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크라우드 워커’의 시대가 온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올 고용·근로환경의 변화… 노동의 디스토피아냐, 자유로운 일자리냐

잔소리를 일삼던 상사가 없어진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이 사장이 된다. 응대하는 고객에게 제공할 서비스만 신경쓰면 된다. 맡는 건수가 바로 수입으로 이어지니 최대한 많은 일을 따기 위해 같은 처지의 서비스 제공자들과의 경쟁에서 앞설 궁리도 해야 한다. 하지만 조직 내 인간관계 같은,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는 비생산적인 요소에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프리랜서 앱 개발자인 이모씨(34)의 경험이다. 대학 졸업 후 IT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이씨는 직장의 근무환경을 더 버티지 못하고 3년 만에 퇴사했다. 야근이 넘쳐나는 직종의 특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불합리한 직장 내 상하관계 때문에 인격적인 모독까지 당하는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 올해로 6년차 프리랜서 개발자가 된 이씨는 지난해부터는 개발인력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와 개발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까지 활용해 일거리를 찾는다. 프리랜서 배달기사와 고객을 이어주는 배달 대행업체와 유사한 체계다.

서울의 한 음식점 배달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주문받은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일거리를 기다리는 새로운 노동계급

“아무래도 수수료를 떼는 만큼 무지막지하게 말이 안되는 프로젝트는 거르고 일을 고를 수 있는 장점은 있죠. 단점이라면 그런 장점이 무색해지는 프로젝트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걸려들 수 있다는 것하고, 클라이언트가 오케이하기 전에는 중개 플랫폼 업체에 맡겨진 프로젝트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것 정도?” 이씨가 말하는 ‘무지막지하게 말이 안되는’ 프로젝트란 IT업계 프리랜서 개발자들에겐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는 작업환경에 가깝다. 정상적인 업무 흐름으로는 도저히 정한 기한 안에 끝낼 수 없는 과중한 업무, 사사건건 개입하고 트집잡으며 ‘갑질’하는 업체의 관리자 등이 포함된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같은 업종의 타 프리랜서와 경쟁도 해야 한다. 직장 속 힘겨운 환경을 피해 프리랜서가 됐지만 언제 일감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짊어져야 했고, 그 문제를 보완하려 중개 플랫폼을 이용했지만 다시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씨가 겪고 있는 문제를 통해 준비 없는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노동의 디스토피아를 엿볼 수 있다. 그간 사람이 해오던 일을 자동화된 업무체계가 대신하면서 일자리는 줄어든다. 기업과 고용주는 때때로 인력이 필요하더라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인력 중개 플랫폼을 통해 언제든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킬 수 있다. 업무를 지시하는 직장 상사나 관리자의 역할까지 기계의 알고리즘이 대신한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맞는 일거리가 들어왔다는 알림을 받으면 일을 해주고 보수를 받는다. 자동화된 작업환경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쉽게 해당업무를 맡을 수 있지만 그만큼 늘어난 산업예비군의 규모 탓에 경쟁은 치열해진다. ‘크라우드 워커(crowd worker)’라는 용어처럼 일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군중이 새로운 노동계급으로 출현하는 시대가 올 수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노동에 관해 비관적인 미래만을 그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겨우 앞으로의 변화상을 어렴풋이 그릴 수 있는 단계에 와 있기 때문에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재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는 ‘크라우드 워크’ 또는 ‘플랫폼 노동’의 모습을 봐도 아직 비관적인 면만 있지는 않다. 현재 도입된 가장 대표적인 크라우드 워크 업종인 배달 대행업계를 보면 “시간당 1만5000원까지 벌 수 있다”는 한 업체의 광고처럼 한 식당에 고용되어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기본적으로 자영업자와 다름없는 신분으로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맞춰 원하는 만큼 더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하는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일을 하다 배달 대행업체 소속으로 갈아탄 김인철씨(24)는 총수입은 다소 늘어났지만 일한 시간 대비로 따져보면 결과적으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전에는 하루 평균 6~7시간 일하고 100만원 조금 넘게 벌었는데 여기로 옮기면서 일하는 시간도 늘려서 많을 때는 190만~200만원까지도 벌어봤다”는 김씨는 “그런데 일단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있고, 오토바이 연료비랑 배달 늦으면 내는 벌금 같은 지출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훨씬 줄어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문이 들어와도 다른 배달원이 먼저 채가면 1건당 3000원 정도가 떨어지는 다음 주문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 소득 없이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이왕이면 대기시간까지 업무시간에 포함해 월급을 주는 식당으로 다시 옮기고 싶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전엔 주문 많지 않은 분식집에서 일해도 200만원은 받았다는데, 요즘은 다들 대행업체 쓰니까 직접 사람 쓰는 곳이 많이 없어졌어요.”

현재 배달대행 업계의 장점과 단점

혹시나 사고가 나도 산재보상은 꿈도 못 꾼다. 자영업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일자리라고는 하지만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 보험 영업사원이나 학습지 교사처럼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존의 ‘특수고용노동자’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배달 대행업체는 배달을 중개해 줄 뿐이고, 음식점 역시 대행업체에 배달을 위탁했을 뿐이기 때문에 이들은 4대보험에도 자비로 가입해야 한다. 최저임금이나 퇴직금 같은 최소한의 보호도 누릴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직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노동환경의 변화는 단편적인 모습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해외로 눈을 돌리면 적잖은 실마리를 찾을 순 있다.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이란 개념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나라 중 하나다. 국내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는 한편, 고령화 때문에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일자리에서는 젊은 인력의 유입이 줄어든 데다, 미국 등 경쟁국에 비해 기술 경쟁력도 떨어지는 위기를 맞으며 대책을 모색한 것이다. 2011년부터 추진된 독일의 ‘스마트팩토리’ 기획은 기존 제조업의 대량생산체제 대신 전 국토를 네트워크형 스마트공장 산업단지로 재편해 맞춤형 생산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지향하며 만들어졌다.

정보통신기술(ICT) 업체가 몰려 있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김기남 기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러한 변화를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과 유통, 의료 등 산업 전체로 확대 적용하면서 이름 붙인 것이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등 기술의 발전에 따른 총체적인 변화를 포괄하기 때문에 그 범위는 더욱 넓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크라우드 워크’의 확산이 서비스산업에서 주로 나타나는 변화지만,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제조업 공장에서의 혁신적 변화가 한국에서는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도 할 뿐더러, 제조업 분야에서의 일자리 감소가 더욱 현격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독일 노동시장 및 직업연구소는 인더스트리 4.0 도입으로 2025년까지 제조업에서만 자국 내 49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일자리가 무조건 줄어드는 것만은 아니다. 서비스업 일자리는 같은 기간 43만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6만개의 일자리가 순감한다. 보다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짜서 분석하면 업계에 기술이 도입되는 수준과 매출액이 늘어나는 상황에 따라 일자리 증감폭도 달라진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분석에 따르면 같은 기간 연간 매출액이 1% 늘어나고, 기술 도입률이 50%일 때 제조업 일자리는 35만개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국내의 일자리 상황 변화에 대해선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독일 수준으로 분석한 자료는 없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의 황덕순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변화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역사적으로 수차례 반복되었지만 사라지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져 왔다는 점을 들어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견해가 여전히 지배적”이라고 지적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비관적인 미래만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노동강도가 낮아져 일하기는 수월해지고 한 직종에서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는 것도 보다 쉬워진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도 노동시간을 줄이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변화에 따라 고용규모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일자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면서 “지난 세기 대부분의 나라에서 큰 폭으로 노동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에 고용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줄어들지만 새 일자리 창출도

결국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오는 혜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전히 누릴 수 있으려면 노동권과 기본적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미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오기도 전부터 제조업 현장에서 하청 등의 외주화 및 비정규직화로 일자리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변화가 와 있었다. 크라우드 워크의 배경에는 인력을 쉽게 채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고용 유연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특히 서비스업 분야의 크라우드 워커를 중심으로 근무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하루 종일 고객의 서비스 요청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노동환경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의 악화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조치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위협을 동시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대처해야 하는 셈이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노동의 디지털화가 쉬는 시간에조차 업무에 신경써야 하는 노동의 탈경계화를 부르고, 그 결과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으로 이어져 노동자들 간의 내부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이미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고 넘치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를 강조한 새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중장기적 고용·노동환경 변화에 대해서는 대비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포함시키고 있다. 여기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등도 공약에 따라 준비 중인 만큼 4차 산업혁명 자체가 노동의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일자리와 노동 관련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근본적으로 임금노동의 개념이 바뀌는 급격한 변화에 관한 전망도 포함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임운택 교수는 “우선은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현재의 일자리 수준을 가능한 한 유지하는 대책이 필요할 것이고, 일자리의 총량이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선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등의 전향적인 대안까지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며 “그에 못지않게 정부 주도의 직업 및 이직교육이 유명무실해진 현실을 개선해 산업의 변화에 맞는 직무역량을 효과적으로 키우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