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모독죄 위반 “네 마음을 까봐”

동병상련 느끼는 리트윗 보안법 피해자들 ‘속마음 수사’에 고통받아

지난 4월 18일 오후 9시쯤 서울 광화문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 현장. 경찰의 계속된 물대포 사용에 화가 난 청년 ㄱ씨는 현장에서 주운 종이 태극기에 라이터 불을 붙였다. 4월 20일 아침, ‘태극기 소각 청년’으로 호명된 ㄱ씨의 얼굴이 조선일보 1면에 실려 전국에 퍼져 나갔다. 한 극우단체는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폭동”이라며 “수갑을 채워 연행하라”고 주문했다. 같은 날 발행된 보수 신문들은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을 “국기를 뒤흔드는 시위대”, “반대한민국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모든 논란의 중심에 있던 ㄱ씨는 지난 5월 29일 체포됐다. ㄱ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5월 31일 저녁, 과거 ‘리트윗 보안법’ 피해자들의 모임인 ‘박정근 후원회’ 사람들이 서울 모처에서 모였다. 리트윗 보안법 사건은 2012년 박정근씨를 비롯한 일련의 사람들이 북한의 대남선전 트위터 ‘우리민족끼리’의 내용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은 사건이다.

박정근 후원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건과 ㄱ씨의 사건에서 많은 공통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ㄱ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법 105조, 국기모독죄 위반이었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 제정된 이 조항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하거나 오욕하는 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트윗 보안법 피해자들은 수도권 일대의 대공분실(보안수사대)에서 “어떤 목적으로 북한 트위터 글을 퍼날랐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

4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대들이 물대포를 맞으며 차벽을 밀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언론 통해 본인의 행동 이유 밝혀
박정근 후원회의 대표인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는 “리트윗 보안법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ㄱ씨도 이미 언론을 통해 태극기를 태운 이유를 설명했지만 경찰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었다는 답을 듣기 위해 그를 체포해서 조사하고, 구속까지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8일 집회 이후 ㄱ씨는 인터넷매체 슬로우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왜 태극기를 태웠느냐는 질문에 ㄱ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경찰이) 물대포로 세월호 집회 참석자들을 쏘고 있었다. 그 상황 직후에 우연히 종이 태극기를 현장에서 주웠고,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해서 태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일부 권력자들은 순국선열이 피로써 지킨 태극기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6월 2일 오전 1시쯤, 서울중앙지법은 ‘태극기 소각 청년’ ㄱ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ㄱ씨의 법률 대리인인 정민영 변호사와 ㄱ씨의 지인들은 그가 ‘평범하지 않게 된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ㄱ씨는 태극기 소각사건 이전부터 다니던 아르바이트 일자리에 계속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영장 기각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ㄱ씨의 주변인들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에 경찰 조사가 집중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박정근 후원회 회원들은 5월 31일 모임 이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우리는 증명되지 않는 마음속을 수사당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이미 겪었다. 누군가는 자기 집에서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태가 됐고, 누군가는 자해를 하고 긴 시간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고 밝혔다.

자기 집에서 잠을 이룰 수 없던 사람은 다름아닌 리트윗 보안법의 최초 피해자인 사진작가 박정근씨다. 박씨는 평소 북한정권에 비판적이었고, 북한정권 풍자를 위해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했다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3년 가까이 법정투쟁을 한 끝에 박씨는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박씨는 “수사받을 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느냐’, ‘(리트윗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위태로워질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똑같은 질문을 돌아가면서 하니까 이제 내가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상황에까지 몰리는 거다. 수사관은 ‘그럼 맞는 거네’ 하면서 진술조서에 적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집회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혐의로 체포된 ㄱ씨가 6월 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한때 박씨는 재개발 철거현장 등 사회 갈등이 일어나는 곳을 사진으로 담아 트위터에 올리고는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사회적인 일에는 관심을 끄고 있다. 뭔가 불이익을 당할 것 같기도 하고 예전처럼 의욕을 갖고 활동하기엔 좀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국가권력이 원하는 게 ‘넌 한 번 당했으니 이제 관심을 갖지 말아라’ 이런 거 아닌가.”

또 다른 리트윗 보안법 피해자 최용근씨(가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2년 10월 가택 압수수색을 당한 최씨는 이듬해 3월까지 간헐적으로 모 보안수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최씨는 “한 번 가면 8시간 정도는 쭉 조사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부분이 있다. 내가 올린 트위터 60여건이 문제가 됐는데, 그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하면서 (친북 성향이라는) 자백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과 상관없는 과거 등록금 투쟁이나 노동자 집회 참가 여부에 대해서도 자세히들 알고 계시더라. 신체적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정신적인 가혹행위였다”고 말했다.

박씨와 최씨를 포함해 총 8명이 리트윗 보안법 수사과정에서 사상검증성 질문을 받았고 증언했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받았다는 질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대남 선전공작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하느냐”, “북한 선군정치는 어떻게 생각하나”, “스스로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

박씨 외에 다른 리트윗 보안법 피해자들은 대부분 경찰 조사에서 그쳤다. 특별한 법적 불이익을 받은 건 아니지만 명백히 ‘무죄’를 선고받은 것도 아니어서 한편으론 찜찜한 느낌이 남아 있다는 게 박정근 후원회 사람들의 말이다. 최용근씨는 “나도 벌써 2년 넘게 경찰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았다. 그렇다고 수사가 종결됐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지금은 다른 활동을 하느라 되도록 리트윗 사건은 신경 쓰지 않으려 하는데, 언제든 수사가 재개되거나 구속영장이 떨어지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똑같은 질문 반복, 대답하기 헷갈려
ㄱ씨의 대리인인 정민영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으레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면이 있다. 이미 수사기관은 ㄱ씨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고, 그런 목적이 있으니까 태극기도 미리 준비한 것이고, 행동하기 전에 누군가 배후에 있는 단체와 상의한 적이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변호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기모독죄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봤다. 1992년 6월 법무부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적인 형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이 개정안은 ‘공용’의 국기를 모독한 경우에만 죄로 인정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0년 한국형사법학회가 검토한 형법개정 시안은 국기모독죄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전면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내심의 의사’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과도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사자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수사기관은 당사자의 평소 말과 글을 가지고 추정해야 한다. 하지만 광우병 시위 당시 PD수첩 관련자들의 7년치 이메일을 다 뒤져봤던 것처럼 미리 결론을 맞춰놓고 무리하게 짜맞추기 수사를 하는 건 이제 멈춰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지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실생활에서는 낡아서 쓸 수 없는 태극기를 버리거나 태우기도 하고, 태극기를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는 등 국기를 ‘훼손’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개인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을 가졌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처벌하고 싶은 사람을 잡아다가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며 국기모독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