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굴러 온 어용노조가 박힌 민주노조 뺀다

복수노조 5년, 노사갈등 심해지고 기존노조 설 자리 줄어

김현우 - “총회는 사진만 찍고 다른 거는 안 했소?”
○○○ -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날 가입서를 갖다 놓고 좀 하라고 하면서 찍고. 그리고 그냥 아무 얘기도 없고 그냥 갔지 뭐.”
김현우 - “놓고 찍고, 그리고 끝난 거예요? 뭐 어떻게 하자는 얘기도 없이?”
○○○ - “그것도 없었죠. 갑자기 와서 그러니까 이게 뭔고 그러고.”
김현우 - “누구 선출하고 그런 것도 없었소?”
○○○ - “이게 서류를 빨리 넣으려니까 지금은 다 바뀌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부위원장 누구, 사무장 누구, 회계감사 누구 이렇게 넣었더라구.”
김현우 - “그냥 임시 이름을 넣은 거예요? 완전히 정해진 거예요? 집행부는 정해졌을 거 아니야?”
○○○ - “아직 안 정해졌어요. 접수하느라 집행부 임시로 넣은 거고.”

복수노조 시행 이후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기존노조 막기 위한 졸속 노조설립 총회
집행부 선출도 없었다. 향후 노조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냥 조합원으로 이름 올린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사진만 찍었다. 이상한 노조 설립총회였다. 회사 측에서 기존 노조를 막기 위해 만든 기업노조의 설립총회였다. 총회의 성사는 사진 한 장으로 대체됐다. 이후 이 노조는 다수노조가 돼 회사와의 단체교섭권을 갖게 됐다.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 두성지부는 지난해 9월 30일 두성기업에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산하에 두성지부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6월. 회사 창립 17년 만에 세워진 유일한 노조였다. 김현우 지부장은 사내 유일 노조인 만큼 당연히 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고 이틀이 지난 10월 2일, 복수노조인 두성기업노동조합이 결성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10월 6일 이 노조는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조합원은 85명. 기존 민주노총 산하의 노조 조합원 44명에 비하면 2배 가까운 인원이었다. 회사 측에서 졸속으로 만든 기업노조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김 지부장은 노조 설립총회 회의록과 사진, 참가자 명부 등을 확인했다. 대강의 형식은 갖췄지만, 그래도 석연치 않았다. 김 지부장은 두성기업노동조합 측의 조합원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 결과 총회가 모두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총회는 없었고, 이는 노조를 설립하는 데 절차상 문제가 있었음을 의미했다.

직장생활 30년째인 김 지부장이 노조를 만든 것은 차별 때문이었다. 그는 두성기업의 원청인 동양시멘트에서 일했다. 입사한 지 13년째 IMF사태가 발생했다. IMF사태가 일어나자 김 지부장이 일하던 출하파트 부서가 모두 하청으로 강제로 넘어갔다. 두성기업은 그때 설립됐다. 이후 김 지부장은 17년 동안 하청인 두성기업에서 일했다. 원청으로도 있어 보고, 하청으로도 있어 보니 그 차별을 절감했다. 원청과 하청의 임금수준이 현격히 차이가 나고 복지수준도 비교가 안 됐다. 원청 직원들이 7년을 근무해서 3800만원을 받으면 하청은 2300만원 남짓을 받았다. 똑같은 사업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을 겪고 나니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노조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각오하고 만든 노조인데, 기업노조에 무력하게 밀려날 수는 없었다.

김현우 지부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두성지부는 삼척시청에 두성기업노동조합 설립신고 직권취소를 요청했다. 12월 29일 삼척시청은 노동조합의 총회 미개최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6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직권으로 설립신고를 취소했다. 노동계 관계자들은 지자체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직권취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동환 민주노총 동해삼척지부 사무국장은 “삼척시청에서 직권취소를 내린 것은 획기적인 결정으로 보고 있다. 당하기만 해오던 민주노조 측이 문제를 제기해서 설립을 취소한 것이니까 이 부분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척시청의 노조 설립 직권취소 결정은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도 주요 근거가 됐다. 민주노총 두성지부는 삼척시청에 직권취소를 요청하면서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과반수 노동조합에 대한 이의 결정 재심신청서’를 제출했다. 총회를 열지 않고 설립된 두성기업노동조합이 과반수 노조로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갖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삼척시청의 결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지노위는 이 신청을 기각했다. 민주노총 두성지부는 이번엔 중앙노동위원회에 같은 신청서를 제출했다. 중노위는 삼척시청의 노조 설립 직권취소의 결정을 주요 근거로 다음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첫째는 두성기업노동조합의 과반수 노조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민주노총 두성지부를 교섭대표 노조로 결정한 것이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중노위의 두 번째 결정을 의미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과반수 노조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더라도 이의를 제기한 노조를 새로운 교섭대표로 인정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시 새로운 교섭대표를 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박 국장은 “그러다보면 새로운 교섭대표를 정하는 기간에 다시 기업노조가 만들어지고 또다시 민주노조는 교섭권을 갖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그러나 이번 중노위 판결은 최소한 민주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까지 교섭대표권이 있다는 것을 판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개최한 복수노조제도 설명회 모습. | 연합뉴스

이례적인 민주노조의 직위 회복
사실 민주노총 두성지부의 사례는 이례적이다. 민주노조가 기업노조를 꺾고 다수노조 지위를 얻은 사례는 별로 없다. 2013년 10월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복수노조 설립 사업장 중 기업노조가 세워진 24곳을 조사했다. 24곳 중 22곳은 기업노조가 다수노조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업노조가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민주노조가 밀리기 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은정 국장은 “통계상으로 조직률에서 큰 차이가 안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민주노조가 소수화되고 무력화됐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애초에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될수록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및 노조간 차별로 노조의 입지는 좁아졌다. 복수노조는 노동자들의 단결권 보장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기존 노조의 교섭권 및 쟁의권 박탈과 회사의 노조 지배 개입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강했다.

조합원간 차별로 노조 탈퇴 유도
아데카코리아는 복수노조 이후 노사갈등이 심해지고 민주노조가 고립된 보편적인 사례이다. 아데카코리아에 노조가 처음 결성된 것은 2011년 7월이다. 이후 노조는 2012년도에 1년간 교섭권을 가졌지만, 이후에 과장급을 중심으로 한 기업노조가 세워졌다. 교섭권은 기업노조로 갔다. 사측은 기존 노조와 기업노조 조합원을 철저하게 분리해서 관리한다. 정선영 민주노총 전북지부 조직국장은 “노동조합 조합원이 근무하는 부서와 비조합원이 근무하는 부서 자체를 만나지 못하게 분리시켜버렸다. 접촉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조직화가 어렵다. 철저하게 분리시켜 관리한다”고 말했다. 부당한 차별도 거듭됐다. 회사 측의 부당한 차별에 대해 조합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회사 측에 제기한 소송만 10개가 넘는다. 계속되는 차별은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를 유도하는 효과를 냈다. 조합원 수는 점점 줄어 21명이 됐고, 반대로 기업노조의 조합원 수는 80명이 됐다. 정선영 국장은 “회사 측도 소송비용 등이 많이 들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한 번 기업노조에 밀려 소수노조가 되면 계속해서 고립돼 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사측의 관리에 조합원 또는 비조합원들이 느끼는 압박을 완화시켜가면서 노조를 유지하고 대응해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박은정 국장은 두성지부의 사례가 의미 있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복수노조의 제도적 문제점들을 극복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의 문제, 사용자의 지배 개입 문제를 원천적으로 극복했다는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두성지부도 중노위 결정으로 다시 교섭권을 획득했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다. 기업노조는 삼척시청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기업노조가 가처분신청까지 내고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두성지부는 사측과 교섭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80여명의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조합원의 조직사업도 다시 벌여야 하는데, 원청과 하청이 섞여 일하는 현장에서 조직화가 쉽지만은 않다.

동양시멘트는 동해삼척지역에 10개의 하청을 두고 있는데 이들 하청업체 중 2개의 업체만 노조가 결성돼 있다. 하나는 두성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기업이다. 동일기업의 노동자들은 광산 채석이 주요 작업이다. 동일기업에서는 기업노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최창동 민주노총 동일지부장은 기업노조가 생기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원청의 직원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년 전만 해도 4개 조의 반장이 모두 원청 동양시멘트의 직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개 조의 반장만 원청 직원이고 하청 직원이 현장에서 다 같이 섞여 일하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청과 하청이 섞여 있을 경우는 다르다. 김현우 지부장이 노조를 만들려던 지난 6월 회사 안에서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누가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개의 내용은 노조에 가입하면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것들이었다. 처음에 120명 직원 중에 80명이 가입했었지만, 유언비어가 돌면서 서서히 조합을 탈퇴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원청 동양시멘트 생산직에 결원이 생기면 두성기업 생산직에서 인원을 채우기도 한다. 원청의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이다. 대개의 두성기업 직원들은 동양시멘트의 정직원이 되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 가입하면 동양시멘트 가는 것은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이 든 직원들에게는 노조에 가입하면 연장근무를 시키지 않겠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중에는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12월 31일자로 해고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처음 가입했던 80여명의 조합원 중 절반 가까이가 떨어져나갔고 나중에 이들을 기업노조가 포섭했다.

복수노조 제도의 미비점이 많다 보니 힘 있는 회사 측에 우호적인 기업노조가 유리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에서는 무엇보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가 있어도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복수노조 제도 하에서 민주노조가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부당노동행위 강력한 규제 필요
복수노조 제도 하에서 특정 노동조합의 조직을 방해하거나, 특정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의 탈퇴를 종용하거나, 제2의 단체를 통해 노동조합 조직을 와해시키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면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한다. 또한 복수의 노조 간에 합리적인 이유없이 노조에 대한 편의제공 등을 차별하는 것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러한 부당노동행위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은정 국장은 “이러한 부당노동행위를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입증해야 하고, 또 그것이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인과관계까지 성립시켜야 한다. 그렇다보면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제도 5년째인 지금 복수노조 제도의 법적·제도적 미비점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개선에 대한 움직임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박 국장은 “복수노조 제도 도입 이후 노동조합들의 역량이 줄어든 상황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정규직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 노동시장 구조개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게 복수노조 제도 이후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다음 전략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근로감독관제와 지자체의 역할

지방자치단체가 노조의 설립을 취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삼척시 두성기업노조 설립 취소의 사례를 눈여겨보면서도 이러한 사례들이 확산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환 민주노총 삼척동해지부 사무국장은 “기업노조가 어떻게 불법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노조법을 위반한 상황이 있는지를 이번 사례처럼 매번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받는 업무는 지자체가 노동에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권한이다. 이 또한 허가주의가 아니고 신고주의라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신고필증을 내준다.

작은 권한이지만, 이를 이용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청년유니온의 노조 신고다. 고용노동부는 청년유니온의 노조 신고를 반려했다. ‘청년들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지위 향상’이나 ‘취업준비생과 실업상태 청년노동자의 조직화’ 등과 같은 문구를 포함한 노조 강령이 노조법상 노조 결격요건 중 하나인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청년유니온은 2011년 서울시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서울청년유니온 설립 신고를 받아달라는 정책을 제안했다. 정책은 받아들여졌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청년유니온은 노조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후 청년유니온은 각 지자체마다 노조 신고를 했고,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시에서도 노조 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조 신고 권한 외에 노동은 지자체에 이양된 권한이 거의 없다. 지자체별로 노동분야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서울시가 유일하다. 서울시는 노동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5개의 구청에 각각 1명씩 노동옴부즈만이 지정돼 있다. 서울시 민간위탁 354개 사업장의 근로조건을 모니터링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민간위탁 사업장의 현장방문과 노동자들의 면담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는 민간위탁 사업장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위탁한 사업장이 아닌 민간기업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만 감독할 수 있다. 문제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노동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에서는 자체적으로 근로감독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적이 있다. 서울시 관할 지역에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을 위반한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할 수 있는 명예근로감독관제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노동부의 반대로 만들지 못했다. 당시 노동부의 입장은 지자체가 노동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서울시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자체에서 같이 협력해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지자체가 근로감독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계의 입장이 엇갈린다. 원칙적으로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관을 확대해 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직접 지역 내 부당한 노동행위 및 위법사항들을 자치단체에서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현행법 상으로는 고용노동부가 하는 게 맞지만, 워낙 현재의 근로감독관 제도가 최저임금,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