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치과 선납금 낸 환자들 속은 썩는다

사태 발생 5개월째 진료 현장 가보니… 대기자 절반은 진료 못 받고 돌아가

지난 10월 2일 서울 압구정동 투명치과 본관 앞 모습. 인부들이 본관 내부에 설치된 각종 치과기공기구들을 트럭에 옮겨 실었다. / 류인하 기자

지난 10월 2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투명치과 별관 앞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환자들로 가득했다. 본격적인 접수는 오전 10시부터 진행됐지만 이날 병원을 찾은 환자의 절반은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서는 환자들 가운데 항의하거나 고성을 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군인부터 갓난아이를 안고 온 엄마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몰렸다. 유일하게 문을 연 별관 3층 건물 안에는 30여명의 환자들이 로비에 가득 찼다. 이날 접수는 오전 11시30분에 마감했다. 접수를 받던 남성은 오전 11시30분 이후부터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접수가 끝났으니 예약을 하고 오거나 금요일 오전 일찍 오라”고 말했다. 목요일은 예약환자만 받으니 예약을 못했으면 오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10월 2일 서울 압구정동 투명치과 별관 3층 진료실 앞 모습.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몰려들어 대기실이 가득 찼다. / 류인하 기자

같은 시각 4층짜리 본관 건물은 건물 내 집기 이전작업이 한창이었다. 치과 기공기구들이 건물 밖으로 옮겨져 총 3대의 트럭에 실렸다. 인부들은 쉴새없이 건물 안을 오가며 기공기구들을 옮겼다. 또 외부인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거나 촬영하는 것을 막았다. 이전작업은 이날 오후 12시쯤 마무리됐다. 유리건물 안은 버려진 각종 치아 모형과 잡지, 서류, 주인을 알 수 없는 가방들이 흩어져 있었다. 투명치과 강제훈 원장이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액자도 바닥에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본관에서 치과 기공기구들 옮겨져
투명치과 사태가 발생한 지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강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4차례 소환조사를 벌였다. 검찰에 강 원장에 대한 계좌조회 영장을 두 차례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한 의료전문 언론사가 투명치과 피해자의 입을 빌려 강 원장이 전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출신 변호사와 검찰 출신의 전관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는 보도를 냈다. 경찰 관계자는 그러나 “현재 선임계를 낸 변호사 가운데 언급되고 있는 두 변호사의 이름은 없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경찰 조사에서 “나는 제2의 유디치과다. 치과협회와 교정학회가 짜고 나를 범죄자로 몰려고 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그 사이 치과협회와 교정학회가 투명치과에 대한 수사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사건의 전말을 다시 짚어본다.

강 원장은 2001년부터 양악전문병원인 ‘화이트 치과’를 운영해 왔다. 투명치과의 전신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강 원장은 ‘화이트 치과’를 운영하면서 말 그대로 ‘떼돈’을 벌었다. 곳곳에 부동산을 사들였다. 또 그 돈 중 일부가 현재 투명치과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대로변 건물을 인수하는 데 쓰였다. 그는 2011년 11월 이 건물을 사들여 전체를 리모델링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알짜배기 건물이었다. 그런데 돌연 국세청이 ‘투명치과’ 건물을 가압류하고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현금매출을 신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47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48억원을 선고받았다. 또 과태료 60억원이 추가로 부과됐다. 총 108억원이라는 거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당장 구속될 수도 있었다. 그는 세무서장을 상대로 처분 취소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2014년 10월 8일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투명치과가 본격적으로 개원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투명치과 건물은 세무조사와 함께 압류됐다가 2012년 8월 10일 신한은행 지주에 매각됐다. 신한지주의 외국인 사외이사 중 한 명인 히라카와 유키 프리메르 코리아 대표다. 강 원장은 히라카와 유키 대표에게 건물을 임차하는 형식으로 투명치과를 개원했다. 그러나 한 차례 ‘시련(?)’에도 불구하고 강 원장은 재기에 성공했다.

투명치과의 전신은 화이트 치과
미국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얼라인테크놀로지’의 투명교정기인 ‘인비절라인(Invisalign)’을 한국식으로 변형한 ‘노비절(Novisal)’이라는 투명교정기를 개발한 것이 돈이 됐다. 교정학 원리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 3D로 치아의 이동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투명교정기를 갈아끼우는 것만으로 교정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투명치과 측 홍보내용이다. 즉 교정이 필요한 치아의 현재 배열상태와 교정이 완료됐을 때의 가상 치아 배열을 3D입체 프린터로 제작, 치아의 이동순서에 따라 적게는 5~6단계, 많게는 10단계 이상의 투명교정기를 제작한 뒤 환자가 스스로 교정기를 갈아끼워가며 치아 배열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명치과는 2016년 유통법인인 클리어라인을 설립해 지난해 투명교정기 매출로만 37억원(영업이익 12억원)을 벌어들였다.

투명치과 홈페이지에 게시된 노비절 시술 전후 모습. / 투명치과 홈페이지 캡쳐

문제는 대법원의 최종판결로 당장 납부해야 할 벌금과 과태료였다. 강 원장은 이 돈을 신규환자 유치를 통해 벌어들였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벤트 모집’이다. 통상 교정치료는 2~3년이 소요된다. 비용도 평균 700만~800만원이 든다. 투명치과는 그러나 각종 SNS 이벤트를 통해 “투명교정기를 통해 200만~300만원에 교정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교정을 원하는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소위 ‘철길을 깐다’고 말하는 교정방식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기존 교정업계에 투명치과는 ‘황소개구리’였다. 강 원장은 마케팅 비용으로만 6억원을 지출했다. 그 결과 1년 사이 매출이 300억원을 기록했다(순이익 별도). 이 돈은 벌금 48억원과 과태료 60억원을 납부하는 데 쓰였다. 환자 치료에 쓰여야 할 비용이 개인적인 돈으로 유용(流用)된 것이다.

치료과정에서의 문제도 발생했다. 투명교정기는 약간 뒤틀린 치아에는 교정효과가 있지만 심각한 부정교합은 바로잡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투명치과는 이러한 환자에게까지 투명교정기를 판매했다. 문제는 이 경우를 불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전문의의 판단에 따른 치료가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도 이 부분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명치과는 2016년에 이르러서는 환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투명치과 진료차트에 등록된 환자는 6만명에 달한다. 경찰은 “일반 치과 치료를 받은 사람 등을 제외하면 약 3만명 정도가 투명교정 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진료 선납금을 강 원장의 벌금과 과태료 납부에 사용하는 바람에 병원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까지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들어오는 환자 수는 줄었는데 기존 환자 치료비용은 꾸준히 발생하면서 적자구조가 된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 투명치과는 2017년 8월 전년도에 벌어들인 수익 100억원에 대한 세금 33억원을 내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다. 지난해 1월부터는 고소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일당 의사 4~5명이 돌아가며 진료를 했다.

치위생사들 중심으로 진료 이어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5월 18일 방송된 KBS <소비자 리포트>에서 투명치과 문제를 보도하면서부터다. 경찰은 최초 고소장이 접수된 날로부터 이틀 뒤 강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내리고 피의자 조사를 벌였다. 또 병원 계좌 및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경찰 관계자는 “그래도 피의자의 임의동의를 받아 계좌는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혐의가 피해자들의 추가고소로 불거졌다. 투명치과에서 받은 투명교정기를 착용했더니 냄새가 나고, 잇몸에 염증이 생긴다는 피해제보였다. 식약처와 경찰의 공조수사를 통해 투명치과가 기존 의료용 플라스틱 대신 단가가 싼 공업용 페트병(PET) 제작용 플라스틱으로 투명교정기를 제작한 혐의를 포착,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또 교정 목적의 경우 1년에 한 번에 한해 보험처리가 되는 스켈링 치료를 교정환자에게 실시한 후 보험을 청구해 68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국민건강보험법 위반)도 추가로 살펴보고 있다.

강제훈 원장은 그러나 4차례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는 제2의 유디치과”라는 진술을 하고 있다. 투명치과가 교정학계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을 이용해 큰 수익을 내면서 미운 털이 박히자 치과협회가 각종 자료를 언론에 흘려 운영난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 기존에 교정학회와 계속 갈등이 있어 왔다고 진술했다. 자신에게 악의를 품은 치협과 교정학회가 왜곡된 정보만 흘리지 않았다면 기존에 유치했던 환자들을 책임지고 치료할 수 있었다는 게 강 원장의 주장이다.

치과협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치협 관계자는 “신기술이고 뭐고, 일개 병원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관심없다. 우리는 단지 보건복지부로부터 대한치과의사협회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받아 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투명치과는 현재 폐업신고를 하지 않고 치위생사들을 중심으로 기존 환자들에 대한 치료만 일부 이어가고 있다. 강 원장은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계속 해나가겠다”고 경찰에 밝힌 상태다. 그러나 <주간경향>이 병원에서 만나본 장기치료 환자들 가운데 문제가 불거진 이후 강 원장을 병원에서 봤거나 진료를 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치협 관계자는 “구속상황을 피하려고 수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강 원장은 지난 7월에 한 번 나타난 이후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지난 9월 18일 강 원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기소 후 공소유지를 하기에는 의료법 위반 여부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환자 2000명에 대한 피해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전자차트를 압수해 건강보험법 위반 여부를 다시 검토하라고 수사지휘를 내렸다. 투명치과 앞에서 만난 피해자 김한별씨(22·가명)는 “진료예약은 하늘의 별따기고 줄을 서서 기다려도 진료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싶어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선납진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면서 “검찰이 강 원장을 어떻게 처리하든 간에 우리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