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제2의 투명치과’ 언제든 터진다

선금 받고 진료 무책임한 이벤트 치과… 아무런 제재 없이 버젓이 영업

강남역 분당선 출구에서 약 5분여를 걷다보면 허름한 건물 한 채를 찾을 수 있다. 건물 외벽 어디에도 치과영업을 하고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이곳 6층에는 A치과가 자리잡고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도 A치과만 유일하게 층별 안내문이 없다. 일부 교정환자들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다시 확인하거나 앞서 병원에 들어가는 환자에게 “여기가 A치과 진료하는 곳이 맞느냐”는 질문을 하며 알음알음 이곳을 찾고 있다. 일부 환자들이 “왜 간판이 없냐”며 화를 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A치과는 보건복지부와 대한치과의사협회, 서울시치과의사회, 대한치과교정학회,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도 이미 알려진 곳이다. A치과는 각종 이벤트 광고를 올려 이를 보고 찾은 교정환자들을 상대로 진료비를 선납받은 뒤 사실상 치료를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치과가 처음 개원한 2015년 이후 대표원장 B씨를 제외한 페이닥터들은 3년 사이 확인된 것만 4~5명이 바뀌었다. B씨는 치의학전문대학원 출신 일반의다. B씨 밑에서 근무한 의사 가운데 ‘교정 전문의’ 타이틀을 약력사항에 기재한 의사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현재는 이 의사도 A치과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페이닥터들은 수시로 바뀌어

일부 교정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거나 식약처, 보건복지부, 각 치협 및 관련단체에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항의를 하고 있다. 또 진료과정에서 심각한 치아손상을 입은 일부 환자들은 별도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과협회 관계자는 “투명치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은 곳”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A치과 진료 피해자들이 민원전화를 하지만 딱히 시정조치를 할 방법이 없어 우리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주간경향>은 3년 전 이벤트 광고를 보고 치과를 찾은 김모씨로부터 피해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김씨는 2015년 6월 A치과가 ‘강남○○치과’로 개원했을 당시 페이스북 홍보 이벤트 광고를 보고 해당 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지금은 저렇게 허름한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 개원했을 당시에는 강남역 4번출구에 위치한 데다 2개 층을 쓸 정도로 규모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272만원을 선불하고 상악·하악 전체에 ‘클리피씨’ 교정을 시작했다. 클리피씨는 치아 이동을 방해하는 마찰력을 줄인 교정장치로 기존 교정보다 심미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교정방식의 하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대우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김씨와 같은 방식으로 이벤트가(價)에 몰려든 환자들로 병원은 늘 북새통이었다. 예약시간을 정하고 가도 항상 대기시간이 40분~1시간을 넘겼다. 당초 약속한 치아 스케일링도 “오늘 해달라”고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병원 바쁜 거 보이지 않느냐. 스케일링 정도는 동네 치과에서 하라”였다. 1시간여를 대기한 후에 진료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사가 나타나지 않아 40분을 방치상태로 있기도 했다. 김씨는 대표원장으로부터 진료를 받아왔지만, 페이닥터들로부터 교정진료를 받아온 환자들 사이에서는 의사가 자꾸 바뀌는 문제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바뀐 의사들은 환자가 앞서 어떤 교정진료를 받아왔는지, 교정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어떤 방향으로 진료를 마무리할 계획인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일부 새로 온 의사는 환자의 치아상태를 보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그 말을 한 의사는 얼마 뒤 병원에서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다른 병원으로 옮긴 일부 환자를 중심으로 ‘재교정 치과로부터 A치과에서 부착한 교정기가 정품이 아닌 중국산 짝퉁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전화도 안 받아 예약하기도 어려워

그 사이 병원이 강남역 4번출구 인근에서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김씨를 포함한 환자들은 ‘병원을 이전했다’, ‘보건소의 이전허가 신청이 떨어지지 않아 이전허가 완료일까지는 영업을 중단한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깨달았다. 영업일 5일(토요일 제외) 가운데 3일을 휴진한다는 통보가 일방적으로 내려왔다. 휴진일을 특정하지 않고 언제든 휴진을 할 수 있다는 알림도 왔다. 연휴를 끼고 장기간 휴진에 들어가기도 했다.

병원 예약 자체도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병원 측은 “한 명의 환자가 여러 날짜를 한꺼번에 예약하면서 예약이 일시적으로 막힌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진료대기실에서 카운터를 보면 직원들이 전화벨이 울려도 ‘그냥 받지 마’라며 전화를 안 받는 것을 여러 차례 봤다”고 말했다. 예약을 하지 못한 일부 환자들은 아침부터 병원 앞에서 대기해 진료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구에서 온 환자는 6시간을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고 돌아갔다.

김씨는 A치과에서 남은 진료를 받는 것을 포기했다. 진료비를 완납한 피해자들은 무작정 몇 시간씩 대기해 진료를 받거나 김씨처럼 병원을 옮기는 선택을 하고 있다. 김씨는 다른 치과의사로부터 현재 치아상태가 교정 전보다 더 비뚤어진 상태인 데다 치아가 ‘닫혀버렸다(치아 이동이 어렵다는 의미)’는 진단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A치과 피해자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자신들의 피해정보와 각종 병원 진료정보, 고소인 물색 등을 계속해서 공유하고 있다.

<주간경향>이 지난 10월 30일과 11월 6일 A치과를 찾았을 때도 상황은 여전했다. 10여명의 환자들이 대기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며 무작정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6일 오후 병원을 찾은 한 여성 환자는 “언제든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더니 어제 하루종일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지 않았느냐. 그래서 무작정 찾아왔는데 예약이 다 차서 돌아가라는 게 말이 되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접수대 직원은 ‘왜 간판 없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 로고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 로고작업이 완료되면 한꺼번에 간판을 달 예정”이라고 말했다. A치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은 “간판 없이 영업한 지 한 달이 훨씬 넘었다”고 말했다.

A치과가 위치한 건물 내부. 6층만 아무런 안내가 없다. 병원 관계자는 “로고작업이 끝난 후 일괄적으로 정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류인하 기자

문제는 통상 ‘이벤트 치과’가 피해자를 양산하는 방식인 ‘이벤트 광고를 통한 모객→환자들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진료비 선납 요구→부적절한 진료·진료 미비→고용의사 대거 이탈→병원 영업 중단 또는 축소→폐업신고’가 이어지는 동안 정부 당국이나 각 치과협회나 학회에서 아무런 제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치과협회 관계자들은 “제재를 할 수단도 방법도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처분을 내릴 강제력이 전혀 없고, 가능한 수단은 회원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각종 계고조치를 하는 정도가 전부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교정을 원하는 환자들이 ‘강남지역’과 ‘이벤트 광고’를 하는 곳은 알아서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 이들이 내놓는 조언의 전부다.

치과의사협회도 “제재할 방법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치과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벤트 치과는 특히 강남쪽에 몰려 있다고 보면 된다. 강남쪽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일반의들의 병원 운영 마인드는 CEO처럼 손님을 모객하고 잘 운영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정은 매우 어려운 치료다. 또 장기간 걸리는 데다 환자마다 치아상태, 잇몸상태는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디가 치료의 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교정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이 이벤트 광고를 보고 몰려든 환자를 그냥 치료하고 비용만 받으면 끝나겠구나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교정이 안 된다. 더군다나 페이닥터들은 이런 병원에서 오래 일하지 않는다. 환자 치료의 연속성이 당연히 없다. 교정은 주치의 개념이 매우 중요한데 강남 일대 일반의가 운영하는 병원들은 너무 상업적인 마인드로 교정치료에 접근한다.”

A치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투명치과만큼 업계에서 악명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사실상 손놓고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고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투명치과 사태로 회원들에게 여러 차례 계도메일을 보내고, ‘이런 식으로 환자를 유인하지 말라. 투명교정은 교정치료로 입증이 되지 않았다’ 등의 주의를 보냈더니 저쪽(투명치과 등)에서 영업방해로 고소하겠다고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들 병원은 아무리 문제가 발생해도 의사면허를 박탈하거나 정지할 방법이 현재 의료법상 없다. 의사면허와 관련한 각종 행정처분은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그러나 현재 A치과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면허정지 또는 취소사유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의료인은 일반 형사범죄(횡령, 배임, 절도, 강간, 사기, 업무상과실치사상 등)나 일반 특별법 위반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의사면허에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즉 환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저질러도 의사면허를 박탈할 법적 근거가 전무한 셈이다.

박호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변호사)은 지난 4월 ‘의사의 형사범죄와 면허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의료법상 ‘임의적 면허 취소사유’는 ▲자격정지처분 기간 중에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정지처분을 받은 경우 ▲면허조건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면허대여 ▲일회용주사 의료용품을 재사용하여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게 한 경우 등에 한하고 있다.

투명치과와 A치과에 명확히 적용될 수 있는 범죄혐의는 ‘사기죄’ 정도다. 그러나 환자와 약속한 기간 내에 성실하게 교정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에 대해 유죄판단이 내려져도 의사면허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 현행 의사면허 규제의 맹점이다.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소위 ‘간판만 바꿔 달면’ 어디서든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면허취소가 됐더라도 1~3년 내에 재교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업계 내에서는 ‘1~3년짜리 면허정지’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1~2년 진료를 하지 않고 쉬다가 신청만 하면 사실상 재교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16년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의료인 면허취소 후 재교부 현황’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보면 최근 10년간 의료인의 면허 재교부 신청은 취소 94건 대비 총 94건으로 모두 재교부 승인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치과교정학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의 윤리위원회 규정이 있다. 형사처벌이나 각종 비위로 조사를 받았을 경우 심의를 거쳐 협회에서 제명할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회 차원의 제명은 그저 ‘불명예’일 뿐 전문의 자격이나 의사면허 자체에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비를 내지 않아 탈퇴하는 회원이 신입회원보다 많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제명’이 불법행위를 한 의사에게 강력한 제재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