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다가갈 수 없는 예술의 전당

우리는 클래식을 통해 그 시대의 육성을 느끼고자 한다. 작곡가 개인의 신상명세보다는 그 시대의 상황과 열망과 슬픔과 희열과 전망을 살피고자 한다. 그러나 유일무이한 거성 베토벤이 우리에게 오면, 개인사적 고통에 몸부림친 ‘고독한 예술가’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니, 예술의 전당이 일상적으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는 건 억지스러운 자연스러움이 있다.

일단 그곳에 가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저녁 한때를 보내기에 썩 적절한 문화적 장소이건만, 서울의 강북에서도 한참 위에 사는 사람이나 일산·구리·부천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 그러니까 서울 서초동의 예술의 전당을 한 번 가려고 하면 이동계획을 잘 짜야 한다. 일단 그 일대는 여차하면 교통지옥이 된다. 대개의 연주회가 저녁 8시쯤 열리니 이 시간에 맞춰서 간다고 하면 상습 정체를 각오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해도 지하철 남부터미널역이나 하여간 그 근처의 어느 곳까지 일단 진행한 후 그곳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그밖의 보조수단을 또 강구해야 그곳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면 ‘아, 왜 이런 곳에다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강남이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교통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 가는 길. | 정윤수

근엄한 웅자로 산 기슭에 자리한 ‘성채’
자, 어쨌든 그곳에 갔다. 정말 서둘러야 한다. 나는 몇 해 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2번을 듣기 위해 갔다가, 어느 정도 여유 있게 갔는데도, 주차를 하다가 시간을 다 빼앗겨서 결국 25분여에 달하는 1악장 연주 이후, 찰나와 같은 쉬는 시간에 급히 들어가서 겨우 나머지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집중도 높은 레퍼토리일 경우, 시간 맞춰 갔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서둘러 갔는데 이런, 저녁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물론 근사한 식당도 있고 제법 그럴 듯한 간식들도 판다. 그런데 비싸다. 바깥에 나가서 먹고 들어오자고 하니, 예술의 전당 대로변에 서는 순간 그런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런 널찍한 공간에 밥 한 번 여유 있게, 맛있게, 또 약간은 부담 없이 먹을 만한 공간이 없을까? 외국의 공연장도 원래 이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코앞에 있다. 초호화 메뉴에서 저렴하고 알찬 메뉴까지 다양하다. 다른 일로 걷다가 잠깐 들어가서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거의 유일하게’ 우리의 예술의 전당만이 우면산 기슭에, 마치 클래식이나 오페라는 저토록 근엄한 웅자로 감히 쉽게 다가가기 어려워야 한다는 듯, 서 있다.

이런 물리적 공간 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클래식 음악 문화의 고루한 관습이다. 오늘날 클래식은 이 헛헛한 대도시의 한가로운 예절과 교양의 품목으로 전락해버렸다. 우리의 클래식 감상문화는 19세기 중엽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고뇌하는 천재 예술가’ 이미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음악가 개인의 투병이나 실연이나 요절에 주목했다. 뭔가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고뇌 끝에 걸작을 빚어냈다는 식이다. 이러한 개인사의 에피소드가 그 시대의 복잡한 시대상황이나 작곡가의 원대한 사유 및 격렬한 미학적 실천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의 거룩한 일상과 격렬한 감정에 다가오지 않고, 저 멀리 홀로 우아한 성채에 갇혀 있는 한가로운 교양 목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아’니 ‘세련’이니 ‘교양’이니 하는 말들이 오랫동안 전염병처럼 창궐해 왔거니와 바로 그런 단어를 바흐나 베토벤이나 말러에게 되돌려준다면, 그들은 예술사의 법정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화를 낼 것이다. 그들은 바로 그러한 단어와 샅바 씨름을 하면서 당대의 오묘하면서도 격렬한 미학적 실천을 이뤄냈던 음악가가 아니던가.

서울시 서초동 예술의 전당의 모습. | 정윤수

불안한 삶이 위로받는 풍경을 상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클래식에서 자기 시대와 밤새도록 씨름하는 작곡가의 팽팽한 심줄을 느껴야만 한다. 한 시대가 당대의 선율에 간신히 의지하면서 비틀거리며 나타난다. 그 시대의 불만과 열망과 일그러진 감수성이 불꽃 튀는 바이올린과 둔중한 팀파니와 울부짖는 트럼펫으로 울려퍼진다.

우리는 클래식을 통하여 그 시대의 육성을 느끼고자 한다. 작곡가 개인의 신상명세보다는 그 시대의 상황과 열망과 슬픔과 희열과 전망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 선율들이 그 시대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삶의 어떤 불안과 불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날아오는 풍경을 상상한다.

예컨대 베토벤이 있다. 그는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발전시킨 음악 양식들, 그 중에서도 특히 더욱 발전되고 개척될 여지가 있었던 소나타 양식을 전반적으로 흡수 통합하였다. 쇤베르크의 충격적인 화성의 해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소나타 양식은 음악가들이 도저히 그 자장권 밖으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완벽한 건축적 영향력을 가진 세계가 되었다. 아울러 베토벤의 음악은 프랑스혁명이 몰고 온 대변혁과 자신의 천부적인 창조성이 높은 차원으로 맞부딪쳐 빚어낸 이중주였다.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의 물꼬를 튼 베토벤은 그 비중으로 보자면 철학사에서는 칸트, 정치사에서는 나폴레옹, 문학사에서는 괴테 정도만이 한 자리에 비교될 수 있을 뿐, 음악사에서는 따로 비견할 대상을 찾기조차 어려운 유일무이한 거성이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이런 베토벤이 우리에게 오면, 개인사적 고통에 몸부림친 ‘고독한 예술가’ 정도로 축소된다. 거장다운 광휘로운 세계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어느덧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선 근대 시민들의 열렬한 자기애였던 그의 음악이, 여기서는 ‘병마와 싸우면서 불멸의 음악을 빚어낸 예술가’ 같은 진부한 수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니, 예술의 전당이 일반 시민의 일상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상적으로는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은 억지스러운 자연스러움이 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