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담양의 청량하고 싱그런 여름

담양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가 바로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이 숲길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다.

새벽 물안개가 산을 넘어 들녘의 아침을 깨운다. 이 땅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저기 굽이치는 영산강의 물줄기이다. 담양군 용면에서 발원한 물길은 광주, 나주, 영암을 지나 목포의 서해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350리를 남으로 남으로 흐른다. 그 생명의 물줄기를 따라 산을 넘고 나무숲을 지나 강을 따라 걷는 길놀음이다.

영산강 줄기인 담양천을 따라 조성된 수목길에서 첫걸음을 내디딘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관방제림이 그 첫출발이다. 천연기념물 366호로 지정된 이 숲길은 길이 1.5㎞의 강둑길로 거대한 고목들이 청량한 기운을 내뿜는 길이다. 수령 350년이 넘은 거목들이 담양천 제방둑을 지키고 선 모습은 믿음직스럽고 당당하다. 관방제림은 영산강의 최상류에 위치한 담양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조선 인조 28년 때 제방을 축조하고 철종 5년 때 다시 그 위에 제방을 중수, 삶의 터를 보호할 목적으로 숲을 조성한 것이다. 홍수가 심했던 담양천에 둑을 쌓고자 나무를 심어 강의 범람을 막았던 것이 그 연유이다.

홍수를 막고 물을 다스리기 위해 심어진 관방제림.

물을 다스리던 나무숲길, 담양 수목길
숲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나무들이 우뚝 서 있는데, 두 팔을 벌려 스크럼을 짜고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믿음직스럽다. 200~300년의 수령은 족히 넘은 팽나무, 푸조나무, 개서어나무들이 여름 숲 그늘을 만들고 넉넉한 가슴으로 길손을 맞이한다. 잠시 나무 숲 그늘 아래 땀을 훔치고 있으니, 동리에서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옛날에 물난리가 심해서 천변에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제. 그때 나라에서 관비 3만명을 동원해 제방을 쌓았다고 해서 ‘관방제’라고 했고, 그래서 함께 심은 나무숲이어서 ‘관방제림’이라 불리게 된 것이지. 여름에는 여기가 제일로 시원하구먼. 물이 흐르고 바람도 돌아가니 영 쉴 만하기에는 그만잉게.”

관방제림을 돌아 학동교차로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길이 이어진다. 죽녹원은 청량한 바람이 머무는 대나무숲이다. 약 16만㎡의 울창한 대숲으로 2003년 조성되어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입구에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여름 무더위에 지친 몸의 기운이 살아나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심신이 맑아진다.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茶) 한 잔에 목을 축이고, 전망대에 오르니 담양천과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죽녹원을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너니 담양천 강변으로 국숫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바로 국수거리다. 강변 평상에서 후루룩 말아먹는 국수 맛은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따라
메타세쿼이아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담양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가 바로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이 숲길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의 원조격인 이 길은 쭉쭉 뻗은 일직선의 나무들이 특별한 조형미를 뽐낸다. 사계절 모양을 바꾸는 이 메타세쿼이아 길은 봄에는 검은 가지에 푸릇한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녹색으로, 가을에는 붉은 단풍으로, 겨울에는 새하얀 설경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어낸다. 특히 여름 무렵이면 무더위를 식히려는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숲길에는 늘 사람들의 환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산책을 즐기는 연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모습이 편안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푸르른 여름날처럼 싱그럽다. 숲길에서 벗어나 담양호와 송강정, 소쇄원, 식영정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광주광역시와 더불어 담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자문화권이다. 송강 정철의 송강정과 식영정, 면앙정, 그리고 소쇄원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당대의 석학들이 고고한 선비정신을 담아 독특한 정자를 지어 놓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어울린 우리 선인들의 지혜로움과 건축양식을 마주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중 고서면 원강리에 위치한 송강정(松江亭)은 환벽당, 식영정과 함께 송강 정철의 유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송강은 여기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에는 이 초막을 죽록정(竹綠亭)이라 불렀다 한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식영정(息影亭)을 왕래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시가와 가사(歌辭)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 정자는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1770년에 후손들이 송강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松江亭)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죽록정’(竹綠亭)이라는 편액이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멀리 무등산이 바라다보인다.

담양은 대표적인 정자문화권으로 옛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소리가 머무는 정자, 소쇄원
이 송강정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담양의 정자를 대표한다. 정자의 배치는 동남향으로 앉아 있으며,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재실(中齋室)이 있는 구조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이고 가운데 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정각 바로 옆에는 1955년에 건립한 <사미인곡> 시비가 있으며, 현재의 건물 역시 그때 중수한 것이다.

담양의 정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소쇄(瀟灑)는 본래 ‘맑고 깨끗하며 시원함’을 의미한다. 빗소리 ‘소’ 또는 물 맑고 깊을 ‘소’에, 물 뿌릴 ‘쇄’ 또는 깨끗할 ‘쇄’라는 뜻을 지녔다. 산기슭 가장자리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매무새만 보아도 그 이름값이 마땅하다. 옛사람들은 소쇄원을 ‘소리의 정원’이라고 표현했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신록의 숲속에 계류를 중심으로 소쇄원이 꾸며져 있다. 깊숙이 가라앉은 터잡이는 계곡의 지형을 활용해 소리의 공명을 자연스레 모으는 품새다. 소리를 그저 지나가는 자연의 소리에 그치지 않고 의미를 두어 공간에 담은 셈이다.

담양천 제방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들.

길에서 만난 사람

주인이 거처하는 제월당은 올라앉은 매무새에서 고고한 품격이 느껴진다. 사색하고 독서하는 운치 있는 공간이다. 아래쪽 개울가에 자리한 광풍각은 목청이 좋은 한량처럼 자유롭고 편안하다. 사랑방으로 그야말로 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마련된 정자다. 지친 걸음을 멈추고 광풍각 정자 마루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사방의 문을 들어열개 형식으로 들어올려 처마 고리에 고정시켜 놓았는데, 주변 경치와 소리를 감상하기에 마침맞은 장소이다. 얽매이지 않은 풀어짐의 평안(平安). 여름 대숲이 비를 맞은 채로 바람을 들이쉬었다가 휘파람 같은 소리가락을 불어낸다. 소쇄 소쇄 소소쇄, 소쇄 소소애……. 소리는 이명처럼 멀어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만다. 가만히 눈을 감고 움켜쥔 손가락 마디를 풀 듯 마음도 놓아버리니, 평상에 누운 여름이 청량하고 평안하다.

<글·사진 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