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오염·경제 피해는 오롯이 주민 몫

미군기지 일부 반환된 동두천시 가보니… 지역 개발도 못하고 어쩡쩡한 상태

“기자가 모르는 소리하시네. 미군기지 안 빠져요. 자기네 집이라고 다 차지하고 있는데 빠지겠어?” 지난 7월 3일, 경기도 동두천시 안창말에서 만난 주민 김지성씨(가명·64)는 ‘미군기지 반환’을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안창말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 미군기지는 그보다 오래 동두천에 있었다. 미군기지는 1951년 동두천에 들어왔다. 올해로 67년째다.

2015년 3월 반환된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캐슬 부지 인근. 주민들의 신고로 땅을 파보니 기름이 나왔다. / 녹색연합 제공

동두천시에는 6개 미군기지가 있다. 이들은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이 “기지 안 끼고 사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렵다”는 농담을 던지는 이유다. 시 곳곳에는 ‘시설 사령관의 허가 없이 이 지역에 들어오는 것은 위법입니다. 이 군사시설에 있는 사람이나 그들의 소유물들은 조사를 받을 것입니다’라는 번역투 경고문이 붙어 있다. 4차선 도로에는 미군이 탄 군용트럭이 오갔다.

토양오염 기준치 127배, 1년 만에 정화?

애초 계획대로라면 이들 기지 모두 2011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했어야 했다. 하지만 캠프 님블, 짐볼스 훈련장, 그리고 캠프 캐슬 일부(동캐슬, 서캐슬) 등 3곳만 반환됐다. 이 중 실제 주민들이 ‘돌려받았다’고 느낄 만한 곳은 캠프 캐슬뿐이다. 캠프 님블은 군인 관사로 개발 중이고, 짐볼스 훈련장은 산악지대가 대부분이다. 캠프 캐슬 부지에는 동양대학교 북서울 캠퍼스가 들어섰다.

김씨 집은 동양대 캠퍼스 본관 인근이다. 3년 전만 해도 기지 인근이었다는 의미다. 캠프 캐슬 부지는 2015년 3월 반환됐고 동양대 캠퍼스는 2016년 4월 문을 열었다. 캠퍼스는 크게 본관과 기숙사로 나눠지는데 본관 건물만 새로 지었다. 기숙사와 도서관 등은 미군이 사용하던 건물을 수리해 쓰고 있다. 김씨는 아이보리색 건물을 가리키며 “기지에 저런 건물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식’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캠프 캐슬이 반환되던 때를 기억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기름 때문에 땅을 파고 동네가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을 답사했던 녹색연합 관계자는 “기름에 오염된 다량의 토양, 지하수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갔다”며 “마을 진입로부터 신고주민의 마당까지 깊이 2.5m가량 굴착돼 지하수가 고여 있었다. 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말했다.

캠프 캐슬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기지의 27.6%인 1만3000평가량이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토양 오염도를 나타내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기준치의 127.7배나 넘게 검출된 곳도 있었다. TPH에는 암 유발물질인 폴리아로메틱 하이드로카본 등이 들어 있다. 이는 식물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환경오염물질로 분류된다.

1급 발암물질인 벤젠도 기준치의 5.7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젠을 단기간 흡입시 현기증·두통·졸도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장기간 흡입시 빈혈·면역체계 이상·암 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고농도 벤젠을 흡입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당시 안창말에는 ‘주민 일동’ 명의로 ‘여기가 사우디 이라크 나라의 유전이냐! 기름이 쏟아져 나온다!’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1년 1개월, 1만평이 넘는 오염된 땅을 복구하고 캠퍼스가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반환받은 북캐슬 지역은 국방부 주관하에 4년째 정화작업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신수연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토지 이용계획에 맞춰 정화사업을 단기간에 하는 경우, 정화와 검증을 마쳐도 다른 곳에서 오염물질이 나오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신 팀장은 “그럼에도 부지를 빨리 매각하고 싶은 국방부, 장기간 미군 주둔으로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싶은 동두천시, 재빨리 수도권으로 이전하려는 지방 대학교. 세 기관의 이해가 맞닿아 캠퍼스 조성이 추진됐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다 지난 일인데 들춰서 뭐가 좋겠나. 들춘다고 달라지나”라며 “그런 거 말고 이 지역 경제에 대해서 쓰라”며 언급을 꺼렸다.

동두천역 인근에 미군기지를 둘러싼 담벼락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 이하늬 기자

“기지 빼려면 다 빼고, 아니면 미군 충원을”

실제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오염보다는 지역 경제다. 최희신 경기북부 평화시민행동 처장은 “동두천은 미군기지에 익숙해져 있어서 웬만한 사회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지역 경제는 와닿으니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두천시는 2004년 미군 3600여명이 이라크로 파병되며 타격을 입은 경험이 있다.

문제는 기지 6곳 중 일부만 반환된 현재 상황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왕택 전 미군범죄신고센터 대표는 “주민들은 ‘기지를 빼려면 전체를 다 빼든가 아니면 미군을 충원하라’는 분위기다”라며 “반환은 안 하고 미군만 빠져나가니 경제는 어려워지고 다른 개발도 못 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일 찾은 ‘보산동 관광특구’는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에도 한산했다. ‘Big size’를 내걸고 미군을 상대로 한 옷가게나 ‘클럽’ 등이 줄지어 있었지만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관광특구에서 케밥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요즘에는 미군들도 여기서 안 논다. 신시가지로 가거나 전철 타고 서울로 나간다”며 “그렇다고 가게를 접을 수도 없다. 할 게 없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관광특구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캠프 케이시를 가리키며 “2011년에 반환된다고 했다가, 또 2017년에 반환된다고 했다가, 2020년에 반환된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와 주민들이 가장 반환을 바라는 곳이 캠프 케이시다. 428만평의 부지 중 활용 가능한 면적이 154만평에 이르는 데다가 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곳곳에 기지가 있는 한 고도제한 때문에 균형개발은 물론이고 개발 자체가 쉽지 않다”며 “반환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기업들이 앞다퉈 들어오려 했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는 “기지가 ‘제대로’ 반환되지 않으면 오염·경제 피해는 주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동두천이 딱 그 사례다.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활동하던 시민단체들도 다 문을 닫았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