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들 ‘말 못할 고민’

폐쇄조치로 받은 피해지원금 중 3020억원 재가동하면 정부에 돌려줘야

“빨리 공단이 재개되어야 하지만, 막상 들어갈 거 생각하면 막막하죠.”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후, 남북 경제협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입주기업들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1년을 하루 앞둔 2017년 2월 9일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의 폐쇄된 입·출경 게이트 앞에서 한 차량이 방향을 되돌리고 있다. / 박민규 기자

3020억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토해내야’ 하는 보험금이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5833억원의 피해지원금을 받았다. 이 중 3020억원이 고정자산에 대한 피해지원금이다. 고정자산 피해지원금은 공단이 재개되면 갚아야 한다. 통일부 고시에 따르면 은행은 1개월 안에 반납을 요청할 수 있다.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상무는 “다음달에 개성공단이 재개된다 해도 당장 이 돈을 토해낼 수 있는 기업은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비대위가 주장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손실은 1조5404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 중 7861억원을 인정했다.

갚아야 할 기업들 “앞이 막막하다”

보험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비대위 조사에 따르면 입주기업의 60.4%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거나 대체시설을 확보했다. 문제는 이렇게 해외나 국내에 시설을 확보했다 해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업 대표들은 “생산을 다시 시작하고 수익이 나려면 보통 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동자 임금이 개성공단과는 비교가 안 된다.

설비뿐만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원·부자재는 물론이고 완제품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기업은 신뢰가 생명이다. 개성공단 폐쇄 직후 입주기업들은 2배·3배 손해를 감수하면서 납기일을 맞췄다. 개성공단 폐쇄 직후부터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험금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개성공단 잠정중단 당시에도 기업들은 공단이 재개되면서 보험금을 반납해야 했다. 이종덕 영이너폼 대표는 “2013년에 받은 보험금을 2015년 말에서야 겨우 완납했는데 두 달 만에 다시 개성공단이 폐쇄됐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입주기업 중 몇 곳은 2013년 보험금을 아직도 반납하지 못했다. 의류업체인 디엠에프가 대표적이다.

디엠에프가 개성공단에 입주신청을 한 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이다. 2009년 2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그 사이 정권은 이명박 정부로 교체됐다. 공장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100억원 수준이다. 절반은 담보대출로 마련했다. 2013년 개성공단이 잠정중단됐다. 46억원가량의 보험금이 나왔지만 최 대표는 한푼도 만지지 못했다. 보험금은 자동으로 대출받은 은행으로 들어갔다.

6개월 뒤 개성공단이 재개됐지만 디엠에프는 보험금을 반납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빚이 불어난 상황이었다. 보험금을 제때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금이 붙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최 대표는 “계속 압박을 받았지만 갚을 수 없었다”며 “이자가 잔뜩 붙었다. 지금 얼마인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기업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정부에서 보험금 문제를 조정해주길 바란다. 한 기업 대표는 조심스럽게 “보험금을 토해내지 않으면 가장 좋지만 그건 쉽지 않아 보이고, 2년 반 동안 설비나 건물이 망가진 부분을 감안해 반납금액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환시기 연장이나 이자율 조정도 검토 대상이다.

“현 상태 감안해 반납금 재산정해야”

보험금을 갚는다 해도 복구 문제가 남아있다. 올해 말이면 개성공단 설비와 건물이 방치된 지 3년이다. 기업들은 복구비용에는 얼마가 들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3개월 동안 기업들은 꾸준히 방북을 신청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임기언 창진어패럴 대표는 “설비는 녹슬었을 것이고 건물 내 수도관 등은 동파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대표는 “설비 안의 부품도 확인해야 한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공업지구에서 무슨 일을 하든 누구도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며 “공장들은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두고 온 완제품과 원·부자재도 비슷한 처지일 것으로 보인다. 완제품들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기업 대표가 중국으로부터 “너희 회사 물건이 시장에 나왔다. 필요하면 사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측에서 북측 물건을 구매하는 건 불법이다. 그 물건들이 개성공단으로 돌아갔는지, 다른 곳으로 팔려나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아가 개성공단이 재개된다 해도 기존에 불거졌던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력부족이 대표적이다. 초기 입주기업들 사정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후발업체들의 경우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최 대표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0차례 인력을 요구해서 700명까지 확대했다”며 “당시 공장 가동률은 60%”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인력부족은 만성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연구원이 지난해 5월 펴낸 <개성공단 운영실태와 발전방안>에 따르면 남측이 요구했으나 북측이 공급해주지 못한 노동자 수는 2007년 1500여명 수준이었으나 2013년에는 1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노무현 정부가 1만5000명 규모 숙소를 짓는 것에 합의한 이유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권에서 없던 일로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올해 개성공단이 재개된다 해도 2단계·3단계는 시기상조다. 현대아산 개발계획에 따르면 1단계 100만평 규모의 공장이 가동되는 경우 필요한 노동력은 10만명이다. 3단계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에는 35만명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당시 고용된 북측 인력은 5만5000명 수준이었다.

심지어 기존 인력이 얼마나 복귀할지도 미지수다. 이 대표는 “공단이 재개된다고 해도 6개월 안에 70% 정도만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실제 2013년도 잠정중단 당시에도 20%는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3년이 지나버렸다”고 말했다. 기업들에 따르면 2013년 잠정중단 당시 인력 회복에 걸린 시간은 1년이었다.

까다로운 3통(통행·통신·통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남측 인원은 남북에서 관련 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각각 7일과 14일이 소요된다. 통신과 관련해 KT는 인터넷, 이동전화 등을 위해 대규모 통신센터 건립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개성공단 내에서는 유선전화와 팩스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남북관계의 불안정성 등 정치적 리스크를 제외하면 개성공단 진출을 계획했던 기업들이 실제 진출을 꺼려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3통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대표도 “기업 입장에서는 3통이 해결되면 편하다. 남북 정부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역시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남북 경협의 장밋빛 전망만을 말하기 전에, 기존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는 18일 총회를 열고 향후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