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사유의 빈곤 드러낸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

인천시가 대회를 유치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오직 ‘관광자원화’ 맥락뿐이었다. 개막식은 인천의 역사적 소재를 관광단지의 서푼짜리 물건들처럼 어수선하게 나열하고 읍내 노래자랑처럼 한류 스타들을 연거푸 올리는 것으로 일관되었다.

비록 어수선하게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경기들이 시작되자 스포츠 자체가 주는 다양한 감정의 아름다운 표출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고결한 땀방울이나 성취의 순간도 기억할 만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 참가한 아시아 곳곳의 가난한 나라 선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규모 스포츠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각별한 일들이다. 아시아 각국 정상회의나 경제장관 회의, 산업박람회나 심지어 스타들이 운집하는 대규모 영화제 같은 곳에서도 이렇게 순도 높은 땀과 눈물로 이뤄진 결정적 장면들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몽골 야구대표팀이 그렇다. 4년 전, 그들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는데 팀마다 24명이 참가할 수 있지만 그때 그들은 겨우 12명이었다. 비행기로 대여섯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예산 부족으로 무려 48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더 놀라운 것은 4년 전 그들의 장비가 오직 단 한 개의 야구배트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 팀들이 여분의 장비를 지원해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그때보다는 형편이 나아졌지만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그들은 한국, 일본, 대만 등의 여유 있는 팀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0-21로 대패한 일본전에서 아시안게임 1·2호 안타를 기록하는 등 그들은 뛰고 또 뛰었다. 그래서 아시아야구연맹은 몽골 대표팀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밖에도 몰디브, 방글라데시, 부탄 등에서 온 선수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나 마라톤에 대한 집념 하나로 캄보디아 대표가 되어 출전하는 일본의 유명한 코미디언 다키자키 구니아키 선수의 이야기는 이 같은 대규모 스포츠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순간들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의 기념물. | 정윤수

개막식은 당대 열망 보여주는 문화행위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그 유치과정이나 준비수준에서 일찌감치 파행과 불협화음을 드러냈고, 실제로 대회가 시작되면서 숱한 운영 미숙이나 관료주의, 권위주의, 조직 이기주의가 드러나고 있다. 개막식이 특히 그러했다.

개막식은 하나의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당대의 집합적 열망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문화행위다. 어떤 주제의식과 어떤 표현방식으로 두 시간 넘게 이벤트로서의 강렬한 효과와 예술적 행위로서의 희열을 제공할 것인가, 이는 쉽지 않다. 거의 모든 문화예술 행위가 그렇듯이, 이러한 대규모 개막식은 철저한 비밀주의를 유지하며 당일 현장에서 획기적인 상상력으로 펼쳐져야 한다. 그런데 개막을 앞두고 대체로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최종 성화주자가 누구인지도 난데없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래서 임팩트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준비과정의 미비가 아니다. 준비가 꼼꼼했으면 괜찮았는가, 지축을 흔드는 요란한 음악이 적시에 울려퍼지고 화려한 조명과 축포가 절묘한 타이밍에 터져 오르면 충분한 것인가, 첨단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이 잘 결합되어 시청각적 쾌감을 제공하면 그만이란 말인가.

미숙하게 준비해서 어수선하게 질질 끄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반드시 기술적인 스펙터클이 완벽하다 해서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라. 부분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장쾌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그 모든 소재들은 결국 유럽에서 동북아까지 신민족주의로 응집시키려는 ‘차르 푸틴’의 유라시아주의가 관철된 것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역시 ‘중화주의’의 거침없는 스펙터클이었다. 그 유라시아주의와 중화주의는, 개막식 순간에는 아름다운 불꽃놀이로 표현되지만 현실에서는 총과 대포 소리로 터져나온다.

그렇다면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은 어떠한가. 이 개막식은 비단 인천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주요 도시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개발 위주의 압도적인 속도전 끝에 현대의 도시들은 지치고 피로해졌다. 그 바람에 많은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환경, 교통, 주택, 고용, 안전, 교육 등에 걸쳐 이 노쇠한 도시들은 더 이상의 탈출구를 찾지 못한 듯하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떻게든 재생의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데, 그 중 한번에 눈에 띄는 것이 ‘관광 활성화’다. 현대의 관광이란 소재도 다양하고 주제도 다채로워서 과거처럼 자연 관광, 역사유산 관광을 넘어 골목도 구경하고 사람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심지어는 전쟁, 저항, 학살, 재난 등의 격렬한 역사적 순간까지 구경하는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까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경인고속도로에 붙은 인천 아시안게임 홍보물. | 정윤수

철학 부재가 낳은 조잡한 ‘한류 장터’
이 순간 오랜 역사의 흔적, 근현대사의 격렬함에 의해 생성된 기억의 공간, 당대의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현장 등이 그저 단순한 구경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골목의 작은 일상까지 오로지 구경거리로 재편된다. 뭐라도 구경거리가 된다면 이른바 ‘관광자원화’로 삼게 되는 극단적 관료행정이 발생한다.

인천시가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고 또 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오직 이런 ‘관광자원화’ 맥락뿐이었다. 더욱이 ‘한류 열풍’ 아닌가. 그래서 개막식은 인천의 역사적 소재를 관광단지의 서푼짜리 물건들처럼 어수선하게 나열하고 읍내 노래자랑 대회처럼 한류 스타들을 연거푸 올리는 것으로 일관되었다. 인천의 쌩얼에 적당히 화장만 했으면 좋으련만, 구경거리 도시라는 것을 근거도 없이 부풀리다가 그만 과도한 분장으로 덧칠이 된 개막식이 되고 말았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이벤트 진행 실력이나 기술적 표현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시를 어떻게 보는가, 21세기 도시는 어떻게 재생되어야 하는가, 구경거리로서의 도시가 앞으로의 미래인가 등에 대한 질문도 없고 따라서 대답도 없는, 도시에 대한 철학의 부재, 도시의 삶에 대한 사유의 빈곤이 낳은 조잡한 ‘한류 장터’였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