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8) 사용후핵연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저장장소가 확보되지 않는 한 원자로 내의 사용후핵연료를 꺼낼 수 없다. 즉 연료 교환이 불가능하게 돼 핵발전소는 가동 중지에 직면하게 된다. 소위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는 셈이다.

핵발전소는 사고·고장이 없더라도 가동 중에 방출하는 방사성 물질의 장기 누적에 따른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전기출력 100만kW급 1기당 매년 약 20t씩 배출하는 사용후핵연료의 독성(방사능)은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이다. 핵발전소의 원자로에서 막 꺼낸 사용후핵연료는 곁에서 겨우 1초만 노출돼도 100% 사망하는 강렬한 방사능을 내뿜는다. 그리고 세슘 및 스토론튬 등 핵분열생성물(FP)의 반감기에 따른 핵붕괴에서 나오는 막대한 발열량을 식히기 위해서도 격납용기 천장의 크레인을 이용해 사용후핵연료를 전용의 수조(水槽)로 옮겨 최소 5년 이상 냉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강렬한 방사선을 막기 위해 핵연료 집합체의 상부가 수면으로부터 최소 2.5m 이상이 되는 수심을 유지하며, 재임계(再臨界) 방지를 위해 중성자 흡수 기능이 있는 붕산을 첨가한 물로 순환냉각을 계속한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이 인체에 급성 피해를 가져오지 않을 정도로 낮아질 때까지는 최소 10만년이 걸리는 만큼 장기간 생태계에서 격리시키는 게 불가피하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8일 전남 영광군 한빛원자력발전소 앞에 십자가 160개를 설치하고 원전 즉시 가동 중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십자가 160개는 한빛원전이 가동에 들어간 1985년 이후 발생된 누적 사고·고장 건수를 상징한다. | 그린피스제공

국내에서도 핵발전소 급증에 따라 사용후핵연료(12종류) 저장량이 2014년 3월 말 현재 1만3423t에 이른다. 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수조도 저장 여유가 줄어들어 신·증설하는 핵발전소 수조에 이송하거나 조밀저장으로 대처하고 있다. 특히 핵발전소의 증설 계획이 없는 한빛원전이 가장 여유가 없는 형편이다. 조밀저장을 하더라도 2024년 무렵이면 수조가 포화상태가 될 전망이다. 저장장소가 확보되지 않는 한 원자로 내의 사용후핵연료를 꺼낼 수 없다. 즉 연료 교환이 불가능하게 돼 핵발전소는 가동 중지에 직면하게 된다. 소위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는 셈이다.

중간저장시설이 임시저장시설?
원자로에서 약 3~4년 후에 꺼낸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처분은 수조에서 냉각한 후 지하 300m 이하 심지층의 최종처분장에 영구저장하는 직접처분 방식과 수조 내 냉각→재처리→최종처분장 영구저장이라는 재처리 방식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최종처분장의 확보는 입지지역의 사회 갈등 및 자연조건 등 때문에 매우 곤란한 작업이다. 가령 최종처분장의 입지 확보가 가능하더라도 핀란드 및 스웨덴의 경우에서처럼 사회 갈등 해소에는 수십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핵마피아는 최종처분장 확보에 따른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30~50년간에 걸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의 도입·운영을 꾀하고 있다. 중간저장 방식도 원자로 건물 밖에 별도로 건설한 수조를 이용하는 습식과 사용후핵연료의 수송·보존용기인 캐스크(Cask) 또는 캐니스터(Canister)를 이용하는 건식으로 대별할 수 있다. 현재 월성핵발전소만이 건식의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에는 콘크리트 캐스크에 캐니스터(사용후핵연료의 보관용 금속용기)가 들어 있는 사일로 300개와 사각형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에 캐니스터가 들어 있는 모듈 7개가 저장돼 있다.

그런데 핵마피아는 이를 임시(!) 저장시설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에 관한 특별법’(2005년)이 월성 지역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유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감춘 채 국내의 핵마피아는 원자력안전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임시 저장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건식 재처리의 일종이 아니라 굳이 재활용이라고 주장하는 말장난과도 일맥상통한다. 해외의 핵마피아조차 중간저장시설 및 재처리라고 각각 부르는 과학적 용어를 국내의 핵마피아는 열심히 국산화(?)를 꾀하고 있는 꼴이다.

핵마피아는 기득권의 확대전략에 필수적인 최종처분장의 확보를 시도했지만 부안사태처럼 사회 갈등만 증폭시킨 채 좌절했다. 군사문화에 젖은 핵마피아의 일방적인 강행 자세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이지만 핵마피아도 학습효과를 이용해 형식적인 국민 의견 수렴이라는 절차를 도입하게 됐다. 주민의 의견수렴을 화두로 내세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그것이다. 위원회는 원래 2009년 7월에 출범하기로 했지만 출범 당일에 무기한 연기 방침이 발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2013년 10월에 재출범한 위원회는 시민단체의 위원이 사퇴하는 등 처음부터 민간자문기구로서의 정체성에 의문부호가 붙은 상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혈세 쓰고도 보고서 못낸 위원회
그러나 위원회는 약 40억원의 혈세를 사용하면서도 기간 내에 보고서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내년 6월까지 활동기간을 연장했다. 약 38억원의 예산도 새로이 책정됐다. 위원회가 핵발전 추진만을 전제로 사용후핵연료 관리계획에 대한 정책 권고안을 제출하려는 만큼 활동기간을 연장하더라도 이렇다 할 내용의 보고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위원회 설립이 핵마피아가 추진해 온 중간저장시설의 도입이라는 기정(旣定) 노선에 대해 민간자문기구인 위원회의 논의결과였다는 식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알리바이 만들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핵마피아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핵발전소를 급격히 확대시켜 왔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의 생활이 현실화된 이상 정상인이라면 비록 늦었더라도 한 번쯤 그 원인을 돌아보는 자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핵마피아는 반성은커녕 오히려 전기 사용책임 즉 공동책임론(?)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최종처분장 및 중간저장시설 건설을 강요하는 적반하장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현행 위원회의 근본적인 결함은 논의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채 전개되고 있는 점이다. 중간보고서에서 중간저장시설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다음 4가지의 전제조건을 우선적으로 검토한 후에 결론을 짓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첫째, 시설규모의 확정 즉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결정할 금후의 원자력정책에 대한 논의가 최우선과제이다. 즉, 핵발전소의 구성비율 및 폐지 등에 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처분방법 즉 재처리 또는 직접처분에 대한 선택이 우선돼야 한다.

셋째, 중간저장시설에도 습식과 건식, 특히 후자에는 복수의 방법이 있는 만큼 경제성·안전성 등을 중심으로 장단점의 비교가 제시돼야 할 것이다. 넷째, 어느 정도 기간의 보관인지, 또 부지 내의 시설(분산식)과 부지 외의 공동시설(집중식)의 비교도 빠질 수 없다.

위원회가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을 논의하지 않고 형식적인 낱말과 수치만 나열한 보고서를 제출한다면 핵마피아의 계획을 추인(追認)하는 역할만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청취대상 선정에 대한 공정성, 회의내용 및 비용 사용에 대한 투명성 논란을 제쳐두더라도, 뻔한 결론을 위해 수십억의 혈세를 낭비한 셈이 된다.

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

한편 관료들은 불편한 진실은 최대한 감추다가 위기상황에 닥쳐서야 해결책을 강구하는 탓으로, 대책비용이 훨씬 늘어난 상태에서 기존의 정책 전환이 이루어진다. 30~40년 후에 결과가 나타나는 정책의 경우 결정자는 이미 퇴직 또는 사망한 후가 되는 만큼 새로운 정책도 긴장관계가 없는 절충안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핵발전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는 국민투표의 실시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