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파견 지옥’ 안산시의 실험, 노동자 인권 지켜줄까

반월·시화공단은 전국에서 파견노동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에 반해 노조 조직률은 전국 최저로 1%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의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안산시가 국내 최초로 ‘노동 인권 조례’ 제정을 위해 나선 이유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는 최경은씨(가명·20대)는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받으면 ‘파란색’부터 찾는다. 최씨가 공장에서 입어야 하는 티셔츠 색깔이다. ㄱ업체 소속 파견사원임을 알리는 ‘신분증표’이기도 하다. 입사 초기 그녀는 멋모르고 아무데나 앉아 밥을 먹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는 온통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작업장이 달라 점심시간 외에는 본 적이 거의 없어 최씨는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나중에 한 소리 들었어요. ‘거기는 오래 다닌 사람들(정규직)이 앉아서 먹는 자린데, 네가 왜 거기 앉아서 먹느냐고’요.”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색깔로 나뉘어 있었다. 파란색은 파란색끼리. 파란색답게. 밥 먹을 때도 신경 써야 하는 원칙이었다. 점심시간의 자리 배치는 최씨가 매일 일터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사항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최씨는 파란색 중에서도 막내였다. 밥도 한자리에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사회에 이제 첫발을 디딘 최씨에게 가시처럼 박혔다. 그들은 늘 최씨를 “야”라고 부르고 “빨리빨리 해”라며 소리를 질렀다. “내일 일이 있어서 잔업을 못 하겠다”고 말하면 “너 일하기 싫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서웠어요. 내가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 같고. 교도소에 있는 것 같고.” 물을 마시는 것과 화장실에 가는 것도 게으름 피우는 것처럼 눈치가 보였다.

살벌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쉬는 시간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이전에 다니던 데는 언니들이 담배 심부름도 시켰어요. 출근할 때마다 사오라고. 회사 밖에 매점이 있는데 외출이 금지됐거든요. 제가 셔틀이 된 거 같아 너무 억울했어요.” 최씨는 “야야” 소리와 욕설을 들으면 부당하다는 생각보다 일단 무서워서 움츠러든다고 했다. 최씨와 달리 “내가 왜요?”라고 잘 쏘아붙이던 친구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잘렸다. 회사에는 노조도 없었다. 노조가 있어도 ‘파견해제’는 막기 어렵지만, 화장실 갈 때 눈치 주지 않고 덜 무섭게 한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다.

물 마시고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여
최씨는 지금 일하는 곳에서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두 번 썼다. 현행 파견법에 따른 파견 제한기간이 6개월이다. 3개월이 지나면 ‘물량’을 뽑아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 역시 잘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씨는 인권활동가·노무사 등으로 구성된 반월시화노동자권리찾기 모임 ‘월담’과의 상담에서 “나는 날파리(하루살이) 인생 같다”고 털어놓았다. 봄이 오더라도 최씨에게 일터는 늘 겨울이다.

노동조합에도 중앙정부에도 기댈 수 없는 최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누가 나서야 바람막이라도 될 수 있을까. 반월·시화공단의 극심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이례적으로 나섰다. 안산시는 지난 2일 ‘안산시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안’을 발표해 입법예고했다. 시는 오는 23일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현재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심의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다음 달 25일 시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통과가 된다면 전국 최초로 ‘노동인권 조례’가 제정된다. 조례안에는 노동자의 인권보호 및 증진을 시장의 책무로 규정하고, 시장은 5년마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이를 위해 시는 실태조사 및 노동인권 교육을 실시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활동기구로 안산시노동인권보호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안산시가 나서게 된 것은 반월·시화공단의 심각한 노동실태에 대한 공감대가 이전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반월·시화공단은 ‘하루살이 인생’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경기 안산과 시흥시. 전국의 파견노동자 12만명 중 2만명(16.6%)이 두 공단에서 일한다. 고용노동부 2012년 자료를 보면 전국의 2000여 파견회사 중 312개(안산 229개, 시흥 83개)가 이곳에 있다. 그러다보니 노조 조직률도 전국 최저인 1%(전국 평균 10%)에 불과하다. 안산시에 따르면 반월공단 지역 작업장의 평균 근로인원 수는 17명이다.

지난 15일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 보고회’를 연 월담은 “CCTV를 통한 감시, 소지품 검사, 차임벨을 통한 행동 통제, 일상적인 폭언과 성희롱 등 반월·시화공단 내 인권침해가 만연하다”고 밝혔다. 월담은 2013년부터 안산역 앞에서 부스를 차려놓고 상담작업과 노동자들을 위한 책자 배포 사업을 하고 있었다. 장시간 근무나 첨단장비를 이용한 감시뿐 아니라 ‘소지품 검사’, ‘복장 검사’ 등 구시대적 공장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반월·시화공단의 특징이다. 월담은 “반월·시화공단은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하청업체들이다. 원청 대기업이 가하는 수익성 압박을 견뎌내기 위한 비용절감 전략으로 외주화와 비정규직을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인권침해’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회사가 택하는 거의 유일한 전략이다.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의 독촉에 시달릴수록 복장관리 등 노동자들의 ‘군기’를 잡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개개인을 움츠러들게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빈틈없이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파견직으로 일하는 이지은씨(가명·30대)의 말이다. “테이프를 떼내는 일을 하는데, 관리자가 1시간마다 와서 체크를 해요. 500개를 떼면 이제 시간당 550개를 떼야 한다 그러고, 550개를 떼면 600개를 떼야 한다 그러고. 장갑을 끼고 12시간이나 테이프를 떼다 보면 손에 물집이 잡혀요.” 박희정씨(가명·40대)는 “다른 라인하고 작업물량이 700개 차이가 났는데, 다음날 조회에서 반장이 ‘너희는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라고 막 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점심시간은 구내식당이 없어 직원들이 외부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도 점심시간을 40분으로 한정했다. 박씨와 이씨는 서로 다른 곳에서 근무하지만 일터에서 “야 이년아”라고 불리는 것은 예사라고 말했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욕설을 들으면 기분은 나쁘지만 ‘인권침해’라기보다 ‘개인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였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려면 ‘동료 평가’를 후하게 받아야 해서, 누구에게도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음을 감추는 것이 일상화돼 있었다고 월담은 전했다. 정현철 민주노총 안산지부 부의장은 “반월·시화공단은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중소기업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파견직의 비중이 늘었다. 이주노동자들 비율이 높다보니 전반적으로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김기호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권리구제팀장은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김 팀장은 “체불임금 문제가 90% 이상”이라며 “불이익을 당하면 신고정신을 발휘해달라”고 말했다. ‘월담’에서 활동한 최순실 노무사는 “인권침해를 당하는 파견·비정규직 노동자는 신고할 시간도 없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관리·감독 업무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근본 원인은 하청과 파견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하청구조’와 ‘파견’ 문제에 있다. 기업체의 근로감독 실태조사 및 처벌 권한은 고용노동부에 있다. 인권침해가 적발되더라도 안산시가 기업을 처벌할 권한은 없다. ‘파견’ 등 비정규직 문제는 입법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조례는 노동인권 교육, 노동자 지원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안산시의 조례안이 통과되더라도 ‘실효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인권활동가인 명숙 월담 운영위원은 “조례 제정뿐 아니라 고용노동부에서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정기적인 근로감독과 특별감독을 시행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긍정적 기대가 더 크다. 안산시는 지난해 7월 지역 정치인, 노동계, 학계 인사 등 14명으로 노동정책 자문단을 꾸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비정규직·여성노동·이주노동 여러 노동 관련 단체 대표자들, 박형근 신안산대학 교수, 안산 상공회의소, 안산시청,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주미희 시의원(더민주), 윤석진 시의원(새누리) 등이 자문단에 참여했다. 자문단을 중심으로 8차례 회의를 하고 공청회를 열었다. 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바탕해 노동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은 자문단에서 제안한 내용이었다. 박재철 안산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조례 제정은 안산지역의 실질적인 노·사·민·정 협의체 역할을 한 자문단에서 이뤄진 것으로, 지역사회가 광범위하게 합의해 노동정책을 수립하게 된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시는 이번 조례안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는 않지만 맞벌이 부부를 위한 아동 쉼터 설치, 노동자들의 공제조합 지원 조사 등 복지와 노동을 통합하는 정책을 세울 것을 이번 논의과정에서 정했다. 2009년부터 노동단체에서 주장하던 내용이었다. 조례안에는 시가 ‘일과 삶의 균형’,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제도의 활성화’ 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안산 싱공회의소 측도 ‘기술인력센터’를 공동으로 세워 전문적 기능공 육성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함께 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노동조합, 비정규센터, 사용자단체, 시의회, 시청 등 개별로 진행되던 사업을 조례를 통해 체계적으로 갖추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합의’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다.

양호경 서울시 노동전문관은 “‘금지’가 가능한 법률과 달리 조례는 실태조사 및 교육 등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설계하도록 돼 있다. 서울시의 경험으로 봤을 때 지방정부의 힘으로 지원사업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실태조사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 제안할 수 있고, 고용노동부에 대신 신고할 수도 있다. 정부기관의 신고이니 고용노동부에도 더 압박이 될 수 있다. 양 노동전문관은 “한 번에 변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 권리에 관한 책자를 만들어 사업체에 배포하거나, ‘고구신’(만화 <송곳>에 등장하는 노무사)을 시에서 채용해 공단 곳곳에 사무실을 내게 하는 것만으로도 업주들을 긴장시킬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 지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례안 제정 이후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명숙 월담 집행위원도 15일 토론회에서 “같은 반월·시화공단 내에서라도 노동조합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컸다. 일단 노동자가 단체협약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쉽게 보지 못한다. 노동조합이 있는 작업장에서는 인권침해가 확실히 개선되는 상황을 보였다”고 전했다. 노조를 통해 한 작업장에서 파견노동자들이 다른 색깔의 사물함을 사용하도록 하던 차별을 없앴던 것이 일례다.

‘파견’과 ‘하청구조’가 근본 원인이지만 인권침해 문제는 노동자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조례’가 얼어붙은 노동인권의 현장에 바로 봄을 부르지는 못해도. 변화에 한 발짝 다가가는 시작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월·시화공단 어쩌다 ‘파견 지옥’으로

불법파견이 유독 반월·시화공단에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반월·시화산업단지 대부분이 대기업 하청업체로 이뤄졌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반월·시화공단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발된 것은 국가 시책과 연관이 크다.

반월산업단지 개발은 서울의 인구 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울산·거제 등 남동임해공업단지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지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부터 서울 도심에서 70㎞ 이상 떨어진 지역에 새로운 산업단지를 건설할 것을 추진했다. 서울 구로, 영등포 등에 몰려 있던 ‘부적격’ 공장을 옮겨 서울의 인구와 공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경기 화성군 반월면, 시흥군 수암면 및 군자면 일부 지역 57.85㎢가 새 산업단지로 낙점돼 1977년 첫 삽을 떴다.

새 산업단지 건설은 성공적이었다. 넓고 쾌적하고 지가도 저렴했으며 서울 및 인천과도 가까워 인력을 모집하는 데도, 수출에도 유리했다. 구로나 영등포에 있던 중소기업들이 더 유리한 입지조건을 찾아 이주했다. 주거지 근처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기계·철강 등 업종의 이주비율이 높았다. 1986년에는 반월산업단지 서편 염전을 메워 약 16㎢의 산업단지를 추가 조성했다. 이것이 시화국가산업단지다. 주택 건설과 교통시설 확충도 병행해 독립적 생산기반을 갖춘 ‘안산시’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국내 중소기업 자체의 침체다. 한국 경제구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벌어지는 방향으로 재편되면서 반월·시화산업단지에서 영세기업의 비율이 높아졌다. 50인 이상의 사업체는 1994년 11.4%였으나 2012년에는 3.2%로 대폭 줄었다. 20인 미만 사업체 수는 1994년 78.3%에서 2012년 91.1%로 대폭 늘었다. 기계·철강산업의 국내 경쟁력 저하도 사업의 영세화를 부추겼다. 불공정한 원청-하청 관계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파견업이 기승을 부릴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수도권과 가깝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인력을 모집해 그날그날 공급하는 시스템은 지방에서는 쉽지 않다. 수도권이라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이 파견업에 유리하게 미쳤을 것”이라며 “파견은 안산뿐 아니라 부평, 화성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대기업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다 실명위기에 빠진 20대 노동자도 인천 남동공단(부평)에서 근무하는 파견직원이었다.

파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노동문제의 해법으로 여기는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도 불법파견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이훈원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장은 “파견노동자들의 절반 정도는 스스로 원해서 파견을 하고 있고, 또 스스로 원해서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이 지역을 찾아 중소기업 인력난의 해법으로 파견 확대를 제안했다. 한편 2015년 민주노총이 8개 공단을 대상으로 한 노동실태 조사에서 반월·시화 지역이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 수치를 기록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