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대는 왜 정치 논의에 등 돌리나

보수나 진보 간의 선택이 아닌 ‘먹고 살기 바쁘니까’ 투표장에도 못 가

“보수화요? 글쎄요…. 제 주변 친구들 보면 딱히 보수라는 느낌은 없는데요. 반대로 막 정치적인 그런 애들도 잘 없고요.”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4학년인 황한웅씨(25)는 캠퍼스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던 친구 이대선씨(25)를 돌아보며 황씨가 물었다. “너네 과는 좀 진보적인 분위기 아냐?” 인문대학 소속이라는 이씨는 “그것도 옛말이지”라며 “선배들까지는 학생회 한다고 나서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다들 취직 안 돼서 바쁘니까 정치·사회 얘기도 안 꺼내”라고 답했다.

서울시내 한 대학 도서관에서 대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시위해도 결국 외면당한 거니까요”
황씨와 이씨는 대학에 처음 들어온 2009년을 떠올렸다. “등록금 내리라고 학생총회 열고, 선배들이 참석하라니까 가서 인원수 채우고 그랬죠. 요즘은 학기 초 아니면 신입생들도 그런 자리 안 나가는 것 같던데요.” 이씨는 광화문 등지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도 자주 참석해 ‘운동하는’ 선배들의 총애를 받았다고 말했다. “2008년 촛불집회 때는 고3이라서, 2011년 반값등록금 집회 때는 군대에 있어서 참여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전역하면 나도 활동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복학해 보니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아졌어요.” 이씨보다 한 학기 먼저 복학한 황씨가 말을 거들었다. “반값등록금 때는 분위기 좋아서 조금이라도 낮춰지나 기대했는데, 국가장학금인지 뭔지 생긴 것 말고는 변한 게 없었거든. 그때 다들 속으로 많이 실망했을 거야.”

비싼 등록금, 그리고 그에 반비례해 좁아지는 취업 문턱은 20대 대학생들이 경험한 구조적인 문제였다. 대학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안 싸워본 건 아니었다.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던 탓에 좀 더 일찌감치 포기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라고 황씨는 설명했다. “옛날에 만날 데모하던 시대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집회로 보였을지 몰라도 운동 경험도 없는 대학생들까지 나섰는데 결국 외면당한 거니까요.”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 효과가 나타났고, 그 결과 정치나 사회 이슈를 둔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씨 역시 “취업 안 되는 건 아예 누구랑 싸워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문제니까 ‘닥치고 공부나 하자’ 이러고 있는 거겠죠”라고 말했다.

20대가 보수화된다는 인식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20대 네티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의 주축세력이었던 2002년에 비해 노 전 대통령 임기 후반부에 접어든 2005년 무렵부터 20대층의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보수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2008년의 촛불집회 당시에도 10대 청소년들의 활발한 참여에 비해 상대적으로 참여가 저조해 보인 20대의 모습에서 보수화 논쟁이 벌어진 바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20대 보수화 논쟁이 보수화냐 탈정치화냐의 문제로 귀결된 데 비해 최근 20대들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분석에서는 다른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이전까지의 논쟁은 대부분 투표 결과나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보수와 진보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는 20대의 정치성향에 대한 분석에 치중하는 편이었다. 반면 현재의 20대가 보이는 정치적 특성은 보수나 진보 간의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급박한 필요 때문에 보다 넓은 영역에서의 정치적 논의에 등을 돌린다는 점에 있다. 즉 ‘먹고 살기 바쁘니까’ 투표장에도 못 나가는 선거 비참여층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취업과 스펙 이외 눈 돌릴 여력 없어
정치 참여에 관한 국제비교 자료를 참고하면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 분석 결과를 보면 투표율로 나타나는 한국인의 정치 참여율은 36개 회원국 가운데 12위로 평균 이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인의 정치 참여 특성이 드러난다. 정치 참여에 있어서의 사회적 불평등 지수는 5위였다. 가난할수록 투표와 같은 정치행위에 참여하기 힘들어지는 정도가 회원국들 가운데 다섯 번째였다는 뜻이다. 사회 계층별 투표율에다 세대별 투표율을 겹쳐 보면 결과는 더욱 명확해진다. 18대 대선의 20대 투표 미참여율은 34.8%로 가장 높아 50대의 10.1%에 비해 세 배 이상 높았다. 생애주기상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50대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그 반대인 20대에서는 투표율도 낮았던 것이다.

전문가들의 용어를 빌리면 정치효능감이 낮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과정에 참여하더라도 그 결과가 생활에 유용한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 때 정치효능감이 약해져 투표에 나설 마음이 줄어든다. 20대의 경우 정치효능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인 공동체적 연대를 경험하기 힘든 교육환경을 거친 뒤 현재까지도 취업을 위한 경쟁구도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주형 경남대 교수는 “당장의 취업과 스펙 채우기를 위한 것 이외의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는 사실은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의 참여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정치문화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개발원의 이영민 연구원도 ‘20대의 정치의식 특성과 정치성향의 형성경로’ 논문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이 연구원은 “20대의 정치 관심도가 꾸준히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은 가장 물질주의적 삶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결국 기존의 정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하지만 이 문제는 20대만의 문제나 책임이기보다는 시대적인 구조와 20대의 정치적 관심사를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20대가 정치적으로 배제되면서 다시 정치적 관심과 효능감이 떨어지게 되는 악순환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투표를 해왔지만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됐어도 그렇고 떨어져도 그렇고 기대만큼 하지는 못하더라고요. 실망은 하지만 투표라도 안 하면 아무 권리도 못 받은 사람처럼 느껴질까봐 하긴 할 거예요.” 커피전문점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유희진씨(26)의 관심도 안정적인 정규직 직장에 자리 잡는 것이다. “투표날 일해도 투표시간 정도는 낼 수 있으니까.” 유씨는 정치권에서 실업문제는 해결 못해도 과도하게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회 분위기만이라도 바뀌길 기대한다. 적어도 정치효능감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책임이 남은 셈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