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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과거 행적에 대한 ‘학폭 미투’ 폭로와 논란 반복

프로배구선수들에 대한 폭로로 불붙기 시작한 ‘학폭(학교폭력) 미투’ 바람이 체육계와 연예계를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번지고 있다. 여자 프로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와 남자 프로배구 선수 송명근·심경섭 등 배구계를 중심으로 나오던 과거 학교폭력 가해 폭로가 연예인들을 대상으로도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는데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과거 저지른 학교폭력을 폭로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을 철없던 시절의 ‘치기 어린 행위’로 보는 대신 뒤늦게라도 반드시 응징해야 할 범죄로 인식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나온 뒤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 이재영(왼쪽)·이다영 선수 / 연합뉴스

일반인들 학폭 폭로 이어져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폭력을 비롯해 연예인·체육인 등 유명인의 과거 폭력적 행동이나 언사를 지목하는 분위기는 일반화되고 있었다. <내일은 미스트롯2>에 출연 중이던 가수 진달래가 과거 학교폭력 전력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된 뒤 사회적 지탄을 받고 해당 프로그램 경연 과정에서 중도 하차했다. 이어서 터진 프로배구선수 학폭 논란도 해당 선수들이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와 자격박탈 등의 중징계를 받게 만들며 뒤늦게나마 과거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과거 학교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를 폭로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번지면서 주요 폭로 창구로 활용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어린이집 교사와 변호사, 항공사 직원, 태권도장 관장, 방송기자 등 일반인들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도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입증이 어려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과거 학폭 피해에 대한 구제 방안을 요청하는 청원이 줄지어 올라올 정도다.

“골치 아파요. 일단 물어는 보죠. ‘예전에 학폭한 적 있어?’ 다들 ‘아니요’라고 하지, 누가 했다고 하겠어요.” 아이돌을 비롯해 연예계 데뷔를 꿈꾸는 연습생들을 관리하는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미 연예계에선 2018년 ‘성폭력 미투’에 이어 이듬해인 2019년부터 ‘학폭 미투’가 연달아 터져나온 바 있어 연습생 선발 및 데뷔 전 단계에서부터 예비 연예인의 과거 이력을 검증하는 과정이 관행처럼 자리 잡기도 했다. 앞서 2011년에도 한 멤버가 학생 시절 ‘일진’ 행적을 벌인 사실이 밝혀진 아이돌 그룹 ‘남녀공학’이 해체의 길을 밟고, 해당 멤버는 이후에도 마약 복용과 음주운전 등의 범법행위로 법의 심판을 받는 일이 있었다. 이렇듯 가만 놔둬도 사고를 칠 연습생이면 몰라도 대부분의 선량한 연습생 사이에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 학폭 전력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해당 관계자의 말이다.

게다가 과거 벌어진 학교폭력은 현재로서는 반복될 여지가 없어 폭로만으로도 가해자에 대한 타격을 입히며 다소나마 ‘복수’할 가능성은 있다. 물론 체육계나 연예계 등에서도 학폭 논란이 있을 때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과거 학교폭력 행위조차 입증과 규명이 어려워 징계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학교폭력과 이에 대한 징계가 다시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재진행형 학교폭력은 사회 전체의 관심이 환기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근본적인 예방책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교육현장에서의 폭력은 전체적인 피해 건수는 줄었지만, 집단따돌림이나 사이버폭력 피해는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전국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생 357만여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실시한 ‘2020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 유형별로 언어폭력(33.6%)이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고 이어서 집단따돌림(26.0%), 사이버폭력(12.3%) 순이었다. 이 가운데 언어폭력 등 나머지 6개 유형의 피해 비중은 모두 줄었지만, 집단따돌림과 사이버폭력은 각각 전년 대비 2.8%포인트, 3.4%포인트 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마주치는 시간이 크게 줄어 물리적 폭력은 줄어든 대신 온라인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늘어났다는 것이 조사 실시자의 분석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학교폭력이 되풀이돼 나타나는 교육현장의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번에 불거진 ‘학폭 미투’ 사태 이후에도 또다시 잊을 만할 때마다 같은 폭로와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청소년기의 학교폭력 가해자에게도 성인 수준의 엄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는 있지만, 그동안 법·제도적인 개선도 점차 효과를 나타내왔으므로 실제로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검증해 조목조목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는 목소리가 맞선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폭력 관련 법·제도의 개선은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학교폭력 관련 정책에 대해 교원과 학생, 학부모의 정책 효과 평가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예방책은 나오기 힘들어

문화체육관광부는 2월 16일 학교폭력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해 검증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교육부 등 관계 당국과 협의해 학교운동부 징계 이력까지 통합 관리해 향후 선수 활동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이번에 불거진 학교폭력 폭로 사태는 가해자가 학교 운동부 시절 저지른 폭력 때문에 벌어졌으므로 구타와 위계적 강압을 조장하는 합숙훈련 같은 환경이나 긴 연습시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을 통제할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는 배경에 피해자들이 폭로를 통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용기와 위로를 얻고 가해자가 자숙과 퇴출을 경험하는 모습을 보며 일정 부분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는 현실이 있다. 다만 이 경우 역시 그동안 피해자가 청소년기에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받는 대신 혼자서 피해로 인한 상흔을 안고 있어야 했음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때문에 피해자가 즉각적인 도움과 재발 방지 조치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익 푸른나무재단 사무총장은 “학교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욕구가 외면당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적절한 조치가 주어지지 않는 경험을 하면 청소년에게 사회에 대한 신뢰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익명에 기댄 폭로나 소문을 바탕으로 퍼지는 가짜뉴스를 통해 악의적 목적으로 유명인을 음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방송인 데프콘은 수년 전부터 그의 학창시절 폭력행위로 소년원에 입소한 전력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며 근거 없는 사실이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진짜 학폭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입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형편이니 일단 물어뜯고 보자는 자세보다는 ‘중립기어’를 넣고 상황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분위기가 자리 잡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