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병맛통신]죽음까지 일관된 병맛! ‘몬티 파이튼’

암으로 가장 먼저 죽은 멤버의 유언도 비범했다. 동료에게 “자네는 영국 텔레비전 최초로 ‘shit’라는 단어를 말한 인물이니 영국 장례식에서 최초로 ‘fuck’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주게”라는 곤란한 유언을 남겨 동료는 장례식에서 “fuck, fuck, fuck” 하고 울면서 외쳐야 했다.

밝힘 위키 사이트 ‘엔하위키’에 몬티 파이튼 항목을 개설하여 작성한 많은 대인배들이 없었다면 23000% 같은 구체적 수치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몬티 파이튼(Monty Python)? 아직까지 한국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이름이다. 영국의 ‘개그 콘서트’ 그룹 같은 거라고 하면 조금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스팸어랏>의 원작을 만든 사람들이라고 하면 아, 하고 바로 아실지도. 영화 좀 봤다는 분이라면 몬티 파이튼은 들어본 적 없어도 테리 길리엄은 꿰고 계실 텐데, 그 테리 길리엄이 몸담았던 곳이 바로 몬티 파이튼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나는 동기생들과 나이도, 취향도 맞지 않아서 내내 겉돌았는데 그때 모두가 숭배했던 감독이 테리 길리엄이었다. 이 정도 좋아한다고 하면 먹어주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 싫었던 삐딱한 열여덟 살의 어느 날, <삶의 의미>(Meaning of life)를 본 나는 같은 과 학생들과 본격적으로 척지기 시작했다. 그 대단한 테리 길리엄이 몬티 파이튼의 일원이었고, 애니메이터로서의 재능을 하수구에 중국 인구 생활용수 쏟듯 하는 기세로 <삶의 의미>(1983)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브라이언의 삶>(1979)같은 영화에 쏟아붓곤 했다는 건 아무도 몰라줬다.

담당교수 김홍준 감독님이 어느 날 나를 붙잡고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너 그런 영화만 보다간 절대로 한국에서 영화 못한다. 결국 한 편 입봉 후 개점휴업이 됐으니 그 예언은 맞아떨어진 셈이 됐지만 몬티 파이튼에 빠져 지낸 것에는 후회가 없다. 이 영화 세 편만으로도 20대를 너끈히 살아낼 ‘병맛’ 혹은 ‘병멋’의 힘을 충만히 받았기 때문이다.

사후에 유골함으로 텔레비전 쇼에 출연
의외로 멤버 대부분이 ‘옥스브리지’(옥스포드+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인 이들의 가차 없는 병맛에 쓰러진 희생자는 수도 없이 많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도 몬티 파이튼의 각본가로 잠시 활약했고,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은 <브라이언의 삶>의 영화 제작비를 대기 위해 집까지 팔았다고 한다. 이유도 간단했다고. “내가 보고 싶으니까.” 예수가 태어나던 시각 옆집에서 태어난 아기 브라이언의 재수 없는 삶을 그린 이 영화는 마지막 즈음 십자가에 매달린 조지 해리슨을 볼 수 있는 것 말고도 영국인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 됐다.

장례식마다 빠짐없이 영국인들이 부른다는 라는 노래가 그 선물이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와 <브라이언의 삶>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레이엄 채프먼은 암으로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죽었는데, 유언도 비범했다. 동료 마크 클리스에게 “자네는 영국 텔레비전 최초로 ‘shit’라는 단어를 말한 인물이니 영국 장례식에서 최초로 ‘fuck’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주게”라는 곤란한 유언을 남겨 마크 클리스는 장례식에서 “fuck, fuck, fuck” 하고 울면서 외쳐야 했다. 죽음까지 일관된 이 병맛! 심지어 사후 텔레비전 쇼에 유골함으로 출연했다. 유골함이 달그락거리자 멤버들은 “오, 그레이엄이 뭔가 말하고 싶은가 봐요! 뭐? 죽은 건 x같다구?” 하며 호들갑을 떨다가 결국 유골함을 뒤엎고 그레이엄을 모으겠다며 진공청소기까지 끌고 나온다. 그의 장례식에서 위에 나온 노래 를 조문객들이 다 같이 불렀다. <브라이언의 삶>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해맑게 웃는 역으로 등장한 에릭 아이들이 만든 노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그가 칠순의 몸을 이끌고 등장해 불렀으며, 포클랜드 전쟁 때 격침된 영국 군함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이들이 합창한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그러면 얼마나 희망적인 노래인지 궁금할 듯도 한데, 물론 ‘기승전병?이다. 내 영어 솜씨는 병맛 코드라 치고 혜량하시길.

몬티 파이튼

When you’re chewing on life’s gristle, Don’t grumble, give a whistle. And this’ll help things turn out for the best.(인생이 찌꺼기를 던져줘도 투덜대지 말고 휘파람이나 불어, 그게 최선이지)

And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Always look on the light side of life.(그리고 늘 삶의 밝은 면을 보라구!)

Life’s a piece of shit, When you look at it.
Life’s a laugh and death’s a joke, it’s true.(잘 보면 산다는 건 똥이지, 삶은 웃음거리, 죽음은 농담거리)

So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death.
Just before you draw your terminal breath.(그러니 늘 죽음의 밝은 면을 보자고,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 전에)

대충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노래를 장례식이건 격침당한 군함이건 올림픽이건 할 것 없이 불러대는지 영국인들도 참 신기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찰스 왕세자의 60세 생일파티에서도 불렸는데, 왕실에 대한 예우는 극진한 편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더 신기한 일이었다. 한국인 중 최초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박사학위를 받은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의 유학 시절 기억에 따르면 아무리 추워도 도대체 움직이질 않던 라디에이터가 드디어 가동된 날이 있었다고 한다.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있나 했더니 바로 찰스 왕세자의 행차 때문. 그토록 아끼던 난방까지 틀어주는 걸 보니 이 나라 사람들이 왕손을 꽤나 생각하나보다 싶어 감탄했다고 라 교수는 소회했지만, 얼어붙은 케임브리지의 라디에이터를 움직인 천하의 찰스 왕세자도 몬티 파이튼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우아한 축하공연을 펼치는 와중에 또 에릭 아이들 영감이 망측한 발레리나 의상을 입고 등장해서 노래했다. “When you’re 60 years of age. And your mum won’t leave the stage. Remember that you’re still prince of Wales.”( 네 나이도 환갑이건만 니네 엄마는 무대(왕위)를 떠나질 않는구나. 그래도 넌 여전히 ‘프린스 오브 웨일즈’잖니!)

병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대인배 자세를
이렇게 위로인지 ‘엿’인지 알 수 없는 짓을 마구 하고 다니는 몬티 파이튼이지만, 기술이 발전해 유튜브에 몬티 파이튼 영상 녹화 자료가 업로드되자 모두 삭제시켰다. 나이가 들어 다들 좁쌀영감이 되었나? 얼핏 좀스러워 보였지만 그럴 리가. “무시무시한 기술로 여러분을 추적해 모두 고소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우리가 직접 유튜브에 고화질로 올려놓을 테니 즐겁게 보시고, 혹시 괜찮으면 우리 DVD 전집이 판매 중이니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고 발표하고 채널을 개설했으니 그야말로 대인배임을 인증한 셈이다. 덕분에 아마존에서 몬티 파이튼 DVD 판매량이 23000%나 치솟았다고. 여기에서 ‘병맛’의 가장 중요한 코드 하나가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대인배’. 병맛을 선보이거나 즐기려거든 결코 소인배여선 안 된다. 죄다 70을 넘긴 몬티 파이튼의 멤버들처럼, 뭐든 일단 크게 웃어넘길 태세가 된 대인배의 자세를 갖춰야 병맛의 치명적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그게 저작권이건, 왕세자건, 설령 자기 자신의 죽음이 되었다 할지라도.

김현진의 병맛통신

밝힘 위키 사이트 ‘엔하위키’ 몬티 파이튼 항목을 개설하여 작성한 많은 대인배들이 없었다면 23000%같은 구체적 수치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김현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