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살인청부업이 현실서 안 되는 이유

꾸준히 고객을 유치하려는 양심적(?)인 청부업자라면 다음 세 가지 정도는 지켜야 할 것 같다.

①의뢰는 반드시 성공시키고 ②고객이 범죄와 관련이 없어 보이도록 해야 하며 ③약속한 보수 이외에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추리소설에서는 흔히 나오지만 실제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 있다. 바로 탐정과 살인청부업자이다. 탐정업은 몇 년 전부터 제도가 허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던 만큼 언젠가는 번듯한 간판이 눈에 띌 날이 올 것이다. 살인청부업자의 경우에는 설마 범죄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 같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1930년대 미국에는 실제로 ‘살인 주식회사’(Murder, Inc.)가 존재했다. 뉴욕에서 갱 두목 루이스 부컬터가 설립한 이 회사의 주고객은 경쟁상대인 갱, 밀고자, 보호비를 내지 않는 상점 주인을 없애길 원하는 갱들이었다. 회사 소속의 킬러들은 지시를 받으면 마치 출장업무를 하듯 살인을 저지른 후 보수를 받았다. 1931년 만들어진 이 회사는 10년 만인 1940년 두목과 간부들이 체포되면서 와해됐다. 그 기간 중 이들에 의해 살해된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너무 진지하지는 않게 재미삼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살인청부업자’를 자영업이라는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자.

살인 주식회사의 간부들.

목표물이 거물일수록 보수 비싸져
과연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우선 무기 사용(미국 등에서는 총기)이나 싸움에 능숙해야 하니 체력이 필요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뛰어난 머리는 필수이며, 마지막으로 보편적인 도덕관념 같은 것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주로 전투를 경험한 전직 군인, 용병이 이런 일에 뛰어들곤 한다.

꾸준히 고객을 유치하려는 양심적(?)인 청부업자라면 다음 세 가지 정도는 지켜야 할 것 같다. ①의뢰는 반드시 성공시키고 ②고객이 범죄와 관련이 없어 보이도록 해야 하며 ③약속한 보수 이외에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악’인 살인을 저지르는 만큼 그들은 위험부담에 따르는 많은 보수를 원한다. 흥정이 벌어질 때도 있지만 목표물이 거물이면 요금은 더욱 비싸지게 마련이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자칼의 날>(1971)에 등장하는 전설적 킬러 ‘자칼’은 1963년 드골 대통령의 암살 청탁을 받자 50만 달러(현재 가치로 380만 달러에 해당)를 요구하여 의뢰자를 당혹스럽게 했다.(결국 의뢰인들은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까지 털어야만 했다)

좀 더 세월이 흘러 등장한 존 그리셤의 <펠리컨 브리프>(1992)에서는 한 건당 10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거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살인청부업자 카멜이 등장한다. 30년 남짓 사이에 20배 이상 보수가 뛰어오른 셈인데, 오랜 경력으로 명성을 쌓으면 이처럼 거드름 피우면서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다. 보수는 대개 선금으로 절반을 받고, 나머지는 업무를 마친 후 받는 것이 보통이다. 의뢰인과 청부업자가 만난 자리에서 선금을 받고 사라지거나 잔금을 주지 않을 가능성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계약이 합의된다. 그런데 신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보니 A J 퀸넬의 <크리시 2: 죽음을 부르는 사나이>(1992)에서는 전설적 용병 크리시의 이름을 팔고 선금 25만 달러를 받은 뒤 달아나버리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총을 살펴보는 자칼.(영화 <자칼의 날>에서).

물론 경력이 일천하면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테리 화이트의 <한밤의 암살자>(1984)에 등장하는 초보(?) 청부업자 맥은 의뢰인이 2만5000 달러(현재 약 5만7000 달러)를 보수로 제시하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자동차와 컬러TV까지 살 수 있겠다고 흥분한다.

이후에는 상황이 조금 변한 것 같다. 제프리 디버의 <코핀 댄서>(1998)에 등장하는 ‘코핀 댄서’는 100만 달러를 받고 실행에 나서는데, 수사관 링컨 라임은 그를 체포한 뒤 “프로 청부살인은 요즘 수요가 달린다”면서 너무 많은 보수를 준 것 같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추리소설에서도 자영업 살인청부업자가 줄어드는 추세인지도 모른다.

알코올 중독 무면허 탐정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알려진 로렌스 블록은 1990년대 중반부터 ‘켈러’라는 살인청부업자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탄생시켰는데, 그는 마치 1930년대의 살인 주식회사를 방불케 하는 모종의 조직을 통해 지시를 받고 의뢰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업무를 수행한다. 어쩌면 미국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조직이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켈러 시리즈 최신작 <히트 미>(2013).

의뢰인은 킬러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까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활개를 치고 있지만, 현실적인 감각으로 바라본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이런 사업을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아무리 자영업이라도 사업을 하려면 시장조사를 해야 하는데 ‘살인’ 수요에 대한 시장조사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홍보도 불가능한 만큼 자신의 실력을 알릴 방법도 없다. 혹시 한 번쯤 성공해서 이름이 나더라도 범죄자에게는 국가적 수배령이 내려지는 법. 의뢰인보다는 그를 쫓는 수사관의 숫자가 훨씬 많을 터이니 이후의 활동도 불투명해진다. 결국 정기적인 활동이 없으니 수입도 없어서 직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차라리 훌륭한 살인청부업자로서의 실력을 가졌다면 그 능력으로 다른 직업을 택하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살인청부업이 성공하기 어려운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불안감일 것이다. 남에게 범죄를 맡길 때는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면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비록 자신이 직접 저지르지 않더라도 남의 손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는 것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을 자신의 발밑에 놓아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라도 체포될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감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동장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살인청부업자를 찾아갈 사람은 세상에 극히 드물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난관이 많은 살인청부업자는 소설 속에서나 명성을 높일지언정 현실에서는 전망이 아주 불투명한 직업(?)이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마지막으로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 하나가 있다. 음모를 꾸미는 의뢰인은 유명한 살인청부업자와의 연락방법을 신통하게 알아낸다. 그들은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으로부터 쫓기는 몸일 테니 신분이나 연락처 등을 숨기고 있을 텐데, 의뢰인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서 알아냈을까? 작가도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