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일못을 규정하는 사람은 ‘꼰대’다

“일 못하는 사람도 신이 만드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일 못한다고 구분짓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라는 그룹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그냥 ‘나는 일을 못하니까’라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광경을 목도하였다. 직업군도 다양했고 학력도 다양했다. 사무직부터 요리사까지, 알바하는 고등학생부터 논문 못 쓰는 박사과정까지. 세상 어디에나 일 못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나를 충격에 빠뜨린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도사 노승훈이다. 전도사라고 하면 당연히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엄숙하고 진지한 젊은 청년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댓글을 달고, 어디서 났는지 신기한 온갖 짤방들을 댓글란에 전시하며 ‘개드립’을 폭발시키는 남자의 직업이 세상에 전도사라니! 그리고 전도사가 일을 못하다니! 종교인의 일은 신의 일이 아니었던가. 얼마나 일을 못하길래 종교인이 일 못하는 유니온까지 오게 된 것일까. 노승훈씨는 대면하자마자 내게 말했다. “사전 질문지 안 보내셨죠. 야, 진짜 일 못하시네요.”

전도사가 어쩌다 이런 데까지 오게 되었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의 지인이다. 타임라인에 노출되었을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다. 그러던 중 주변 지인들, 특히 젊은 직장인들과 대화하는 중에 ‘일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유니온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전도사니까 그 사람들을 위로해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가입해서 열심히 글도 올리고 댓글도 달다보니, 그냥 공감하는 게 아니라 나 역시도 일못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

‘일못’은 뭘까?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규정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걸 규정하는 사람을 난 ‘꼰대’라고 부르고 싶다.”

상당히 격한 표현 아닌가? 꼰대란 무엇인가.
“약간 분노가 담겨 있기도 하다.(웃음) 그러나 그들도 개인적인 결함을 지닌 사람들은 아니다. 조직에 너무 적응을 잘한 사람들일 뿐이다. 조직을 잘 굴러가게 하고, 아주 높은 효율을 추구하며 또 이뤄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볼 때 자신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잘 따라오지 못하면 그 사람을 ‘일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들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내치는 거다.”

그러면 왜 당신은 자신도 일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나는 일 잘한다.(웃음) 그런데 어딜 가면 한 명쯤은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겠나. 그 사람이 내 상관이고 직장의 파트너라면 나도 일못이 될 뿐이다. 그래서 나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누구나 일못일 수 있다.”

일못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나?
“꼰대가 만들어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이 태생부터 악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이유는 일의 ‘효율’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높은 가치로 세우고 진행하다 보면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이고 기능적 도구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름 말고 다른 딱지로 그들을 부르게 된다. ‘호구’ ‘일 못하는 인간’ ‘눈치 없는 애’ ‘유도리 없는’…. 그 딱지들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쓰는 본인들도 제대로 인식하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일 못한다는 말 자체가 워낙 넓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매한데도 그 기준에 의해 구분은 아주 철저하다. 왜냐, ‘일못’은 ‘효율’을 떨어뜨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효율’을 우선하는 분위기에서 일못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들의 ‘효율’이라는 기준을 없애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일못’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꼰대 제거론’을 듣고 나니 그의 신은 꼰대가 아닌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그에게 ‘일못’들에게 종교인으로서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신은 선한 사람과 악한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비를 내리십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라면 이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죠. 일못도 신이 만드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일 못한다고 구분짓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김종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SNS에 재밌는 글을 쓰려 노력하며 온라인 마케팅 일을 했었다. 잠시 숨고르며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