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구직 공고에 ‘열정’ 강조하는 회사 주의해야”

“정당한 걸 요구하는데 왜 내가 욕 먹어야 하는지 황당했다. 그들은 여직원에게는 상냥하고 고분고분 순응하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여성은 약자다. 취업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H씨의 이직과 퇴직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잔혹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터뷰를 하면서 몸을 누이고 배를 채울 만한 일정한 금액의 돈을 버는 것조차 이렇게 잔혹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음을 비우고 H씨의 취업 잔혹사를 들어보자.

자기소개를 해달라.
“31살의 출판사 직원이다. 홍보대행사, 잡지사를 거쳐 현재 직장에 몸을 담고 있다. 꾸준히 글쓰기와 콘텐츠 만드는 일에 매달려 왔다.”

직장을 다닐 때 어떠했는가.
“문화 관광 잡지 프리랜서 기자였다. 지방 맛집의 기사를 싣고 해당 기사가 실린 식당에 취재 대가 명목으로 잡지를 팔아야 했다. 프리랜서에서 상근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그것을 빌미로 잡일을 시켰다. 결국 고용형태가 애매한 형태로 되어버렸고 마음도 불안해져 그만두었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할 때, 근로계약서나 조건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문의했더니 ‘가만히 있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드라마 <미생> / tvN 제공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제스처를 했는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주의를 받고 욕을 먹었다. 정당한 걸 요구하는데 왜 내가 욕 먹어야 하는지 황당했다. 그들은 여직원에게는 상냥하고 고분고분 순응하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았다. 이런 거 보면 나도 참 ‘일못’ 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다양하게 일 못하는 회사들을 다니신 것 같다. 이보다 더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조금 유명했던 월간지를 펴내던 출판사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함께 일하는 팀장은 자신의 외로움을 동료 직원을 통해 해소하곤 했다. 함께 야근할 것을 강요했으며 전시회 동행도 요구했다. 외근하는 차량에 동승했는데 왜 굳이 밀폐된 공간인 세차장에 데리고 갔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농담이었지만 ‘혼전동거를 긍정적으로 고려하라’는 권유도 받았다. 그 후 존칭을 써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였더니 일주일 후 사직당했다.”

지금의 직장에서는 이런 점이 해소되었는가.
“여러 번의 이직은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나 자신이 ‘꼰대’인 상사가 있거나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는 직장에서는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직장은 다른 곳보다 덜 보수적이어서 편하게 다니고 있다.”

당신에게 직장이란.
“꾸준히 월급을 주는 곳이다.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그저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곳일 뿐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구직할 때 꼭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구직사이트에서 구직 공고를 봤을 때 ‘열정’이라는 표현을 쓴 회사를 주의해야 한다. 또한 창립멤버들이 친구들이어서 임원 간의 친목이 강한 회사를 주의해야 한다. 면접할 때 면접관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 가늠이 가능하다. 더불어 학연·지연을 배려하는 게 티 나는 회사는 피하는 게 좋다.”

<김종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