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노동자를 불행하게 할까?

자동차나 전자, 반도체 등 산업용이 주도… 실버케어나 가사, 교육용으로 확산

“로봇을 단순히 공장에서 용접이나 페인팅만 하는 기계로 보면 안 된다. 국방분야에서 사람이 탐지하기 어려운 지역을 탐색하는 데 로봇이 쓰이고 있고, 의료영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혼자서 운전을 하는 자동차 로봇(무인자동차)까지 개발되고 있다.”

한국로봇학회장을 지낸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로봇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용 로봇 외에도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실버케어 로봇이나 가사·교육용 로봇도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 2010년대부터 급속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결합된다면, 더 이상이 직접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온다는 주장도 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궁극적으로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래됐다. 이미 1990년대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3차 산업혁명(IT혁명) 이후 ‘지능 기계’들이 발달하면서 매년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봤다.

6월 2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로보유니버스 2015’에 갖가지 용도의 드론들이 전시돼 있다. / 연합뉴스

로봇 밀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한국
인간의 노동이 가장 먼저 로봇 노동으로 바뀌는 나라는 어디가 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재로서는 한국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지난해 세계로봇연맹(IFR)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로봇 밀도(노동자 1만명당 로봇 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437대로, 2위 일본(323대)과 3위 독일(282대)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1·2위 간 격차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IFR는 밝혔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로봇을 많이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몇 가지를 제시한다.

오상록 연구원은 한국의 산업구조를 지적한다. 그는 “로봇이 주로 사용되는 산업군이 자동차나 전자, 반도체 등이다. 그런 쪽이 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다 보니, 로봇 전체 대수로는 아니지만 인구 대비 대수로 보면 세계 1위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위원은 노동운동이 취약한 상황도 로봇의 획기적인 도입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국내 산업현장에 로봇이 투입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노조 차원에서 로봇 도입에 대해 평가하거나 대응을 논의해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세계 1위가 된 것”이라며 “불황과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자본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로봇화·자동화를 더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정책위원은 한국뿐만 아니라 로봇 밀도가 높은 나라는 노조 조직률도 낮다고 주장했다. 2위 일본의 경우 한국과 더불어 OECD 국가 중 노조 조직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3위 독일에 대해 박 정책위원은 “2000년대 초 독일에서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진 후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40%가 넘던 노조 조직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변화된 독일의 노동운동 상황과 로봇 도입이 많아진 것이 맞물려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로봇 기술 수준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지난해 7월 나준호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이 중산층을 위협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전히 로봇은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점차 로봇은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

보고서는 로봇이 반복작업이 아닌 ‘비정형적 작업’에 투입된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스페인의 한 식료품회사에서 쓰는 로봇은 인간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불량품을 골라낸다. 영화 제작에 투입된 카메라 로봇은 인간보다 빠르면서도 정교한 카메라워크를 구사한다. 아마존 물류창고를 관리하는 로봇이나 독일의 공항에 등장한 주차대행 로봇 등 인간 고유의 업무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2013년 서구사회에서 화제를 모은 책 <기계와의 경쟁>은 지금 시대를 ‘2차 기계시대’로 봤다. 과거에는 단순반복적인 노동만 로봇이 대체했다면, 이제 좀 더 복잡한 노동도 대체가능한 시기가 됐다고 책은 분석했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매카피는 지금의 로봇 수준이 불량품을 골라내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봤다. 이들에 따르면 지금의 로봇들은 운전이나 번역 등 정해진 패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야 하는 분야에까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저자들은 이미 인간 노동력의 60%는 기계로 대체가 가능하며, 나머지 40%도 점차 로봇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로봇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나준호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이런 낙관론자들은 비관론자들이 ‘노동 총량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 총량이 정해져 있고, 고용시장이 ‘의자 빼앗기’ 게임과 같다는 것이다.

로봇은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오상록 연구원은 “로봇의 쓰임새가 늘어나면 그만큼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 덕분에 생겨나는 일자리도 생각해봐야 한다. 로봇산업 자체도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와 관련 있는 부품,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로버트 앳킨슨 미국 정보기술 및 혁신재단 이사장은 <기계와의 경쟁>이 발표된 이후 MIT 기술평론 기고글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일자리 기근의 배후에 로봇과 다른 기술들이 있다고 우리를 설득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비관론자들은)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자동화의 일차적 효과만 고려했다”며 기계 사용에 따른 상품가격의 하락, 노동자 임금의 상승과 이에 따른 사회 전체적인 투자효과 등을 볼 것을 강조했다.

로봇이라는 기술 자체보다는 전체적인 사회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전문가도 있다. 지난해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여러 사회학자들은 <자본주의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의 2장을 쓴 랜들 콜린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래의 진정한 위협은 로봇들의 반란이 아니라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 자본가 계급을 위한 노동의 기술적 대체의 마지막 단계라는 점”이라고 전망했다. 책의 번역자인 성백용 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랜들 콜린스의 전망은 그동안 중간계급이 담당했던 사무직이나 관리직까지 로봇이 담당하는 시대가 오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자동화에 따른 이득이 노동자가 아니라 설비 소유자가 온전히 가져간다는 것이다. 로봇 자체가 위협을 주는 게 아니라 로봇을 소유한 거대자본의 독점구조가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하순 정책위원은 노동과 자본과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로봇은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정책위원은 “최근 로봇은 프로그램된 대로만 움직이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인터넷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향까지 나가고 있다. 폴 크루그먼 등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로봇화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발전을 시장경제에만 맡겨둔다면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이익은 공장 소유자가 모두 차지하고 노동자들의 삶은 황폐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따라 기술 발전의 혜택을 통해 모든 사람이 적은 노동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