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어두운 역사’ 박제된 관광 상품화

영덕, 칠곡, 상주, 영천 등의 격전지에 전승기념관, 상징탑, 전투 재현, 추모 전시관, 호국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 형상화 방식은 지나치게 전형적이어서 역사적 교훈이나 심미적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런 사업은 조형물 업체 위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어두운 곳을 찾아 나서는 관광’이다. 그런데 어두운 곳이라, 과연 어떤 곳을 말하는가. 전쟁, 학살, 혁명, 재난 등을 말한다. 그 비참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관광을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한다. ‘블랙 투어리즘’ 혹은 ‘그리프 투어리즘’이라는 말도 쓴다. ‘어두운’, ‘검은’ 혹은 ‘깊은 슬픔과 고뇌’ 같은 말이 가리키듯이 이 관광은 스키장이나 해수욕장을 찾아 나서는 걸음과는 다르다.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옛 조선로동당 당사 건물.

고뇌와 슬픔 안고 찾는 ‘다크 투어리즘’
지난 2000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칼레도니언대학의 맬컴 폴 리가 쓴 동명의 책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우선 유럽에 있어 약 400만명 이상이 학살당했다고 알려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는 발걸음으로 시작하였다. 현재 그 수용소는 유태인 학살과 관련된 박물관으로 정비되어 있는데, 세계 곳곳에서 나치의 만행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든다. 나 역시 아우슈비치는 아니지만, 독일 뮌헨 인근의 다하우 수용소와 바이마르 인근의 부켄발트 수용소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곳의 공기는 너무나 무거웠고, 옛 수용시설들은 끔찍했으며 추모 조형물은 감히 올려다 보기에도 미안했다. 그런 어두운 곳을 그런 무거운 마음으로, 깊은 슬픔과 고뇌를 나름대로 안고 찾아가는 것, 그것이 다크 투어리즘이다.

이런 발걸음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뉴욕의 ‘9·11 제로 그라운드’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크 투어리즘 장소다. 근대 유럽의 교양 지식인들도 지중해의 화사한 햇살을 받기 위해 떠나던 여름휴가의 발길을 북으로 돌려서, 알프스 북쪽의 차디찬 빙하와 공동묘지와 전쟁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순례한 일이 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이를 증명한다.

국내의 다크 투어리즘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전시·추모 공간, 그 과정의 대량학살과 관련된 추모 시설과 장소, 재난재해와 관련된 공간, 일제 강점기 관련 공간, 주요 종교의 포교와 박해와 관련된 공간, 동학혁명 등 구한말의 격동과 관련된 장소 등으로 나타난다.

지난 80년대에 우리의 지성계에서도 국토 순례(소설가 박태순), 민요 기행(시인 신경림), 역사 기행(한학자 박석무), 동학 기행(시인 김지하) 등이 있었거니와 그 연장전으로 벌어진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는 실제 동행했던 사람들의 기억으로나 그렇게 하여 발간된 책으로나 당대의 문화적 신드롬이 될 정도였다. 체험학습이니 현장학습이니 하는 교육 열기가 더해진 뒤로 요즘은 꼬마아이들도 부모님과 함께 동학의 흔적을 찾아 순례하고 민통선의 전쟁 상처를 더듬어 보기도 한다. 공부하러 나선 길이니 따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유원지나 테마파크로 놀러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유 여하를 떠나서 찾는 이의 발걸음이 잦다 보면, 지자체는 이를 관광사업으로 개발하려고 한다. 어두운 역사를 관광사업으로 한다? 얼핏 들으면 어색하고 불편한 사업안 같지만, 그러나 이 또한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기억이 사라지고 흔적이 방치되기보다는 제대로 기억하여 거듭 생각하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다리. 북한 영역일 때 건설이 시작돼, 남한이 해당 지역을 수복한 이후 완성됐다. | 정윤수

기억되지 못한 역사 ‘관광상품’은 비역사적
그런데 곳곳의 장소들을 가보면 사건 일람표와 엉성해 보이는 모형과 감상적인 추모 문구 정도로 마무리되어 있을 뿐이다. 경북도가 추진한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지역 ‘호국평화 벨트 조성사업’도, 군데군데 지극히 전형적인 국가주의적 전시와 조형이 눈에 띈다. 영덕, 칠곡, 상주, 영천 등의 격전지에 전승기념관, 상징탑, 전투 재현, 추모 전시관, 호국공원, 전투 체험장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형상화 방식은 지나치게 전형적이어서 역사적 교훈이나 심미적 감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업은 지자체가 전체적인 흐름을 잡되 역사학, 사회학, 종교학 등 해당 장소에 대한 높은 수준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 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또한 그 과정에 반드시 건축, 조형, 조경 등의 전문가들이 깊이 대화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해당 장소와 공간이 역사적 관점에서나 심미적 관점에서나 반드시 찾아가서 공부하고 성찰하고 대화할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형물 업체 위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 더욱이 ‘어두운’ 사건을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는 어떤 점에서 기억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걸핏 하면 터져나오는 주요 인사들의 ‘친일 논란’에서 보듯이 21세기의 우리에게 20세기의 역사는 여전히 미결된 문제들로 가득차 있는 역사문제집이다. 그 문제집의 문제들은 당장 풀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들을 줄줄이 토해낸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그러니 우리의 다크 투어리즘은 과거완료형으로 끝난 곳을 한가롭게 찾아나서는 그런 걸음일 수가 없다. 가는 곳마다 미결된 난제들이 뒤엉킨 현재진행형의 장소들이다. 김동춘은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에서 “한국전쟁기의 학살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와 정치·사회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고 썼다. 나는 이 문장에서 딱 하나, 즉 ‘부드러운 형태’를 ‘강력한 형태’로 바꾸고 싶다. 철원의 승일교에서 시작하여 구로공단, 광주를 거쳐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쟁이나 항쟁 그밖의 수많은 사회운동, 노동운동 등의 역사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장소와 공간들은 어쩌면 텅 비어 있는 부재의 추모 전시관 혹은 박제된 장소로 남아 있다. 이것을 ‘다크 투어리즘 관광 활성화 사업’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역사적이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