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의 문화의 발견]“재미 없으면 책값 돌려드립니다”

<이와 손톱>은 빌 밸린저의 대표작으로 초판 출간 당시 결말 부분을 봉한 뒤 봉한 부분을 뜯지 않고 가져오면(즉, 결말을 읽지 않아도 좋다는 독자라면) 책값을 돌려준다는 대담한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런 지면에 내 손으로 만든 책에 관하여 노골적으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지만 그동안 속 썩이지 않고 마감도 열심히 지키며 ‘문화의 발견’을 썼으니까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MBC <뉴스투데이>에서 이런 뉴스가 보도되었다. “한석규가 영화 <이와 손톱> 출연 제안을 받고 세부사항을 조율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2007년 화제를 모았던 공포영화 <기담>을 연출한 정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고 알려져…….(중략)”

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제아무리 유능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잘나가는 배우가 출연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공중파에서 보도되어도 영화라는 건 여봐란 듯이 극장에 걸리기 전까지는 개봉 여부를 장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밀양> <주홍글씨> <화차> <은교>

결말을 봉인하고 출판한 추리소설
출판사를 창업하고 지난 아홉 해 동안 내가 만든 100여종의 소설 가운데 영화화 얘기가 보도된 적이 있는 책은 라면땅에 들어 있는 별사탕만큼이나 많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과 주연을 동시에, 민규동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썼다며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졌던 모모한 영화들의 원작 소설이 전부 내가 만든 책이었다. 그때마다 이런 훌륭한 감독이 맡았다면 당연히 원작소설도 잘 팔릴 거야, 디카프리오가 주연이라니 원작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시간문제겠어라는 기대를 가지고 밤잠을 설쳤다.

물론 영화화가 된다고 해서 원작소설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출판사가 지나치게 영화화에 목을 매는 것도 딱히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기대를 가지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은가. 영화화된다는 소설만 쫓아다니며 경쟁하듯 판권료를 올려 구입한 것도 아니고, 내용이 좋아서 출간을 결정했는데 뒤늦게 영화로까지 제작된다니 이참에 책도 잘 팔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기대는 편집자라면 누구나 다 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려 온 세월이 어느 새 아홉 해를 넘기는 동안 100여종의 소설 가운데 단 한 종도 지금껏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내가 만든 책이 영화화된다는 뉴스를 봐도 이렇다 할 감흥이 없다. 되면 좋겠지만 아마 아니 될 거야, 기대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심지어 <이솝 우화>의 신포도처럼 ‘이 책은 이러저러해서 영화로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중간에 엎어질 듯’이라며 안 될 이유를 찾기도 한다.

“반전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기 어렵다”
“사람들은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을 영상화하기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런 류의 스토리야말로 영화로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은 박찬욱 감독이 <이와 손톱>의 각색이 왜 어려운지 설명하며 내게 들려준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1955년에 출간되었다. 이미 반세기도 더 전에 반전이 공개됐다는 얘기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사실이 다 들통난 마당에 누가 영화를 보러 가겠나.

내가 이 소설의 한국어판을 내자고 마음먹은 것은 2007년 무렵이다. 당시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쓸쓸한 사냥꾼>이라는 코지 미스터리를 편집하던 중이었는데 이 책에 보면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이와 손톱>이라는 책을 트릭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탐정 역의 등장인물이 설명하는 책 소개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와 손톱>은 빌 밸린저(1912~1980)의 대표작으로 초판 출간 당시 결말 부분을 봉한 뒤 봉한 부분을 뜯지 않고 가져오면― 즉, 결말을 읽지 않아도 좋다는 독자라면― 책값을 돌려준다는 대담한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아마도 소설의 초고를 읽은 편집자가 ‘이런 전개라면 결말을 안 궁금해 할 수가 없겠다’며 감탄하던 중 마케팅 회의에 들어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는 식으로 사장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엉겁결에 봉인이라는 발상을 했을 거라고 나 혼자 상상해 보는데, 어쨌거나 봉인해 놓으면 뜯어보지 않고는 못 견딜 거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과연 봉인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영문판 결말 봉인본은 좀처럼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책이 출간되고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거니와 레어 아이템이 돼버린 탓도 있겠다. 문득 출판강국 일본에서 이런 아이템을 놓쳤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판을 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초판의 결말부를 봉인해 두었고 덕분에 어떻게 제작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제작을 조금만 알면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대수(에 대해서는 본지 1074호 연재 때 설명한 바 있다)에 맞춰 본문을 편집한 다음 결말부가 포함된 페이지의 첫 대수에 삽지를 끼워 제본하고 수작업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역사책 중간에 들어가는, 접혀 있다가 펼치면 펼쳐지는 지도나, 중학교 때 풀던 <이달학습> 뒤쪽에 학생들이 보기 힘들도록 접힌 답안지를 떠올려도 무방하다.

결국 한국어판을 낼 때도 초판에 한해 결말을 봉인본으로 제작했다. 책이 기대 이상으로 잘 팔렸는데 듣자하니 본사의 오랜 독자들은 대개 두 권씩 구입했다고 한다. 한 권은 봉인된 부분을 뜯어 내용을 읽어야 하고, 다른 한 권은 결말이 봉인된 상태 그대로 보관해 두어야 한다면서.

대관절 결말이 어떤 내용이기에 영문판에 이어 일본어판을 거쳐 한국어판까지 결말을 봉인했단 말인가. 어차피 팔 만큼 팔았기 때문에 호기롭게 결말을 공개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나에게 주어진 지면이 여기까지라 어렵겠다. 다만 아까도 얘기하다시피 1955년에 쓰인 작품이니까 판권 페이지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동서양의 추리소설들을 꾸준히 섭렵해 온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김홍민의 문화의 발견

그럼에도 영화로 만들려면 어떻게든 원작의 결말이 가졌던 묘미를 살리면서 종래의 구태의연함을 탈피하여 지금의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병렬적 결말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워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아 역시 영화화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라는 자포자기적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마치 내 생각에 동조라도 하듯 한석규씨 소속사 측에서 “<이와 손톱> 출연에 관해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반박기사 비슷한 걸 낸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영화화 여부에 상관없이 소설 <이와 손톱>은 언제든 서점에서 구할 수 있으니까 궁금하시면 지금 주문을, 하는 정도로 해둘까.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