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진실 밝혔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딸을 잃은 딸바보 아빠’ 세월호 유가족 신현호씨

세월호 유가족 신현호씨(45)는 지난 2일 삭발을 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는 가족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삭발식에 동참했다. 삭발은 2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남자가 머리카락 자르는 게 뭐가 대수겠냐고 생각했지만 짧게 자른 머리가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귀가한 신씨는 별 생각 없이 승아에게 “아빠도 오늘 삭발하고 왔는데 한 번 볼래?”라며 가볍게 말을 건넸다. 승아는 세월호 참사로 잃어버린 딸 승희의 연년생 언니다. 승아는 “됐다”며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승아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30분 후, 승아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한테 슬쩍 물어 봤는데 딸애 눈이 퉁퉁 부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승아가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에요.”

아내와 함께 다니던 회사를 지난해 6월 그만둔 이후 신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활동에 매진했다. 1년을 그렇게 보내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다. 스트레스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져 약을 먹지 않고는 밥 먹기도 어려웠다. 갑상선에는 작은 종양이 생겼다. 그래도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니, 웃어야 했다. 씩씩해야 했다. 지난 1년간 두 번을 제외하고는 눈물도 보인 일이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 신현호씨가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진전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 백철 기자

회사 그만두고 가족대책위 활동
신씨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참사 당일, 뉴스를 본 승희네 가족은 급히 진도로 내려갔다. 단원고에서는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문자를 보냈고, 승희도 아빠에게 ‘아빠 걱정하지 마’라며 계속 문자를 보냈다. 신씨는 딸에게 ‘안에는 위험해. 밖에 난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답문을 보냈다. 또래보다 성숙했던 딸은 ‘구조될 거야 꼭. 지금은 한 명 움직이면 다 움직여서 절대 안 돼’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게… 끝이었다.

연락이 끊겼지만 신씨는 승희를 믿었다. 또래보다도, 언니보다도 훨씬 성숙한 딸이었기에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구조자 명단에 ‘신승희’란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신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나라가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아이들을 다 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참사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찾았을 때 한편의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에게 고함을 질렀고, 또 다른 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다. 신씨는 박수를 치진 않았지만 대통령의 등장에 기대를 건 쪽이었다. 딸만 찾을 수 있다면….

참사 7일째인 2014년 4월 22일 신씨는 승희를 찾았다. 딸은 더 이상 숨 쉬지 않고 잠자듯 누운 채로 그렇게 아빠에게 돌아왔다.

“104번 사망자를 찾았다고 했을 때 인상착의가 딱 우리 승희였어요. 혹시라도 많이 잘못됐을까봐 내가 먼저 확인했는데 다행히도 그냥 샤워를 오래 하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죠. 한참을 아이의 얼굴부터 손과 허벅지와 발까지 주무르면서 저도 모르게 펑펑 울고 있었는데, 한참을 그러다가 주변을 보니 모든 가족들은 다 떠나고 우리만 거기 남아 있었죠.”

참사 이후 안산시청 인근에 트라우마센터가 생겼다. 신씨도 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나라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도 있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승아와 함께 인근 병원의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길어야 10분 정도 상담을 한 뒤 받아온 약을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지난 7일, 승희의 같은 반 친구였던 박예슬양의 아버지 박종범씨가 신씨를 찾았다. 정혜신 박사가 운영하는 ‘치유공간 이웃’에 가보자는 거였다.

딱딱한 책상 너머가 아니라 바닥에 방석을 깔고 정 박사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병원과 달리 제한시간도 없었다. 아내와 딸을 챙겨야 해서 힘든 내색을 못한다는 신씨에게 정 박사는 마음을 자꾸 표현해야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마음의 짐도 덜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승희가 있다고 생각하고 승희에게 하고 싶은 말도 다 하라고 조언했다. 집으로 돌아온 신씨는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승희의 책상에 앉았다. 승희의 사진을 보며 말을 거는데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팽목에서 승희를 본 이후 오랜만에 크게 울었어요. 뭔가 마음속 응어리진 것이 내려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앞으로는 힘든 일 있으면 충분히 표현을 하면서 살 생각이에요.”

평범한 아빠였던 신씨는 어느덧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유가족 간담회에 나가 시민들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1년이 다 지나도록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젠 그만하라”는 말이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신씨도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 신씨의 전 직장 후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다. 몇 달 만에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술잔도 기울였다. 자연스레 주제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신씨에게 후배가 “이제 다 끝난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신씨는 당황했지만 꾹 참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후배에게 설명했다.

세월호 희생자 신승희양이 아버지 신현호씨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내용. / 신현호씨 제공

‘이젠 그만하라’는 말 상처로 돌아와
“우리 가족들이 살아온 과정을 잘 모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엄청 서운하고,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죠. 그래도 면전에서는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그날도 자리가 끝난 뒤에 ‘내가 좀 더 강하게 말을 했어야 했나’ 이런 후회를 하면서 돌아왔어요.”

신씨는 갑자기 외동딸이 되어버린 승아 걱정을 많이 했다. 부부는 진상규명에 삶을 바치고 있지만 승아만큼은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승희의 장례식이 끝난 뒤 승아를 설득해 다시 학교를 다니게 했다. 올해 3월에는 인근 도시 대학에 진학시켰다. 바로 옆 도시지만 안산과 달리 세월호 현수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참사의 고통을 잊고 싶어하는 승아에겐 잘됐다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승아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학교 교수님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승아에게 승희 이야기를 한 모양이에요. 물론 교수님은 좋은 취지로 위로의 말을 한 것이지만 승아는 그게 참 싫었대요.”

신씨가 읊조리듯 나직이 말했다. “1년 사이 참 많은 게 변했어요.” 최근 들어서는 더욱 감정상태가 고조된 것을 느낀다고 했다. “삭발을 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 하니까 한다는 느낌만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1주기가 가까워지니까 이젠 다 내려놓고 싶고, 확 죽고 싶은 마음도 더 들고… 스스로도 전하고는 많이 달라졌어요. 정말 악에 받쳐서 쫓아다니는 것 같아요.”

신현호씨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그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승희를 위해서. 또 다른 ‘승희’를 막기 위해서.

“진실이 다 밝혀졌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희생된 학생들 말고 선원이나 해경 등 주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휴대폰에 담겨 있던 기록은 다 공개가 됐나요. 세월호 노트북에서 나온 국정원 문건의 성격이 명확히 밝혀졌나요. 세월호의 진실을 철저히 밝혀야 ‘제2의 세월호’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오늘을 살고 있어요.”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