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병영폭력]“군에 맡기지 말고 국민이 나서자”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 군사법정 참관기, 시민감시단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사건이 알려지지도 않고, 이 사람들, 시민들이 (군사법정에) 안 왔으면 오늘 그냥 공판 끝나버리고 마는 거잖아요.”

예비역 병장 김성민씨(27)는 격앙된 목소리였다. ‘윤 일병 사건’으로 알려진 육군 28사단 폭행 사망사건의 4차 공판이 열린 8월 5일 경기도 양주의 28사단 보통군사법원 주변은 김씨와 같은 ‘시민감시단’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당초 예정돼 있던 재판부와 군 검찰의 재판 일정대로라면 이날의 결심공판을 끝으로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의 가해자 5명에 대한 형이 선고될 것이었다. 서울에서 왕복 3시간의 거리를 달려왔지만 공판이 진행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그마저 100여명의 시민들과 취재진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 모두가 방청할 수도 없었다.

이날 공판은 숨진 윤 일병에게 가했던 성적 가혹행위 혐의로 강제추행죄를 추가하는 내용이 주였다.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진 상황이 반영된 듯 추가적인 사실관계와 법리검토를 위해 기일을 연기하고 상급군사법원으로 관할을 옮기기로 하는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시민감시단의 말처럼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통상적인 군사재판이었으면 재판장이 선고 주문을 읽고난 뒤 사건의 진실은 그대로 덮여버렸을지도 모르는 셈이었다.

8월 5일 경기도 양주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 시민감시단이 병영내 인권 개선을 촉구하며 쪽지와 풍선을 붙이고 있다. | 연합뉴스

군복무를 마친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은 20대 청년부터 자식을 군에 보낸 40~50대 어머니까지 시민감시단의 면면은 다양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내용은 사건 가해 병사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것이었다. 아들이 이병으로 군복무 중이라는 한모씨(49)는 “가해자들에게도 정상을 참작할 여지는 있을 테고, 또 가해자 부모들의 심정까지 짐작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문제가 다시 일어나기 않기 위해서도 고의적인 살인이었는지 아닌지 진상을 정확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은폐·축소 의혹으로 불신 더욱 커져
‘살인죄 적용’을 요구하는 여론의 강한 압력이 만들어진 데는 이번 사건 자체의 참혹한 모습이 크게 작용했지만 결심공판을 앞둘 정도로 재판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군 당국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미온적이었던 이유도 컸다. 윤 일병 유가족과 군인권센터 등이 제시한 수사 및 공판기록에선 윤 일병의 사망시간과 직접 사망원인 등이 아직도 모호한 상태로 남겨져 있다. 초동수사를 맡은 헌병대의 수사기록을 비롯해 군 검찰의 공소장 내용 등이 유가족들에게 전혀 안내되지 않은 데다, 내부 보고과정에서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당국이 수시로 말 바꾸기를 일삼은 탓이다.

특히 윤 일병의 직접 사망원인에 대한 의혹은 아직도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부검을 담당한 국방부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후 가해 병사들이 진술한 내용과 비슷하게 윤 일병이 먹던 음식이 기도를 막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윤 일병이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 하더라도 그에 앞서 구타·폭행이 벌어졌고 초기 부검감정서에도 폭행에 따른 쇼크사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군 검찰이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장이 파열되는 등 물리적인 구타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이를 덮고 넘어가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국방부 검찰단이 기소 책임을 맡은 육군 3군사령부 검찰부에 ‘살인죄 적용’ 의견을 제시하면서 가해 병사들에게 적용될 혐의에도 변동이 생기게 됐다.

그러나 국방부와 군이 사건 발생 후 대처과정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은폐와 축소를 시도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이들 기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6군단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이튿날 윤 일병 사망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및 가혹행위에 대한 수사 내용을 상급부대인 군사령부를 비롯해 국방부에까지 보고했음에도 국방부 차원에서 사건 파악에 나선 것은 7일 후였다고 밝히는 등 보고·대응체계에서 드러난 허점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게다가 이미 지난해 8월 윤 일병 사건과 유사한 의무대 내 폭행사건이 전역한 병사의 진정으로 국방부와 군에 접수되었음에도 후속 대책은 사실상 전무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병영 내 구타·가혹행위 등 악습 사례를 보면 윤 일병 사건과 같은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마저 갖게 한다. 윤 일병과 부대는 다르지만 비슷한 의무병 보직을 받은 임모씨(21)가 당한 가혹행위 사례는 윤 일병 사건과 판박이였다. 2012년 10월 육군 6사단 의무중대로 자대배치를 받은 임씨에게 돌아온 선임들의 가혹행위는 구타·폭행은 물론 성기를 때리거나 추행하는 등의 성추행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털을 뽑기도 하고 깨물기도 했다고 하면 듣는 사람은 ‘장난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온갖 구타와 기합에 더해서 그런 정신 나간 가혹행위까지 받는 건데 상부에선 들을 생각을 안 했다.” ‘소원수리’는 접수가 된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임씨는 전역 후에야 마음을 추스르고 국방부와 복무부대에 대한 진정을 낼 결심을 하게 됐다.

병영 내 인권유린 이참에 뿌리뽑아야
“이제 편히 쉬세요. 눈물은 저희가 닦아 드리겠습니다.” 28사단을 나서며 시민감시단은 부대 정문에 윤 일병에게 전하는 쪽지를 남겼다. “(가해 병사들이) 법정에 나올 때 처음엔 분노가 끓어올랐죠. 근데 그 분노를 곱씹어 보니 ‘왜 나는 물론이고 내 자식까지 군대 제대할 동안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젠 정말 군에다 맡기지 말고 보통 국민들이 나서서 좀 바꿔보자고요.” 최한규씨(52)는 반복되는 병영 내 인권유린을 이참에 뿌리뽑자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와 군 관련 사고 유가족단체들은 8일부터 윤 일병의 추모제와 함께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선다.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분노한 국민들의 전화가 센터에 빗발치고 있다. 이제 윤 일병은 더 이상 28사단의 윤 일병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 국민의 윤 일병이 된 것”이라며 “법정 심리에 앞서 전면적인 재수사가 선행되어야 하고,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면 특검까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