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좀비스쿨-B급 영화의 괴작

BoXoo 엔터테인먼트

제목 좀비스쿨

감독 김석정

출연 백서빈, 하은설, 김경룡, 김승환, 박재훈

러닝타임 87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4년 9월 25일

괴작의 탄생이다. B급 영화라는 게 원래 이런 것이었지, 라는 걸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B급 감수성을 일깨워준 감독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보도자료의 기획의도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왜 하필 좀비 영화였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글쎄, 딱히 구체적인 이유는 없다.” 말하자면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인용하면 거두절미다. 이어지는 감독의 말은 다음과 같다. “그저 좀비라는 존재가 인간을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꼭 세상에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택했던 것일 뿐.” 본능적 감각이다. 패기가 느껴진다.

한 10여년 전쯤,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책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의 관객들이 자동차 동시상영관 극장에 공포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비웃기 위한 것’이라고 묘사해놓았기 때문이다. 허셀 고든 루이스의 영화들이나, 오늘날 하나의 하위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좀비영화의 원류쯤으로 인식될 조지 로메로의 영화들을 보면 웃기진 않기 때문이다. 이후 1970년대 말 미국이 배경무대라고 주장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공포영화들에서는 확실히 그런 요소가 있다. 이를테면, 엔딩 장면에서 좀비워킹을 하는 몇 사람을 띄엄띄엄 세워놓고 뉴욕 전체가 좀비에게 점령당했다고 주장하는 <살인마 쟘비>(루치오 풀치 감독, 1979) 같은 영화들 말이다.

영화 좀비스쿨의 착상은 구제역 파동이다.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된 돼지들의 원혼이 좀비돼지를 만들어냈고, 그 돼지에 물린 사람들은 광견병에 걸린 사람처럼 세상을 활보하는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이다. 이 얼마나 어이없지만 또 한편 창의적인 설정인가! 사실 B급영화의 대부라고 불리는 로저 코먼의 영화들이나 오늘날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되는 트로마사에서 내놓는 영화들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다 이런 ‘어이없는’ 설정을 담은 영화다.

학교나 군대, 병원과 같은 근대 감시기구의 권력관계를 돼지 사육으로 비유하는 것 역시 너무나 진부한 클리셰다. 하지만 감독은 낯빛 하나 변함없이 이 진부함을 밀어붙이고 있다. 게다가 주옥 같은 대사들의 향연이다. 점잖은 언론 관계자 시사여서 그런지 별 반응은 없었다. 그래도 부천과 같은 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확실히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덧붙인다면 영화는 전통적인 좀비영화의 장르적 규칙에서도 이탈해 오컬트적 요소를 결합한다. 칠판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주인공들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한편의 영화 값을 내고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거, 이거야말로 양수겸장의 창조경제를 구현한 것 아닌가!

배우들의 열연도 눈에 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주인공 정식은 난데없이 등장하는 소품, 수류탄으로 이 지옥 굴을 박살낸다. 엔딩에서 좀비로 변한 친구를 살리겠다고 쇠우리를 끌고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비장미란! 특히 지도교사로 열연한 박재훈의 연기가 눈에 띈다. 비열한 교사에서 후반부의 좀비로 변신하기까지 그의 진지한 존재감은 괴작으로서의 정체성을 한층 빛낸다.

터치스크린

과연 얼마나 관객들이 이 ‘저주받은 괴작’을 극장에서 만나게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B급영화 마니아라면 필견이다. 진심이다. 감독은 B급영화의 진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거 “나만 당할 수 없지” 하면서 포털영화 소개에 별점 다섯 개 주기따위 테러, 결코 아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