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기꾼인가, 사법부 피해자인가

19년 동안 기나긴 법정싸움에도 승복 못하고 다시 재심신청

폭우가 매섭게 쏟아지던 지난 7월 2일. 이장호씨(59)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 있었다. 그는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법원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씨는 왜 생업도 접고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이장호씨가 지난 2일 경향신문 본사 7층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학원 매매대금이 사건의 발단

사건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에서 잘나가는 주산·부기학원 원장이었던 이씨는 1997년 2월 18일 자신의 학원 건물 옆 빌딩에 함께 운영 중이던 컴퓨터 학원을 A씨에게 팔아넘겼다. 당시 학원에 비치된 컴퓨터만 150대가 넘을 정도로 잘 운영되는 학원이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당시 A씨로부터 받아야 할 학원 매매대금은 총 1억2500만원이었다. 그러나 매매계약서는 수강생 권리금, 학원 증축비용 등을 제외한 7500만원으로 작성됐다. 계약서상에 명시하기 곤란한 수강생 권리금 등 이씨가 받아야 할 5000만원은 공정증서(차용증)로 추가작성됐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A씨로부터 계약금 500만원 및 중도금·잔금 7000만원을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대로 모두 받았다. 문제는 매매계약서에 작성하지 않았던 5000만원이었다. 이씨는 A씨가 약속한 날짜까지 빌려준 돈 5000만원을 갚지 않자 법원에 A씨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강제집행)을 신청했다. A씨는 전부명령서가 송달된 직후 즉시항고를 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A씨는 이씨를 상대로 전부명령(강제집행)의 본안(本案)소송에 해당하는 청구이의를 냈다. 또 이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당초 학원 매매대금 총액이 7500만원이었고, 5000만원짜리 차용증은 계약금(500만원) 및 중도금(2000만원)을 갚고 남은 잔금에 대한 것으로, 이미 갚아서 더 이상 채무가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씨는 또 사기미수(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 혐의로 징역 8월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가 사기미수범이 된 데는 조작된 증거가 영향을 미쳤다. A씨의 컴퓨터학원 건물주와 증축업자가 법정에서 “이씨가 학원 공간을 증축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증언을 했다. 또 이씨가 컴퓨터학원을 증축했다는 증거인 건축물관리대장이 위·변조된 채 재판부에 제출됐다. 법원은 위조된 서류를 유죄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7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이씨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또다시 소송 준비를 시작했다. 재심청구였다. 2002년 6월 출소한 그는 대전 중구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는 한편, 건축물관리대장 위조사실을 밝혀냈다. 실제 이씨가 1999년 4월 발급받아 놓은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컴퓨터학원이 증축공사를 한 사실이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A씨가 앞서 1999년 9월 법원에 제출한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있어야 할 증축사실 부분이 공란으로 돼 있었다. 이씨는 A씨가 제출한 것과 자신이 발급받아 놨던 대장을 직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 A씨가 제출한 관리대장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일은 2002년 9월 27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지적됐다. 검찰이 위조사실도 모른 채 기소증거로 사용한 것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건축물관리대장은 재심청구에 필요한 증거였다. 공정증서에 기재된 대여금 5000만원 가운데 1200만원은 이씨가 컴퓨터학원 사무실을 증축하면서 들인 공사비 명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증축공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건축물관리대장은 이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었다. 거기다 컴퓨터학원 건물주와 증축업자가 위증한 사실을 뒤늦게 자백하면서 사건은 이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했다(이후 건물주와 업자는 위증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형사 재심은 무죄, 민사 재심은 기각

형사재판(사기미수)은 결국 2004년 9월 재심이 결정됐다. 1년 6개월의 심리 끝에 대전지법 형사2부는 2006년 1월 19일 재심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형사와 함께 재심을 청구했던 민사재판(청구이의)의 재심이 기각된 것이었다. 민사재판은 그동안 단 한 차례의 변론기일도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민사 재심 기록을 살펴보면 ‘관련 (재심)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기 위하여. 속행. (기일) 추후지정’이라고 돼 있을 뿐 재심판단을 위한 본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이씨의 재심 변호사가 변론준비기일에 “청구이의는 처음부터 무효로 ‘각하(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해 판단할 수 없다)’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면과 서증까지 제출했지만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민사 재심은 형사 재심판결이 내려지는 다음날로 선고기일이 잡혀 있을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년 넘게 이씨의 민·형사 재심사건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가 선고를 앞두고 수임료의 1.5배를 돌려주며 돌연 사임했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 7월 2일 이장호씨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이장호씨 제공

대전지법 민사1부는 형사 재심판결이 내려진 다음날인 2006년 1월 20일 이씨의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비록 A씨측 학원건물주가 위증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나 이를 제외하더라도 A씨의 주장에 더 신빙성이 있다”며 형사 재심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사실상 재심 전 민사판결을 그대로 인용한 셈이었다. 이 엇갈린 판결은 연합뉴스, 한겨레, 조선일보, KBS 등 각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보도됐다.

이후 이상한 ‘일치’가 일어났다. 이씨가 상고한 민사 재심사건을 맡은 대법원이 2006년 4월 13일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심리불속행 기각이란 상고이유가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심리를 하지 않고 원심 판단 그대로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주심은 양승태 대법관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핵심인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검찰이 상고한 형사 재심사건 역시 대법원은 8개월여를 끈 끝에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이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던 재심 판단을 모두 뒤집었다. 그는 다시 유죄가 됐다. 이씨가 밝혀낸 건축대장물 위조 및 상대편 측의 위증사실은 판단을 뒤집는 데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이씨는 재상고했지만 대법원 제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2007년 11월 15일 상고를 기각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민·형사재판부가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고 비판한 언론 보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민·형사판결이 대법원에서 이씨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일치’된 셈이다. 8년간 법정다툼을 벌여온 이씨에게 남은 것은 ‘사기미수’ 전과자라는 불명예와 생활고밖에 없었다.

하지 말아야 할 재판을 10년이나 끌어

이씨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법정싸움을 벌였다. 이씨가 낸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강제집행)이 1999년 4월 8일에 확정됐음에도 재판부가 A씨의 청구이의를 각하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대법원에 항고했다. 소송의 시작 지점부터 다시 돌아가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민사집행법상 전부명령(강제집행)은 판결이 확정됐을 경우 그 효력이 채무자와 제3채무자에게 전부명령신청서가 송달된 시점으로 소급해 발생한다. 때문에 강제집행 결정이 확정된 시점에서는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가능하지만 청구이의의 소는 ‘소송을 해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각하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이씨가 전부명령(강제집행)을 신청한 시점은 1999년 4월 6일로 이틀 뒤인 4월 8일 신청서가 A씨와 A씨의 제3채무자에게 송달됐다. A씨가 청구이의를 제기한 시점은 4월 14일이다. 비록 당시에는 강제집행이 확정되지 않아 청구이의 소 제기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강제집행이 청구이의 선고보다 먼저 확정(1999년 11월 5일)됐기 때문에 결국 청구이의는 각하됐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는 재판을 10년이나 끌어온 셈이었다. 민사집행법 분야의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청구이의를 맡은 재판부는 본안에 앞서 제기된 전부명령 신청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실무에서 당연히 강제집행이 정지됐을 것을 전제로 재판을 하기 때문에 이런 실무상의 실수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소송은 다시 시작됐다. 2008년 3월 A씨의 보증인(제3채무자)을 상대로 전부금(강제집행금) 청구소송을 냈다. 이미 확정된 전부명령을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1심은 그러나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재심판결이 발목을 붙잡았다. 이씨가 재심을 거쳐 사기미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따라서 이씨가 주장하는 공정증서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을 전부 갚았다”는 A씨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셈이다. 이씨는 즉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청구이의 재심재판에 대한 기록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이씨의 재심재판 기록 총 6권 중 일부가 법원 내 기록물관리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약 500페이지 분량이었다. 이 기록문서의 보존기한은 2013년 말로 폐기대상도 아니었다. 게다가 각 기록은 검은 철끈으로 묶여 보관되기 때문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빼내지 않고서는 일부만 분실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은 또다시 2009년 대전지법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우윤근 당시 법사위원장(민주당)을 비롯해 이춘석·이주영·손범규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대전지법원장은 수사의뢰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복사실 일부 직원들에 대한 행정징계만 이뤄졌다. 누가 어떻게 기록물을 폐기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씨의 전부금 청구소송은 2011년 2월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로 확정됐다.

19년의 세월이다. 그러나 기나긴 법정다툼을 벌여온 이씨에게 남은 것은 그가 사기꾼이고, 5000만원짜리 공정증서는 가짜라는 판결문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각종 재심사유를 모아 형사 재심신청을 하고 또 하고 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벌이는 법원 앞 일인시위도 쉬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달라질 게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그는 검게 그을린 두 손을 꽉 쥐었다.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였다. 그는 사기꾼이었을까. 아니면 사법부의 피해자일까.

<글·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