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시민운동을 놓을 수 없는 이유

청소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지만 함께 청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데 희망

“도대체 네가 하는 일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니?”

올해 초 결혼한 제게 시어머님이 물으셨습니다. 시댁 식구들에게 새 며느리의 직업을 설명하려는데 도무지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한참 설명을 들으신 시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데모하는 데구나.”

그나마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남편의 사촌동생은 새 형수가 ‘참여연대’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수님이 여군이었어요?”

지난 5월 14일,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 삼청동 감사원 민원실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 해군, 해양수산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교육부, 국무총리실, 국가안보실, 청와대, 한국선급, 해운조합 등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촉구하는 공익감사 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낮은 임금과 불투명한 미래
우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참여연대와 시민운동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고 있는 저를 돌아보게 된 계기도 되었지요. 참여연대는 20년이나 된 단체지만 아직도 이름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더 많고, 시민들에게 시민운동은 ‘데모’와 동의어였습니다. 저 또한 참여연대를 비롯해 다른 단체에서 활동한 것까지 치면 거의 10년 동안 시민운동을 했지만 정작 시민들에게는 낯선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했고, 많은 것을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왜 시민운동은 여전히 시민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경향신문은 올해 초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발표한 ‘시민사회 활동가 실태보고 및 지원방안’ 보고서를 인용해 시민활동가들에 대한 보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 보수는 적지만 지금 일에는 만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활동가들의 월 평균 임금은 133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는 86.1% 이상이 ‘보통 이상’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활동가들의 삶은 꽤 고달픕니다. 우선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낮은 임금은 불투명한 미래로 연결됩니다. 심지어 최저임금밖에 안 되는 평균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활동가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촛불단체 탄압 등으로 작은 단체들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적은 보수에 대해서는 활동가들이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 이미 각오를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시급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고달픈 것은 그 외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일에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다른 부분에서 보상을 받고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뛰는 만큼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사회를 위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것마저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이나믹 코리아’에 사는 활동가의 삶도 ‘다이나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터지는 이 나라에서 피해자는 대부분 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활동가들의 삶이 마냥 보람차고 행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돈의 가치가 1순위인 나라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참여연대를 비판적으로 보거나 아예 시민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 일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가족들에게도 종종 저는 불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다행인 위험사회에서 활동가의 삶이라고 안전할 리 만무하고,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에서 활동가들의 노동 또한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활동했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좌절감을 갖게 합니다. 올해 초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참여연대 활동가들에게 큰 자괴감을 안겼습니다. 성수대교가 어이없이 내려앉았던 1994년,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넘어서 시민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부정부패를 없애고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를 통해 사회를 바꾸겠다며 참여연대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오히려 더 참혹했습니다.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공익적인 일에 투자하지 않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시민운동이 시민들에게 가닿기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마저 안 하면 엉망진창 될 테니까
저는 종종 시민운동이 공동구역을 청소하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여간해서 깨끗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청소를 시작하는 사람은 대개 지저분한 것을 가장 못 참는 사람입니다. 어질러진 물건들을 제자리로 옮기고, 쓰레기를 버리고, 걸레질도 하지만 곧 다시 더러워집니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고 하면 ‘그러게 고생을 왜 사서 하냐’, ‘그냥 놔둬라’ 등의 말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 사람 덕분에 우리는 얼마간이라도 깨끗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음 번에도 그 사람이 청소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시민운동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지럽혀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시작합니다. 치워도 이내 더러워지겠지만 그마저도 안 하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테니까요.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같지만 사실 지난 20년간 분명히 바뀐 것은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를 해도 해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지만 함께 청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품게 합니다. 이 희망이 10년차 활동가인 제가 아직은 시민운동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신미지 참여연대 선임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