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실리콘밸리, 사회적 책임 다하고 있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흔한 구호 중 하나가 ‘세상을 바꾸자’(Change the World)이다. 가끔 미국 TV에서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는 이 말에는 이들 기업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밥 노이스가 1957년 페어차일드를, 그리고 1968년 인텔을 창업한 이래 이곳은 미국과 전 세계 첨단기술산업의 메카였다. 지금도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수많은 기업들이 위치한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기술, 새로운 기업을 대표한다. 따라서 이들이 하는 말이 아주 허황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그들 역시 세상 속에서 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교통앱 회사인 우버는 미국 각 주와의 규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오바마 미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을 총괄했던 데이비드 플러프를 고용했다. 이렇게 워싱턴 DC에서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긴 건 플러프뿐만이 아니다. 페이스북에도 수많은 백악관 출신자들이 있다. 정치적 무장 강화는 ‘악하게 되지 말자’를 모토로 내세우는 구글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내 정치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오픈시크릿 사이트에 따르면 구글의 연간 로비 금액은 2003년 20억원 미만에서 2012년 180억원 이상으로 지난 10년 동안 9배 가까이 상승했다.

첨단기술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전경. | 경향신문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항상 그들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기업들도 점점 기성 기업들과 하는 행동이 비슷해지는 부분이 많다. 책임정치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컴퓨터, 인터넷 기업은 의약, 보험, 오일과 가스에 이어서 가장 많은 로비를 하는 산업군이다. 넘치는 자금을 이용해 정치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고용하고 로비자금 규모를 늘린다.

다른 측면에서 실리콘밸리를 비롯, 스탠퍼드대가 있는 사우스베이와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이스트베이를 포괄하는 지역인 베이 에리어의 땅값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문제도 있다. 실리콘밸리에 자금이 넘쳐나자 이어서 사우스베이의 땅값까지 높아졌고, 그에 따라 많은 기업과 고용인들은 낮은 고정 비용을 좇아 샌프란시스코와 이스트베이로 이주했다. 그 탓에 샌프란시스코와 이스트베이의 땅값마저 천정부지로 올랐다. 특히, 급격한 지가 상승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하층민들이 이런 변화에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을 바꾸고, 지구를 바꾸고, 21세기를 바꾸겠다는 이들이 같은 베이 에리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구글 통근버스를 멈춘 사건들은 이런 긴장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한 적절한 대응의 부재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지가 상승 문제가 심각해진 데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책임도 있다.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지주들이 임대용 건물을 고급주택으로 개조해 매매하는 등의 행위를 제한해 사태가 확산되는 걸 지연시키는 대신 주정부는 지주들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처럼 주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져야 할 책임을 면제해 주는 건 아니다. 실리콘밸리는 기존 기업들에 비해 얼마나 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가? 사회적 견제가 없다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라고 해서 공존공생을 위한 자신들의 책임을 기꺼이 지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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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이미 권력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여러 산업의 리더이고, 경제구조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갈수록 더 큰 영향력을 워싱턴에 발휘하고 있고, 베이 에리어의 도시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 같은 권력이 자신들의 힘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런 권력은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과 사회, 그리고 정부의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스스로를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을 신뢰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김재연 <대학사용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