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곤충도감보다 더 꼼꼼한 나비 탐구

어린이·청소년책 100선 / <세밀화로 보는 나비 애벌레><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쉽게 풀어쓴 우리 나비>

팔랑팔랑, 나풀나풀, 여린 몸으로 공기를 가르며 우아한 날갯짓을 하는 나비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호랑나비와 배추흰나비 외에는 아는 나비 이름이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곤충의 이름을 줄줄 욀 수는 없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이 일게 된다.

학교에 있으면서 저마다의 상처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가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건넨 책이 도감이었다. 도서관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도감은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기기에 좋았다. 문학 책처럼 연결해 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의 눈빛 교환이 전부던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건 이름이 뭐게요?”하고 교정의 풀을 꺾어 들고 오고, “이거 학교 오는 길에 많이 폈던데 이름이 달개비였네요”하면서 지나쳤던 식물에 관심을 보이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비 실제 크기와 같은 그림
내 어린시절에 아버지께서 열심히 가꾸신 뒷마당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앵두를 따 입에 넣던 그날 처음으로 나비 애벌레를 발견하게 됐다. 나뭇잎을 만지면 손가락에 배던 알싸한 향이 좋아 습관적으로 산초나무 잎을 건드리는 순간 초록색으로 꿈틀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순식간에 내뽑던 노란 뿔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던 기억. 그 이야기에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그것의 이름을 물었다. 호랑나비애벌레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도감을 들춰 찾아봤지만 멋진 나비 한 마리만 있을 뿐 애벌레는 수록되지 않았다. 애벌레의 생김새를 보여 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세밀화로 보는 나비 애벌레>(권혁도 글·그림, 길벗어린이)에서 호랑나비애벌레를 찾은 날 다시 한 번 아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사진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애벌레 세밀화의 은은한 초록색은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14종류의 애벌레 모습과 습성을 입말로 풀어썼다. 그리고 애벌레 생김새를 확대 그림으로 나타내 부위의 명칭과 쓰임새도 이야기한다. 배 밑 부분은 보기 힘든 애벌레를 그림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보여 주는 것이 더욱 좋다. 알에서 갓 나온 1령부터 허물을 벗으며 자라는 5령, 번데기, 날개돋이(우화)하는 모습 등 성장의 전 과정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표현했다.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애벌레 허물을 확대 그림으로 보여 줘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뒷부분에는 소개된 애벌레의 나비 모습을 보여 줘 호기심이 애벌레에서 나비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같은 작가가 같은 곳에서 펴낸 또 다른 책 <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에는 실제 크기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를 들고 들판을 다니고, 애벌레를 키우기까지 한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많은 나비 모습과 나비들이 모이는 꽃을 그림으로 알려 준다. 사계절을 지내는 나비 모습을 그림으로 보다 보면 눈앞에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쉽게 풀어쓴 우리 나비>(김정환 글·리강 그림, 사파리)는 도감은 딱딱하고 사진만 담겨 있다는 생각을 바꾸게 해 주는 책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비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몸의 구성’ ‘나비의 한살이’를 먼저 짚어주고, 날개의 확대 그림을 보여 줘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50종류의 나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부류의 설명이 끝나면 나비의 습성을 재미있는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다음 나비와 공생관계에 있는 개미, 먹을거리, 생명력, 나비와 나방의 분류법 등을 알기 쉽게 풀어 뒀다. 한 종류의 나비가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이나 봄형과 여름형의 차이, 애벌레로 겨울을 나는 나비 또는 나비 형태로 겨울을 나는 나비 등 나비의 다양한 모습과 습성을 그림과 사진으로 알려 준다. 특히 좋은 점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나비 모습과 접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비의 알과 애벌레 사진도 함께 수록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이름을 술술 이야기해 주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자연에 눈을 돌리고 감성을 나누는 어른으로 자란다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무서운 뉴스를 조금이라도 덜 보게 되지 않을까? 도감을 들고 공원 나들이를 하는 가족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배수진<대림중 사서교사>

<세밀화로 보는 나비 애벌레>의 저자 권혁도씨
“많이 관찰할수록 잘 그릴 수 있습니다”

<세밀화로 보는 나비 애벌레>(2010)와 <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2009)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권혁도 작가(55)는 세밀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1955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추계예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던 그는 1995년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의 공동 작업에 곤충 부문을 맡으면서 ‘생태그림책 화가’의 글로 접어들었다. 그 후 <세밀화로 보는 곤충도감>(2001)의 그림을 혼자 그렸고,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 (2003)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 이>(2006) 등 책에서는 글까지 직접 썼다.

“세밀화 작업을 계속할수록 꽃과 나비를 실제 크기로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시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를 들고 다니며 꽃 사진을 찍고, 나비 애벌레를 데려와 키우면서 작업한 책이 <… 꽃과 나비>입니다.”

곤충이나 식물을 따로 떼어 그린 도감과 달리 여러 생명체가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을 담은 이 책은 무려 5년이나 걸려 완성됐다. 봄 14장면, 여름 14장면, 가을 8장면, 겨울 4장면으로 구성된 풍경 세밀화에는 97종의 나비와 160종의 꽃, 39종의 곤충이 들어 있다.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세밀화 작업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먼저 카메라와 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 자연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필요한 곤충이나 먹이식물을 채집한다.

한 컷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진을 100장 찍을 때도 있고, 베란다에서 알이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몇달씩 관찰하기도 한다. 밑그림을 그린 뒤에는 바늘 끝 같은 0호 붓으로 수채화 물감을 사용해 채색하는데 하루 종일 그려봐야 잠자리 날개 한 장이 고작이다. <… 꽃과 나비>의 큰 그림은 한 달에 한 장밖에 못 그렸다.

“많이 관찰할수록 잘 그릴 수 있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지만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까 점점 빠져들게 됐지요.”
처음 세밀화 작업을 할 때는 꿈도 곤충 꿈을 꾸고, 사람 얼굴을 보면 방아깨비·사마귀·메뚜기를 떠올렸다. 어느 날 아침 방문을 여니 책상서랍 안의 사마귀 알집에서 사마귀 250마리가 나와서 뛰어다니고, 쉬파리의 한살이를 관찰하기 위해 아내 몰래 된장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았다가 미움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 나온 <… 나비 애벌레>는 <… 꽃과 나비>의 작업 과정에서 생긴 ‘덤’이다. 2003년 4월께 애호랑나비 애벌레의 먹이식물을 준비해 두려고 천마산에서 족두리풀을 채집해 왔는데 잎사귀 밑에 나비알 13개가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11마리의 애벌레가 깨어나면서 이들이 줄지어 풀잎을 갉아먹고 잠을 자고 허물을 벗는 과정을 모두 관찰했다. 먹이가 부족해 9마리는 산에 풀어놓고 2마리만 계속 기른 결과 한 달 뒤인 5월에 낙엽 속으로 들어가 여름·가을·겨울을 다 보내고 이듬해 3월 나비가 돼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비의 화려한 색깔과 날갯짓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와 번데기로 지내는 긴 시간이 필요해요.”

문화기획

그림자나 원근 때문에 실제 모습을 재현하기 힘든 사진에 비해 그의 세밀화는 100% 자연을 담아낸다. 애벌레의 솜털, 나비 날개의 섬세한 색과 결이 모두 살아난다. 그만큼 따스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데 만족하지 말고 직접 곤충을 기를 것을 권한다. 꼬물꼬물한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으면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이 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