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늘 그때뿐,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

대형사고 끊이지 않는 한국사회, “우리 스스로 변해서 요구해야 바뀐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리본을 달고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한국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에게 무거운 슬픔과 함께 절망적인 의문을 안겨줬다. ‘우리는 왜 변하지 않는가.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도 왜 그대로일까. 왜 참사는 되풀이되는가.’

서울 광화문 인근 외국회사에 다니는 한 일본인 주부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사고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운전자나 보행자나 신호를 지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 주부는 올해 4월 1일 자녀가 일본인학교에 입학하면서 스쿨버스에 대해 설명받았다. 안내문은 정류장 위치를 알려주면서 ‘한국은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인도에도 오토바이가 다니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경고문은 짧지만 한국의 안전 불감증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에도 공연장 환풍구가 무너져 수십명이 다치거나 숨지는 안전불감증을 드러냈다. / 김기남 기자

자본 이익을 위해 용인되는 천박한 현실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가장 자주 말하는 것은 압축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누키 토모코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은 “변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물어보면 한국인들로부터 어김없이 그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일본 역시 패전 이후 1960~70년대에 고도성장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일본이라고 안전사고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일본은 사고가 있다고 해도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운다.

그는 “지진이 많은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에는 자연재해가 별달리 없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위험에 둔감한 게 아닌가 싶지만, 이렇게 엄청난 사고를 거듭해서 겪고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요인은 어떤 잘못을 해도 반성하지 않고 처벌되지 않는 사회환경이다. 오누키 특파원의 말이다. “해방 이후에도 일제 관료가 자리를 유지하고, 정치인이 뇌물을 받아 감옥에 다녀와서도 의원을 하고, 세금을 포탈해도 기업의 총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라면서, 약속과 질서를 지켜봐야 바보짓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사회적 정의가 기울어져 있는 곳에서 질서와 신뢰가 자랄 수 없다는 얘기다.

508명이 사망·실종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대한민국이 변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해체가 불가능한 사회구조 때문이며, 구체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게 용인되는 천박한 현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장 세월호 사건 자체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도망친 선장과 선원이 중형을 선고받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유병언 일가의 비리를 파헤쳐 희생양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우리가 절망한 진짜 이유는 돈벌이에 눈이 먼 기업이나 직업윤리조차 없는 선원들 때문이 아니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때와 달리, 이번에는 여객선이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도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우리 시스템, 정부에 대한 실망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도 반성도 처벌도 없는 상황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사회 변화의 계기를 정부가 막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한순간에 변하지는 못한다. 커다란 충격이 생겨도 조금씩, 그것도 시간이 걸려 바뀌는 정도다. 세월호 사건도 수많은 문제의 결과물이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 관료조직과의 결탁, 허술한 법률체계 등 수없이 많다. 그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사고를 계기로 고리를 찾아내서 개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시작하기로 합의한 것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시행령 등을 이용해 시작도 안 시켜주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32명이 사망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월호 문제 정치적으로 진화 더 꼬여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데 정치적으로 불리한 프레임으로 몰려 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이에 대해 서 연구위원은 “정치적 유·불리나 정파적 이해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합의한 것이 세월호 특위다. 사회시스템을 재구성하자는 논의의 출발점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잘못을 따져볼 기회를 이렇게 놓쳐버려서는 안 된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대형사고가 생기면 정파적 이익을 노려 싸움하고, 조금이라도 불리해질 우려가 있으면 문제 해결을 외면하는 일도 사회를 변하기 어렵게 만든다.

외국의 경우 대형 재난사고가 생겼다고 반드시 정권이 공격받는 것은 아니다. 2001년 9·11사태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통치력이 강화됐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도 원자바오 총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뢰가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초기의 실수 때문에 문제에 손을 대기 어려운 입장이 됐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와 대통령 자신이 사고 직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꼬였다. 아무도 구하지 못했고 현장도 통제하지 못했다. 이후에는 잘못을 말하지 못했고 안 했다. 정치적으로는 불리한 주제가 되자 변명하고 억눌렀다. 세월호 논의가 정치적인 구도로 바뀌면서 문제를 풀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제는 합리적인 논의나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침몰이 1년도 지나기 전에 그만 좀 하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렇게 강퍅한 사람이 아니라도 슬슬 벗어나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길거리 환기구가 무너져 사람이 죽고, 캠핑장에 불이나 일가족이 죽어도 다시 담담하다. 세월호 같은 초대형사고를 겪은 심장에는 더 이상 눈물 나는 장면도, 두려움도 없다는 것일까.

시민들이 먼저인지 정치권이 먼저인지 몰라도 동시에 발을 빼고 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겠나 싶은 마음이 또다시 자라면서, 언제나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공범이 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사회가 변하려면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김종엽 교수는 설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어버리고 싶다. 이번 사고의 유가족조차 마찬가지다. 다만 잊고 싶어도 그렇게 안 되는 것뿐이다. 사회의 변화는 정부나 특위만을 믿어서는 오지 않는다. 괜찮은 대안이 나오고 사회가 바뀌려면, 시민들이 깨어서 움직여야 한다. 내가 수수방관하고 있는데 사회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참사는 되풀이되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나는 깨어 움직이고 있는가’ ‘나는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