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본, 다시 검찰 출신이 맡게 되나?

정순신 낙마로 비판 목소리…선발 제도 보완해야

“당연하다. 전직 검사가 오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해 8월 퇴직한 지 얼마 안 된 경찰 고위 간부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찰 출신이 임명될 것 같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1대 국수본부장의 임기가 아직 6개월이나 남은 시점이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런 예측이 주를 이뤘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현실이 됐다. 지난 2월 신임 국수본부장에 정순신 변호사(57)가 임명됐다. 정 변호사가 임명 발표 하루 만에 낙마한 결정적인 요인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였다. 그러나 아들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부터 정 변호사가 전직 검사이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 등이 논란이 됐다. 정 변호사가 과연 경찰수사의 최고 책임자로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주요 공직에 검찰 출신을 등용하는 인사 기조와도 맞물리면서 비판의 강도는 거셌다.

그러자 경찰 안팎에서는 외부 인사가 아닌 현직 경찰관이 국수본부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2년 전 남구준 1대 국수본부장이 내부 승진을 통해 임명됐을 때도 적격 여부를 두고 뒷말이 나온 적이 있다. 현행 국수본부장의 선발 절차 등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전국 3만 수사경찰 지휘·감독

정순신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7기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 동기다. 2011년 대검찰청 부대변인, 2012년 ‘부장검사의 금품 수수 의혹’ 특임검사팀 공보관, 2016년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부공보관 등 주로 공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4년 인천지검 특수부장을 지냈다. 당시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특별수사팀에서 주임검사로 활동했다. 검찰 내 최근 이력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2019년 창원지검 차장검사 등이 있다.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장을 끝으로 2020년 8월 사직했다.

이른바 ‘검사장’으로 불리는 대검검사급 검사는 달지 못했다. 검사장은 법적 근거는 없지만 검찰 안팎에서 관행적으로 차관급으로 여겨왔다. 경찰청장도 차관급이다. 국수본부장의 계급은 치안정감으로 경찰청장보다 한 단계 아래다. 검사장이 아닌 차장검사 출신이 국수본부장에 지원·임명된 것도 이런 공직의 ‘급’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청은 지난 1월 2대 국수본부장의 채용 계획을 공고했다. 국수본부장은 경찰 내부에서 임명이 가능하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외부를 대상으로 모집할 수 있다. 법에 따르면 일정 경력 이상의 판사·검사·경찰 출신과 변호사, 교수 등이 지원할 수 있다. 이번 공모에는 검찰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와 전직 경찰관 2명 등 모두 3명이 지원했다. 서류심사, 신체검사, 인사검증, 종합심사 등을 거쳤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정 변호사를 단수 추천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4일 정 변호사를 임명했다. 임기는 2년이고 중임할 수 없다. 정 변호사의 임명 직후 그가 검사 출신이라는 점이 논란이 됐다. 그가 윤 대통령과 근무 인연이 있고 한동훈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점 등이 거론되며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 변호사가 경찰수사를 상대로 한 외압을 막는 ‘방패막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취소된 정순신 변호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의 임명 취소 등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국수본은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되면서 신설된 조직이다. 경찰이 수사종결권 등 많은 권한을 갖게 된 만큼 수사의 책임성·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목적에서 출범했다. 동시에 ‘수사경찰’과 ‘행정경찰’을 분리함으로써 ‘비대한 경찰권한’ 우려를 불식한다는 의도에서 탄생했다. 경찰은 2024년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게 된다. 국수본부장은 원칙상 경찰청장으로부터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를 총괄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자리다. 전국 3만명이 넘는 수사경찰을 지휘·감독한다.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정 변호사의 임명 발표 직후 논평을 내고 “검찰 출신 국수본부장을 통해 경찰을 직접 장악하고자 하는 정권 차원의 결정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 출신을 경찰수사의 수장으로 둬서 검찰의 독점적인 지위를 해소하고자 했던 형사사법체계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제도 변화를 무력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도 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검찰의 경찰 장악”, “경찰을 우습게 본다” 등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앞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설치, 검찰 권한 복원 등이 진행되면서 경찰 내부에선 이미 정권을 향한 불만이 쌓여 있던 터였다.

대안으로 후보추천위·인사청문회 거론

정 변호사의 낙마를 계기로 경찰 내부 인사를 국수본부장에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출신 기관’보다는 ‘어떤 인물’인지가 더 중요한 잣대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 역량을 갖췄으면서도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 이를 정권의 선의에만 맡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1대 국수본부장 임명 때도 그가 정권과 경찰청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를 두고 의구심이 제기된 바 있다. 경찰청은 2021년 1월 초대 국수본부장을 외부 공모로 뽑기로 하고 절차를 진행했다. 총 5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결국 남구준 당시 치안감이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국수본부장을 맡게 됐다. 남 본부장은 수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능력을 두고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남 본부장이 당시 김창룡 경찰청장의 경찰대 1년 후배인 점,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교 후배인 점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국정상황기획실에 파견돼 근무한 이력도 논란이 됐다.

현재 국수본부장 선발은 경찰청이 주도한다. 2021년 국수본 출범에 따라 경찰의 수사(국수본부장)와 행정(경찰청장)의 업무는 분리됐지만, 조직 및 체계가 완벽하게 나뉘진 않았다. 국수본부장은 중앙행정기관인 경찰청장을 보조하는 하위 조직으로 존재한다. 이에 따라 경찰청장이 국수본부장 임명 때 추천권을 행사한다. 외부 공모 과정에서 서류심사와 종합심사를 진행하려면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내외부 위원들 모두 경찰청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위원 구성에 경찰청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종합심사위원회가 최종 후보자 2~3명을 추리고 경찰청장이 이중 적임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국수본부장 선발의 공정성을 높이고 자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후보추천위 위원은 국회가 추천한 인사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토록 한다. 후보추천위가 단수로 후보자를 추천하면 행안부 장관은 이를 존중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내용은 경찰 출신인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1월 발의한 경찰법 개정안에 담겨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여러 단위가 참여하는 후보추천위를 구성하는 방법이 있다”라며 “심사 기준과 회의 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불공정 논란도 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수본부장의 막중한 역할을 고려하면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국회가 국수본부장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을 검증해 경찰수사의 객관성을 담보하자는 것이다. 그간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공직은 점차 확대돼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경찰법 개정안과 함께 ‘세트’로 발의됐다. 윤재옥·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1·3월에 각각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신임 국민의힘 대표인 김기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다. 국수본의 중립성·독립성을 위한 선언적·명시적 내용이 눈에 띈다. 개정안에는 “국수본 소속 공무원은 개별사건 수사에 있어서 외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2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또 대통령과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 등이 국수본의 개별사건 수사와 관련한 업무보고 및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등 수사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를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의원은 “국수본의 ‘성역 없는 수사’, ‘권력 눈치 보지 않는 수사’가 가능한 기반부터 바로 세우고자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2021년 8월 국회 행안위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도 “별도의 처벌 조항이 존재하지 않아 강제력이 약하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실제로 해당 공무원들이 이 조항을 위반한다면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므로 탄핵, 징계 등 후속 절차가 진행될 수 있어 실효성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김 의원의 개정안은 경찰청장이 국수본부장에게 개별 사건의 수사지휘를 할 수 있는 요건을 법률(경찰법)에 명시토록 했다. 현재 경찰법은 경찰청장이 개별 사건을 두고 구체적으로 수사경찰을 지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다만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의 수사’는 국수본부장을 통해 예외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예외 요건은 대통령령에 들어 있다. 개정안은 이런 대통령령의 규정을 법률로 상향해 구속력을 높인다는 취지다.

경찰청은 후보추천위원회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방안을 두고 “국수본부장 인사가 신속하게 결정되기 어려워 장기간 공석으로 인한 수사 지휘의 공백 발생이 우려된다”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실상 반대하는 것이다. 국수본부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는 등 통제 장치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 등도 경찰청은 반대 이유로 들었다.

윤희근 향한 불신 심화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 사태로 윤희근 경찰청장의 경찰 내 입지도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사검증에 실패한 대통령실과 법무부의 책임론이 거세지만, 정 변호사를 추천한 윤 청장도 책임에서 비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윤 청장을 향한 일선 경찰들의 불신도 더 심화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정 변호사 임명 취소 이후 지난 2월 26일 ‘경찰은 중립적인가’라는 논평을 내고 “윤 청장이 검찰 출신 변호사가 국수본부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단수 추천했는데, 경찰수사의 최고 책임자의 적격성을 판단한 근거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불행하게도 현재 경찰의 중립성이 지켜지고 있다고 보는 경찰 동료는 많지 않다”라며 “경찰청장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수호되고 있는 경찰의 중립성을 훼손한다면 경찰청장은 더 이상 그 책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윤 청장은 지난해 8월 임기 시작부터 경찰 내 신임을 얻지 못하는 모습이다.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 이태원 참사 대응, 류삼영 총경 징계, 보복 인사 의혹 등 정권의 코드를 맞추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다. 이번 국수본부장 낙마 사태까지 겹치면서 윤 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부에서 나온다. 윤 청장은 지난 3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책임론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어디 언론사 소속이냐”고 기자에게 되묻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청은 국수본부장을 내부에서 선발할지, 외부 공모를 다시 진행할지 등을 검토 중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