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교육 현실

내 아이가 도태되거나 지나치게 가난해지면 어떻게 하나, 라는 현실적 공포의 뼈대는 대학입시다. 공포영화의 등장인물로서 한국 부모들은 한 개의 대사만 반복한다. “현실이 어쩔 수 없어.”

무서운 장면은 많은데 재미는 없는 공포영화가 있다. 불안이 없기 때문이다. 불안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는 구체적인 대상에게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불안은 대상이 분명치 않다. 공포영화에는 공포와 함께 불안이 필요하다. 공포를 느낄 이유가 없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도 불안을 느낄 때 성공적인 공포영화가 된다. 재미있는 공포영화는 대개 “무서운 장면은 거의 없는데 되게 무서워”라는 말을 듣는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들이 공포영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이유도 지속되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공포영화라 해도 ‘불안영화’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불안은 공포보다 더 중요한 공포영화의 요소지만, 공포영화는 어디까지나 공포영화다.

서울 잠실에서 열린 성균관대 수시지원 설명회. / 김기남 기자

밑도 끝도 없이 지속되는 불안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실제 현실에서 공포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공포영화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현실에서 공포가 재미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현실에서 공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공포는 반드시 가짜이길 바라는)의 반영이다. 그러나 한국 부모들에게 교육문제는 ‘현실이 공포영화’다. 이 엄혹한 경쟁 현실에서 내 아이가 도태되거나 지나치게 가난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리고 거의 24시간 밑도 끝도 없이 지속되어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불안이 있다. 한국 부모들은 매우 성공적인 공포영화의 등장인물들이다.

내 아이가 도태되거나 지나치게 가난해지면 어떻게 하나, 라는 현실적 공포의 뼈대는 대학입시다. 한국 교육은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관한 일이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이 된 지 오래고, 대학입시는 바로 아이가 얼마짜리인가를 결정하는 거의 전적인 절차다. ‘전적인’이라 하지 않고 ‘거의 전적인’이라고 한 건 대학입시를 통하지 않고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는 경우가 아예 없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현상에서 전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전적인 것은 전적인 것이다. 부모들의 불안이 덧붙여져 ‘거의 전적인’은 ‘완전히 전적인’ 것이 된다. 공포영화의 등장인물로서 한국 부모들은 한 개의 대사만 반복한다. “현실이 어쩔 수 없어.”

그 현실의 배경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든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개탄, 이를테면 대학의 본디 소명이 무엇인가를 토론하거나 지성을 연마하고 학문을 도야하는 대학이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는 일은 잠시 접고, 그놈의 현실을 그 자체로 한 번 생각해보자. 현실은 과연 현실적인가. 대학을 나와야 아이들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학이 취업학원으로서 역할을 하고는 있는가 말이다.

현재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체로 80년대에 대학입시를 치른 사람들이다. 8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80년대 초반을 보면 대학 진학률은 20% 남짓이었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대학을 나온 부모들에게 이 비율은 뜻밖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 대학을 안 다닌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 사회·문화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끼리 관계하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유유상종이란 이야기다. 어찌 됐든 5명 중 한 명 꼴이라면 대학 졸업 학력이라는 게 꽤 변별성을 갖는다. 실제로 그 시절에 대학 나온 사람들은 굳이 대기업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재 대학 진학률은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최소 80% 이상이다. 대학을 가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학과 대학 정원이 터무니없이 늘어난 상태라 지방에는 정원을 못 채우는 학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5명 중 넷 이상이 대학에 가니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확률은 부모 때에 비해서 당연히 훨씬 적어졌다. 경제불황에다 돈을 쌓아두고도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으려 드는 기업들 덕에 그 확률은 더 줄어든다. 졸업 후 바로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은 10%가 채 못 된다. 모두에게 10%는 아니다. 10%가 전국의 모든 지역과 계층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사교육비와 성적 경쟁의 상관관계가 높아지고, 부모의 문화(교육)자본이 대물림하는 현상이 강해지면서 일류대는 상위 계급 아이들로 채워진 지 오래고, 갈수록 더 그럴 것이다.

꼼꼼한 우리들, 대학의 효용성 따져야
우리는 어떤 일이 거의 틀림없다고 할 때 ‘십중팔구’라고 한다. 십중팔구는 80~90%다. 일기예보에서 ‘비 올 확률 80~90%’라고 하는데 ‘비가 오지 않을 확률이 10%가 넘는다며 우산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평범한 가정의 아이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대학 나와 봐야 다 비정규직이거나 알바야”라는 말은 대다수 아이들에겐 과장이 아니다. 사실 이런 계산은 누구든 10분이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들 가운데 이 간단한 계산을 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삶의 다른 부문들과 비교하면 참 특별한 모습이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주유 경고등이 들어오면 첫 번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된다. 고속도로는 주유소의 간격이 넓어 자칫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멀리 운전하는 길이니 기름을 가득 넣고 든든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얼마 못 가서 나타난 주유소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ℓ당 200원이 싸다. ‘적당히 넣을 걸 뭐 하러 가득 채웠을까.’ ‘난 왜 늘 이럴까.’ 고작 200원을 가지고 신경 안 쓰려 해도 기분이 좋진 않다. 우리가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건 단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꼼꼼하게 계산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해서 아무리 작은 것도 되도록 낭비하지 않고 헛되게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돈뿐 아니라 시간도, 노동도, 삶과 관련한 다른 것들도 다 그렇다.

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

그런데 유독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 대학 졸업장의 효용성 이야기를 했지만 대학을 가고 다니는 데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가는가. 아이는 제대로 뛰어놀지도 못한 채 학원을 돌며 10대를 다 보내고,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30~40대를 아이에게 모조리 바친다. 상한선 없는 사교육비와 막대한 대학 등록금을 대는 아빠의 삶은 어떤가. 그렇게 막대한 시간과 돈과 노동을 바치는 일에 그렇게 계산이 없을 수가 있는가. 그러면서 언제나 ‘현실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며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고 스스로 믿기까지 한다. 우리의 현실은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영화스러운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현실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그것이다. 이 현실은 ‘현실’이자 동시에 ‘영화’인 것이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