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우리에게 뭘 남겼나

눈앞의 공학기술에 호들갑떨지 말고 공감할 수 있는 상징체계와 신뢰쌓기 중요

예정된 승부였는데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벌써부터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완패한 것이 놀랍기는 했다. 바둑을 두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생각보다 빨리 발전했다. 학창시절 때만 해도, 바둑은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인간 지성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멘탈게임이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복잡해서 컴퓨터가 도저히 인간을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요즘 젊은 컴퓨터공학도들은 오히려 반문한다. 경우의 수가 많을 뿐, 무한대가 아닌데 어떻게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을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냐고. 그만큼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빅데이터와 컴퓨팅 능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기술발전 과정과 사회적 함의 이해해야
사실 인공지능이 복잡성을 요구하는 여러가지 일들에서 인간을 넘어서고 대체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지금은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이사이기도 하다)이 2045년께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완벽히 넘어서는 특이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배후에는 수많은 예측과 의사결정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인간을 대신해 활약 중이다.

모든 놀라운 사건에는 짧게는 수 년에서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간의 준비기간과 진행과정이 있었다. 갑작스런 ‘쇼크’나 호들갑스런 표현은 그런 과정에 대한 관찰이 부족했음을,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음을 드러낼 뿐이다. 혹자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결과를 미국이 1950년대에 경험했던 ‘스푸트니크 쇼크’에 비견하며, 미래 대비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국이 대대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세돌 9단이 3월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 만에 알파고에 불계승한 뒤 기자회견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그런 주장마저도 또 다른 호들갑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작금의 기술발전 과정과 사회적 함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스카이넷’(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을 절멸시킨 인공지능. 구글 팀 내부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이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넋두리나, 그래도 인간 고유의 고귀함은 기계가 대체하지 못한다는 진부한 말은 기술과 사회변동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류가 기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핵심적 역량과 방향성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런 발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속성을 원인과 결과가 될 개연성이 있는 복잡한 변인들의 패턴화를 통한 예측가능성의 정량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17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줄곧 발전한 현대성의 특성이기도 했다. 생존과 소멸, 실패와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온갖 변인들을 반영한 보험과 주식, 투자가 예측가능성에 기반한 자본주의를 일으켰고,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 제국을 만들었다. 물론 그런 예측가능성이 완벽했던 적은 드물지만, 예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조직과 사회 차원의 신뢰를 숫자라는 상징을 통해서 창출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즉 기존의 신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는 고도의 상징체계(숫자)를 통한 신뢰가 글로벌 권력을 만들었다.

우리는 지금, 지난 수백 년간 지속된 글로벌 권력 의지의 한가운데에 있다. 구글은 앞으로도 확률과 숫자의 교리를 더욱 날카롭게 벼릴 것이다. 마치 정석에서 벗어난 바둑돌을 놓듯, 멈출 줄 모르는 패턴화는 인간이 미처 생각지 못한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당장 여러 질문이 꼬리를 문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글로벌 ‘숫자 신’ 만들기에 동참해야 하는가? 만약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단지 숫자 신을 추종하는 군중을 넘어서 교리를 만들고 설파하는 과학자 혹은 전도사가 될 수 있을까?

3월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취재진이 직접 바둑판을 복기하면서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4국 맞대결을 지켜보고 있다.

새로운 인식론적 사고의 가능성
비즈니스를 하면서 필자가 만났던 몇몇 구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공학적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자부심은 대단한 성공도 낳았지만, 가끔씩은 인간과 사회의 미묘한 다이내믹스를 간과한 어이없는 실패도 낳았다. 후자의 사례로는 구글글래스가 대표적이다. 구글이 이제 2차원의 평면만을 가지는 바둑판을 평정했지만, 우리가 사는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의 세상은 그보다 훨씬 많은 차원을 가진다. 그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데이터와 강력한 컴퓨팅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금번의 알파고는 계산을 통해 바둑의 은유적인 표현보다 분명한 설명과 개념, 문화적 습성으로 굳어진 정석을 깨는 사고의 대안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소통, 협력하며 계속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위대한 지점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인식론적 사고의 가능성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정부는 곧바로 인공지능에 대해 투자를 하고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한다. 공학도들은 금번에 구글이 활용한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이런저런 특성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갑작스런 발표는 준비 안 된 호들갑을 드러낼 뿐이고, 공학도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인식론적 사고의 잠재력, 기술의 적절한 활용을 위한 사회적 가치지향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눈앞의 공학기술만이 아니라, 과학적 언어와 표상을 통해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상징체계와 신뢰 만들기가 중요하다. 그게 현재 글로벌 권력의 핵심이다. 미래의 주도를 위해 고도의 사유체계를 통한 신뢰를 창출하려면,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함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의 습속과 사고 구조는 고작 이진수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움도 소화하지 못하는 듯하다. 죽은 지식의 주입에만 바쁜 교육제도, 핵심 가치를 외면한 채 기진맥진한 페이지들을 가득 채워 포장하는 관료 주도의 국가 연구, 과거의 후진 인식과 습관을 짐짓 중요한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인 양 떠드는 정치인들,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가치가 지대 추구를 통한 생존이나 안락한 삶밖에 없는 매력 없는 사회는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위대함을 강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야 바뀔지 모르겠다고? 인공지능을 넘어 다채롭게 생각하고 협력할 수 있는 주체들을 키우라. 그들이 가로막히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예산을 부을 게 아니라. 그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거버넌스다.

<김도훈(아르스프락시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