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엄마들의 법정싸움은 안 끝났다

대안학교 상대로 손배소 ‘절반의 승리’… 학교장 부부 항소로 부모들도 항소키로

엄마들이 이겼다. 다만 아직은 절반의 승리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더 멀고 험할지도 모른다. 자폐아동을 둔 엄마의 법정싸움 제1라운드는 끝났다. 상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 및 지적장애 아동 전문기관으로 알려진 경기도 용인시의 ‘○○대안학교’다. 이름은 대안학교지만 실제 대안학교로 기능한 곳은 아니다. 이 기관 설립자 부부는 자폐장애를 겪고 있던 자신의 아이를 독특한 교육법을 통해 지능지수를 높였다는 ‘성공담’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이들이 설립한 기관에는 순식간에 자폐장애 아동 부모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일부 부모들은 수천만 원의 후원금을 내면서 아이를 맡기기도 했다. 자폐 또는 지적장애아를 둔 부모에게 이들이 내놓은 ‘우수 사례’는 한 줄기 빛이자 동아줄이었다.

지난 4월 2일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개최한 결의대회에서 발달장애인과 부모 209명이 단체 삭발을 하고 있다./이상훈 기자

혜진(당시 만 4세·가명)이 엄마도 여느 부모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학교장 설명대로 이곳에 아이를 보내면 집중력도 높이고, 지능점수도 20점 정도 올려 평범한 아이들과 어느 정도 비슷한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2015년 8월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후원금으로만 1200만원을 냈다. 그러나 기대는 곧 고통으로 돌아왔다. 학교는 우는 아이를 어두운 방으로 데려가 벽을 보게 하고, 울어서 지칠 때까지 아이를 가뒀다. 어두운 방에 갇혀 화장실도 가지 못했던 혜진이는 그 자리에서 소변을 눴다. 아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게 됐다. 준영(당시 만 4세·가명)이도 혜진이와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학교장 부인이자 부원장이었던 ㄱ씨는 아이를 훈육한다는 명목으로 벽을 본 채로 앉았다 일어서는 벌을 상당 시간 반복하게 했다. 아이는 그날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의 상태가 됐다.

드러난 대안학교의 가혹행위

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난 ○○대안학교의 가혹행위는 다양했다. 교육도 장애아동을 다루는 방식과 거리가 멀었다. 고작 만 4~6세에 불과한 아이들을 상대로 장시간 국어, 산수, 상식 등 문제지를 반복적으로 풀게 했다. 이 학교가 “지능지수를 20점 이상 향상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 방법은 결국 장애아동에게 지속적으로 문제지 풀이를 반복하게 한 것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동일한 연령대의 비장애아동들에게조차 부적합한 방법”이라고 봤다. 특수교육 전공자가 아닌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교장 부부가 지시하는 것을 그대로 따를 뿐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가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방식으로 알려진 ‘타임아웃(time-out)’ 역시 이곳에서는 학대의 방식으로 악용됐다. 학교장 부부는 자폐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를 40분~1시간 가까이 어두운 방 안에 혼자 방치했다. 타임아웃은 전문가들조차 취학 전 아동은 5분을 넘기지 않아야 하고, 그 경우에도 아이에게 익숙하거나 친화적인 장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학적인 행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의 행동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쓴맛이 강하게 나는 ‘고삼차’를 분무기에 담아 입에 뿌렸다. 재판부는 “이는 고통을 가하는 벌로서 체벌에 가깝고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밝혔다.

학교는 자폐성 장애아동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성을 갖춘 대안학교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재판부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고 있을 뿐 자폐성 장애아동의 치료와 교육에 관한 학위나 경력 등은 전혀 없다”면서 “자폐성 장애아동에 관한 전문성이 없음은 물론 교육적인 근거조차 찾기 어려운 독단적이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교육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수교육 자격증을 가진 교사도 극히 일부였고, 훌륭한 치료법으로 소개한 자기장치료 및 고압산소치료 역시 학계에서 전혀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수원지법 민사13부(재판장 김동빈)는 최근 이 학교에 재학했던 피해아동과 부모 14명이 학교장 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아동 및 부모 6명에 대해 위자료 1950만원을 지급하고, 원고 14명이 학교에 낸 기부금 및 수업료, 고압산소치료비 등 총 1억75만원을 반환하라”고 원고 일부승소판결했다. 장애아 대안학교 내에서 자행되는 학대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홍보와는 달리 실제 전문성 미비

다만 이들의 법정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학교장 부부가 항소했기 때문이다. 다원(가명)이 엄마 ㄴ씨는 12일 “우리도 항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폐장애아동의 행동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교사가 아이를 교실 밖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행위 등을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방식으로 판단, 가혹행위로 인정하지 않은 사법부의 판단을 다시 다퉈보겠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장애아동과 그 부모가 겪은 피해를 온전히 이 기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느냐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장애아동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일반 초·중·고교에는 장애인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의 경중과 관계없이 아이들을 한 반에 몰아놓고 한두 명의 특수교사에게 아이들을 전담하게 하는 것이 지금의 교육현실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설립된 국립 특수학교는 단 5곳에 불과하다. 공립(76곳)을 합해도 81곳이 전부다. 사립은 이보다 조금 더 많은 92곳이 있지만 운영되는 학급 및 학생 수는 상대적으로 국·공립에 비해 적은 형편이다.

초·중·고교과정 특수학교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장애영아 및 유치원과정 아이들은 2017년 기준 전국에 장애 등록된 수만 5437명이지만 이들을 위한 보육·교육시설은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게다가 영아 및 미취학 아동들은 부모들이 사회적 편견 등을 이유로 장애등록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 실제 장애 영아 및 장애 미취학아동의 수는 정부 집계보다 훨씬 많다. 결국 부모들은 전문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각종 영유아·미취학아동 대상 대안학교를 찾아 수천만 원을 납부하고, 한 회당 검사비로만 60만~80만원에 달하는 각종 △△연구소, □□연구소 등을 찾아 다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발달장애아동 부모는 “아이 상태가 의심스러워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는 데 넉 달이나 걸렸다”면서 “방학기간이라 예약이 몰린다고는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넉 달이라는 시간은 마냥 손놓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한 유명 사설 아동발달연구소에서 검사비로 60만원, 놀이치료·언어치료 등 각종 치료비로 회당 50만원(1회에 40분 진행+10분 상담)을 지급했다. 또 다른 한 발달장애아동 부모는 “각종 인터넷 후기 및 ‘카더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지자체나 정부가 장애부모에게 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 아이 치료비를 달라는 게 아니라 돈 낼 테니까 기다리지 않아도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상담센터나 치료기관을 넉넉하게 마련해달라는 것인데 그게 정부 입장에서는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 건지 묻고 싶다”고 했다. 장애아를 둔 부모의 싸움은 법정 안팎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