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에서 ‘키치’는 양면성으로 이해된다. 우선 그것은 예술 수준에 이르지 못한 조잡하고 퇴행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거대한 동상은 키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키치는, 오히려 그러한 형식을 역설의 효과로 차용하여 권위적인 형식이나 기존 질서를 풍자하고 조롱한다.
“해에~ 저문 쏘오~양강에 화아~앙혼이 지이이면 / 외에~로오운 갈. 대. 바~아테 슬피 우는 두우~견새야.”
군인 아저씨 두 명은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와 내 친구는, 사실 처음 듣는 노래였다. 1986년 여름이니, 벌써 30년 가까이 흐른 옛 시절 이야기다. 그해 여름, 성북역 부근의 중고 자전거포에서 낡은 자전거 두 대를 사서 출발한 나와 내 친구는 가평의 버스정류장에서 하루를 자고 또 달리고 달려서 소양강댐 밑에까지 도착한 다음 깊은 어둠 속에서 라이터불에 의지해 가며 텐트를 친 상태였다.
강원도 춘천시 공지천에 위치한 소양강 처녀상. | 정윤수
높이 12m 무게 14톤 국내 최대 청동상
우리는 한계령을 넘었고 울진까지 갔다가 그 무렵의 흔한 ‘사상논쟁’을 벌이다가 헤어져서 한 사람은 상주 거쳐 부산으로, 또 나는 마산으로 해서 목포까지 갔다가 광주에 도착하여 이윽고 안장에서 내려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로 왔던 그 오랜 시절 얘기다. 티셔츠에 반바지 달랑 입고 낡은 자전거 안장에 걸터앉아 국토를 돌고 돌았으니 요즘 고가의 자전거에 요란한 옷차림으로 공원 길이나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한가롭구나’, 이런 돼먹지 못한 자존심을 품기도 한다.
아무튼, 소양강댐 밑에 텐트를 치고 나서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순간, 군인 아저씨 두 명이 나타났다. 높은 데서 경계근무를 서다 보니 수상한 불빛이 일렁거려 내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빨리 텐트를 철수하라고 명령을 하였는데 소양호 물을 방류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내 친구는 군인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짐을 다시 챙기고는 낡은 자전거를 밀고 끌면서 안전지대로 자리를 옮겼다. 간이지붕도 있는 버스정류장이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갑자기 친해진 네 명은 버스정류장 안에서 담배를 나눠 피웠다. 나는 이제 막 문을 닫으려는 가게로 달려가서 소주 한 병과 과자를 사왔다. “근무 중이지만… 한두 잔은 되겠지?” 하면서 그들은 급하게 마셨다.
이윽고 야음을 찢는 경보소리가 울렸다. 소양댐 방류가 시작된 것이었다. 허연 물줄기가 깊은 밤에도 확연했다. 어쩌면 군인아저씨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물에 휩쓸려 갔을지도 몰랐다. 누군가 노래를 불렀다. 내가 먼저 불렀는지도 모른다. 군인아저씨, 라고 표현은 하지만 또래이거나 서너 살 위였을 텐데, 그래도 반바지 차림의 민간인보다 군복의 장병은 훨씬 존엄해 보였다. 그 중 한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고래고래 불렀다. 그래서 그 노래를 알게 되었다. <소양강 처녀>.
“여흘여덜 따~알기 가튼 어린 내 순정 / 너흐마저 모올~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 아아 그리워서 애헤~만 태우는 쏘오~야아앙 강. 처어어~녀”
사실로 말하자면 두견새는 산에 사는 산새라 호수에 와서 우짖지는 않는다. 춘천에서 양구 사이, 소양강이라면 춥디추운 곳이라서 동백꽃이 피지는 않는다. 인간의 압도적인 토건업이 일으킨 공사였기 때문에 ‘외로운 갈대밭’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소양강댐은 1967년 4월에 착공하여 1973년 10월에 준공되었다. 노래 <소양강처녀>는 1968년 작사가 반야월씨가 가수협회 사람들과 함께 춘천을 방문했다가 작사했으므로 그때는 갈대가 무성했을 수 있다. 이듬해 곡이 완성되어 발표되었다.
소양강 처녀 노래와 어울려 기이한 감정
춘천 의암호 수변을 따라 순환도로가 이어진다. 그 중 소양2교는 아치로 장식된 다리로 의암호를 찾는 외지 관광객들이 일단 멈추는 곳이다. 다리도 인상적이지만, 그 곁에 세워진 ‘소양강 처녀상’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조각가 남상연의 작품으로 높이 12m(동상 높이 7ｍ, 좌대 5ｍ)에 무게 14톤에 달하는 국내 최대 청동상이다. 지난 2005년 11월 8일, 춘천시민의 날을 기념해 세워졌다. 소양강댐 정상까지 올라가는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보다는 작은, 실제 사람 크기만한 소양강 처녀상이 산마루에 또 조성되어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만한 ‘키치’도 따로 없다. 주변의 풍광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크기, 흡사 독립만세 운동에 나선 듯한 결연한 처녀의 얼굴,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면서 저 멀리 바라보는 전형적인 위인상, 여기에 더하여 끝도 없이 무한 반복되는 노래 ‘소양강 처녀’. 이런 전형성들이 과도한 크기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절묘하게 기이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예술에서 ‘키치’는 양면성으로 이해된다. 우선 그것은 예술 수준에 이르지 못한 조잡하고 퇴행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거대한 동상은 키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키치는, 오히려 그러한 형식을 역설의 효과로 차용하여 권위적인 형식이나 기존 질서를 풍자하고 조롱한다. 이 처녀상은 그런 의도를 한 줌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거대한 처녀상은 새천년 들어 전개된 ‘지역문화 콘텐츠 활성화’와 맞물린다. 지역의 자연, 역사, 특산물을 관광 콘텐츠로 삼아 지역민에게 일종의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외지 관광객에게는 특별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지역 문화사업이 상당한 압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런 일들이 상당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개 과정에서 대단히 일방적이며 권위적인 행정처리 방식으로 일관되었다는 점에 문제의 초점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류 진출’이니 ‘김윤옥 한식 세계화’ 사업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소양강 처녀상’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위치, 그 크기, 그 형상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전개되면서 오히려 역설의 효과를 낳았다. 압도적인 크기가 일종의 랜드마크 역할까지 한다. 누구라도 이 동상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위치와 크기다. 미적 판단 자체를 초월해버리는 크기로 인하여 이 동상은 사랑스럽다. 키치냐 아니냐, 그런 판단을 완전히 압도하는 힘, 즉 이 거대함 속에는 춘천 사람들의 욕망이 팽팽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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