔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21세기에 출간된 작품에서도 애연가들이 이어진다. 올리버 푀치의 <거지왕>(2010)에 등장하는 주인공 야콥 퀴슬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체포되었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이 ‘사랑해 마지않는 담배’였으며, ‘뭔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때’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플래티나 데이터>(2010)에서 살인사건 수사를 맡은 형사 아사마는 금연 구역에만 가면 답답해서 안절부절못할 정도의 애연가이다. 전자는 17세기의 독일, 후자는 미래의 일본으로 때와 장소가 판이하게 다른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담배를 갈구한다.

셜록 홈즈.(<공포의 계곡>의 삽화).

예외는 물론 있다. 빌 프론지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Nameless) 탐정은 40대 후반의 중년 남성으로 원래 애연가였으나 원인 모를 심한 기침에 폐암의 공포를 느껴 금연을 선언한다. 이 사람은 소설 속의 인물이니 담배 끊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테지만, 실생활 속에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담배 끊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나는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끊어 봤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처럼, 금연에는 금단증상이라는 커다란 고비가 있다. 다양한 금연 방법이 알려졌지만, 모두 성공하지는 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가서 금연에 실패한 사람도 부지기수일 테니, 자력으로 금연하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회사가 있으면 좋을 듯하다. 다만 그런 아이디어는 이미 스티븐 킹이 작품을 통해 내놓았다. 그의 단편소설 <금연 주식회사>는 제목 그대로 금연을 원하는 사람에게 확실한 금연을 하도록 책임져 주는 회사의 이야기이다. 가격이 비싼 대신 성공률이 100%에 육박하는 이 회사에는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알려드릴 수 없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최근 21세기를 배경으로 원작을 재해석한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는 홈즈도 담배를 끊으려 노력하고, 생각에 잠길 때면 여러 장의 니코틴 패치를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끊지 못하는 것을 보면, 탐정과 담배는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사이인 것 같다.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