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화려한 홍대앞을 오가는 우울한 젊음들

힘겨운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가치와 용기와 의지를 덮어놓고 요구하는 일부 지식인이나 ‘힐링 전도사’들의 서푼어치 말들은 사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엉터리 진단일 뿐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홍대앞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차가운 날씨에 10여분을 서 있다가 나는 몇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거리는 무엇인가? 이 거리의 욕망은? 이 거리의 젊은이들은 누구인가? 얼핏 보기에 화려한 도시 같지만 이 홍대앞이라는 문제적인 장소는 미묘한 불안과 어수선한 기운으로 오히려 충만해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파의 구성원이 되면서, 동시에 수많은 인파로부터 끝없이 미끄러진다.

가치의 측면에서 지금 그 어떤 의미 있는 가치도 이 미끄러지는 삶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있다. 눈에 확실히 보이는 실용성 외에는 모두가 빛바랜 슬로건이 되고 말았다. 고도의 공공성과 가치 지향성을(다만 명분일지라도) 실천해야 하는 이 나라 최상위 권력과 정치집단은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마저도 실용과 편익이라는 가마솥에 내던져버렸다. 가치의 생산과 보존과 의미의 확대를 자신의 존립 근거로 삼고 있는 대학 또한 실용이라는 폭풍우에 휘말려 좌초되고 있는 중이다.

1월 8일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상업지구의 모습 | 정윤수

미묘한 불안과 어수선한 기운 혼재
조금 오래된 조사지만,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07년도에 ‘1997년 IMF 사태 10년 후’의 사회 심리 상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극도의 불안과 불신이 21세기 한국 사회를 확실히 지배하였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공공적 가치에 대한 기대는 거의 실종된 형국이다. 조사에 따르면 환경재난, 청년실업 사태, 고용불안, 부동산 가격 폭등, 경제적 양극화, 차별과 배제의 증가, 복지 및 사회 안전망의 부실 등이 IMF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개인적으로는 소득 감소나 신분 불안에 따른 건강 악화와 만성 신경증이 크게 늘었고, 가족의 차원에서는 극단적인 가족 해체까지 염려되어 왔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그 어떤 가치도, 약속도, 제도도 신뢰하기 어려운 불만과 불안이 급증하였다. 위 조사에 따르면 2007년의 경우 10명 중 3명 정도가 중산층 귀속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마도 지금은 이보다 더 낮아졌을 것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위험사회론’의 울리히 벡은 21세기의 인류가 전대미문의 무차별적인 위험상태에 직면했다고 진단하면서 특별히 안전한 구역이 따로 없을 만큼 위험의 탈지역화, 모든 계급과 계층을 위협하는 탈계급화, 피해 정도와 복구 정도를 추정하기 어려운 계산 불가능화를 거론했거니와 한국 사회의 현재 상태와도 관련 있는 진단이다.

물론 이러한 일반론은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조건에 대입할 때 좀 더 엄밀해야 한다. 우선 그가 말한 ‘탈계급화’, 즉 거의 모든 계급과 계층이 위험상태에 처해져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들은 일정한 사회적 상식과 정보와 공적 헌신이 유지되고 있는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경험들이다. 우리의 국가는 이른바 ‘십상시 논란’ 같은 지극히 엽기적인 스캔들로 그 일단이 드러났듯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권력은 국민을 향해 공세적이고 파괴적인 돌진을 감행하고 있다. 우리의 자본은 1980년대에나 들었던 ‘천민자본주의’의 가학적인 양상을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잔인하면서도 저열하고 수준 낮은 이념·지역·성·계급 차별을 극단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이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가 직면한 기술과 제도에 대한 위험성에 대한 경고라면 우리의 위험은 극히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내의 위험 그 자체다. ‘갑질’이라는 말은 우리의 쓰디쓴 자화상이다.

1월 8일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상업지구의 모습 | 정윤수

가혹한 사회적 상황, 세대론 접근 오류
이 양상을 주류 세력은, 또 그에 기반한 언론에서는 ‘세대 담론’으로 치환하려고 한다. 즉 온갖 유무형의 사회적 차별을 세대적 감수성의 차이 혹은 젊은 세대의 유약함으로 축소시켜버리는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세대, 계급과 불평등’에서 ‘88만원 세대’ 혹은 ‘젊은 세대론’이 가혹한 사회적 상황을 ‘세대론’으로 접근하는 오류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불완전 고용, 저임금, 그리고 그로 인한 소득 불평등 등의 문제가 연령적으로 20대에 속하는 한국의 남성과 여성만이 겪는 ‘세대 문제’인가?”라고 먼저 묻는다. 이 문제가 젊은 세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세대간 전쟁이라고 부른 세대간 불평등 문제는 실제와는 매우 다르”며 확인 결과 “세대간 불평등은 실제로 그다지 크지 않으며, 세대 내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불평등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 고용, 상징자본 획득에 따른 인정투쟁 등이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전체 세대에 골고루 만연되어 있으며,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의 본질은 ‘젊은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연령에 걸쳐 고르게 나타나는 계급차별적 파탄이라는 점을 신 교수는 지적한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이럴 때 힘겨운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가치와 용기와 의지를 덮어놓고 요구하는 일부 지식인이나 ‘힐링 전도사’들의 서푼어치 말들은 사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엉터리 진단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차별의 본질을 ‘젊은 세대의 나약함’으로 치환해버리는 환멸스런 언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글과 발언이 매우 교묘하게 위장된 지식의 ‘갑질’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힘없는 청년들만 타박한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보다 힘센 자들에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런 불안의 공기가 화려한 홍대앞의 거리에도 가득차 있다. 불빛이 화려하다고 해서 그 아래의 사람들마저 화려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