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7시간’ 이번엔 규명될까?

산케이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사건… 정윤회씨, 아리송한 통화 기록

“먼저 이런 터무니없는 일로 재판정에 선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국적과 직업을 떠나서 어느 정도 실수도 할 수 있고 오해도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번에 이 문제는 정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정에 선 정윤회씨의 말이다. 40일 만의 출현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비선 국정개입 의혹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나온 정씨는 뒤를 따르는 취재진과 심야의 추격전을 벌였다. 당시 보도를 보면 경기도 안양시와 과천을 돌았던 정씨의 차량은 새벽 2시35분쯤 서울 서초구 모 호텔 앞에 섰다.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산 정씨는 “10시간 넘게 조사받은 사람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며 취재진에게 항의한 뒤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정씨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한 취재진의 노력은 무산됐다. 이날 정씨를 태운 에쿠스 차량은 전날 그가 타고 왔던 차량과 다른 차였다.

정씨의 1월 19일 법정 출두는 한 달 전인 구랍 15일 결정되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단독 보도한 것은 11월 28일. 산케이신문 보도와 관련해 재판이 시작된 날은 그 전날인 11월 27일이었다. 첫 재판을 마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의 변호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밝히는 것이 재판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세계일보 문건 보도 후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의외의 방향에서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시작은 2013년 12월쯤이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윤회 비선 국정개입’ 논란의 시작점은 세월호 사건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된 것이었다.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박 대통령이 비선의 핵심인물인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이다. 세계일보 보도 후 수많은 진실 공방과 의혹이 오갔지만 정작 출발점인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해서는 진전된 내용이 없었다.

정윤회씨가 1월 19일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시20분 평창동 발신”만 확인돼
이날 재판에서 정윤회씨의 주장에 따라 정씨의 4월 16일 당일 행적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오전 10시30분 정씨는 신사동 자신의 집(미승빌딩)에서 나와 차를 직접 운전해 평창동에 있는 역술가 이세민씨(본명 이상목)의 집으로 갔다. 이때가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정씨가 밝힌 이씨 집에 머무른 시간은 오후 2시쯤까지. 두 사람은 ‘군자학’(君子學), ‘남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씨의 집 1층에서 식사를 했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2층으로 옮겨 차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와 달리 정씨는 이날 조금 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그날 저녁 정씨가 과거 직장 동료 및 선배 2명과 신사동의 양대창구이 집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 집에 있다 자신의 집으로 귀가한 뒤 정씨는 오후 6시쯤 신사동 약속장소에 갔다.

자리를 마친 시간은 그날 오후 10시쯤이며 집으로 곧장 귀가했다.

8월에 이뤄진 검찰 비공개 조사에서 정씨는 이씨와의 점심약속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떼 가서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고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면 그날 자신의 행적이 남김없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2주 뒤 담당검사가 다시 정씨에게 전화를 했다. 휴대폰 위치추적을 했더니 드러나지 않았던 소재지가 나왔다는 것이다. 위치는 종로구 평창동. “논란이 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일 7시간 ‘행적’에 정씨는 박 대통령과 같이 있지 않았고, 그 시간 동안 정씨는 평창동 역술가 이씨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밝혀졌다”는 설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번 재판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세월호 사건이 나던 당일 오후 2시20분쯤 정씨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고, 발신지점이 평창동이라는 점이다. 정씨는 이때 통화를 한 사람은 “지인인 후배”라고 했다. 중요한 점은 정씨의 휴대폰과 관련해 밝혀진 것은 이것뿐이라는 것이다.

정씨의 휴대폰 발신지점인 역술가 이씨의 집에서 청와대까지의 거리는 4.1㎞다. 자동차로 13분 거리다. 이것은 평창동에서 세검정을 거쳐 통상 다니는 길로 갔을 때의 이야기다. 청와대 뒤의 북악스카이웨이 길로 간다면 그 시간은 훨씬 단축된다. 평창동에서 전화를 한 사실이 박 대통령과 같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해주지는 못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날 재판에서 밝혀진 흥미로운 부분은 또 있다. 이날 공개된 정씨의 통화기록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나기 전날인 4월 15일 오후 2시19분부터 다음날 오후 2시20분 평창동에서 발신할 때까지 그의 휴대폰에 아무런 발신기록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씨 집으로 오전 10시30분에 출발하면서도 아무런 통화 없이 출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씨는 “변동사항이 있으면 이씨에게 전화를 했을지 모르지만, 딱히 다른 변동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전화할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정씨 수사에 최선을 다했나
의혹은 또 있다. 이날 재판에서 정씨는 자신이 사는 곳을 등기부등본상 그가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는 집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과거 2011년과 2012년, 수차례 취재과정에서 정씨가 해당 건물에 거주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정씨가 이날 재판에서 새로 밝힌 사실은 2011년쯤 별거한 사실이 있으며 “사생활 문제이기 때문에 답변할 이유가 없지만 마음 다짐을 해서 다시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2011년 별거 뒤 어느 시기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다시 그 건물에 들어와 적어도 2014년 4월 당시에는 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변호인들은 휴대폰 기록에서도 정씨가 제출한 기간인 3일 동안 그가 자신의 식구들과 통화를 한 기록이 없다며 “차명폰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정씨는 차명폰을 쓰지 않았으며, 자신은 3년 전부터 뒷자리가 7206으로 끝나는 현재 번호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진 휴대폰 번호는 실제 지난 세계일보 문건 사건 당시 기자가 입수해 연락을 취했던 정씨의 휴대폰 번호와 일치하는 것은 사실이다.

검찰이 과연 수사에 최선을 다했느냐는 의문도 남는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애초에 정씨가 의뢰했던 실시간 위치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정씨가 제출한 휴대폰 통화기록 중 세월호 사고 당일 오후 2시20분의 발신자 위치가 평창동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집에만 있었다”는 당초 진술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 2주 뒤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적으로 역술가 이세민씨와 관련한 진술을 들었을 뿐이다.

휴대폰 실시간 위치추적은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이동경로를 보여줄 수 있는 단서다. 휴대폰과 이동통신사 기지국 사이에 실시간으로 오가는 통신기록이다. 이동통신사에 요청해 로그기록을 확보하면 당일 정씨의 이동경로를 1㎞ 미만 단위로 촘촘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과거 검찰이 노동시국사건에서 실시간 위치추적을 통해 집회 참석 여부를 증빙하려고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왜 정씨의 경우 이 ‘기법’이 동원되지 않았을까. 검찰 측은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이상목과의 만남을 확인한 것은 오후 2시20분에 통화한 내역의 발신지가 종로구 평창동으로 확인한 뒤였고, 그 전에 정윤회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며 “본인이 휴대폰 통화내역을 뽑아 제출했는데 아무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증인(정윤회)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측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다음 재판은 2월 23일 오후 2시에 속개될 예정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