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더 살릴 수 있었는데…

탈출 권유 방송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40여척의 구명보트 제대로 작동했다면,

선장이 마지막까지 책임 다했다면… 희생 줄일 수 있었던 기회 모두 놓쳐 안타까움 더해

16일 오전 8시 48분, 세월호는 갑자기 진로를 오른쪽으로 급히 틀었다. 배가 갑자기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변침(變針)이라고 한다. 당시 변침은 선장이나 1등 항해사가 아닌 3등 항해사의 지시로 이뤄졌다. 배에 이상징후가 발생해 변침을 하게 됐지만, ‘이상징후’가 무엇인지는 18일 저녁 현재까지 아직 조사 중이다.

17일 세월호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 가운데, 해경과 해군이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해양사고 목숨 갈린 ‘골든 타임’ 놓쳐
세월호가 변침을 한 구간은 국내에서 조류가 세기로 손꼽히는 ‘맹골수도’라는 곳이었다. 잠시 뒤 세월호 승객들은 ‘쿵’ 하는 소리를 들었고, 이윽고 배는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됐다. 한 승객이 소방본부에 신고를 했고, 곧이어 세월호도 제주관제센터에 “배가 넘어간다”며 조난신고를 했다. 세월호는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다. 방에서 움직이지 말아달라”는 방송을 했다.

하지만 정작 선원들은 9시쯤부터 배를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준석 선장 등 책임자들은 9시 50분쯤에 도착한 첫 번째 구조선을 타고 세월호를 빠져나왔다.

선장 등이 배를 떠난 뒤 선원들은 10시쯤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을 했다. 15분 뒤에는 배를 떠나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전기가 곧 끊겨 추가적인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해양사고가 났을 때 초반 1시간가량을 ‘골든 타임’이라고 부른다. 이 시간 안에 80% 이상의 인명을 구조해야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의 경우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이 나온 10시까지가 ‘골든 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의 골든 타임은 작동하지 못했다.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승객들의 발목을 잡았다. 신고가 이뤄진 지 30여분 후인 9시 30분부터 물이 차오르며 세월호는 왼쪽으로 60도가량 기울어졌다. 세월호 내부에선 이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승객들은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 내용만 믿고 있었다. 오히려 이 방송 내용을 따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온 승객들이 목숨을 건졌다.

뒤늦게나마 승객들에게 탈출을 권유하는 방송을 한 사람은 구조활동 끝에 목숨을 잃은 선원 박지영씨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씨의 탈출 방송은 이미 너무 늦었다.

방에서 기다리라는 방송만 없었어도, 탈출하라는 방송이 1시간만 더 일찍 나왔어도 훨씬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시설적인 측면에서도 세월호는 문제를 드러냈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46척의 구명보트가 있었다. 구명보트 1대당 약 25명이 탈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구명보트가 모두 작동했다면 승객 전원이 피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장 등이 자신들의 탈출을 위해 작동시킨 1척 외에 구명보트는 하얀 통에 담겨진 채 작동하지 않았다.

17일 오전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 목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선박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월호의 구명보트는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수심에서 3~4미터 정도만 내려가도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풀리며 구명보트가 펼쳐져야 한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 2월부터 3주간 진행된 특별안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구명보트 부분도 역시 ‘양호’를 받았다. 그렇다면 세월호의 구명보트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미스테리로 남는다. 청해진해운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복수의 생존자들은 구명보트들이 쇠사슬에 잠겨져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도주 선장 무기 또는 5년 이하 징역
선장이 비상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더라도 훨씬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비상상황 시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한다고 돼 있다. 1항사는 현장지휘, 2항사는 응급처치와 구명뗏목 작동, 3항사는 선장 보좌 등 각자 역할이 명확히 규정돼 있다. 하지만 운항관리규정은 무용지물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배에 갇혀 있는데도 먼저 탈출했다. 선장으로서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나 책임감도 없었다. 세월호 이 선장은 영화에 나오는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는 그런 선장이 아니었다.

합동수사본부는 이 선장을 세 차례 조사한 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는 배를 두고 도주한 선박과 승무원에 대한 규정이 담겨 있다. 이 법의 제5조의 12에 따르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한 선박의 선장이나 승무원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초기 구조가 탈출한 승객들 구조에 집중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구조대는 선박에서 빠져 나온 승객들을 배 위로 끌어올리거나 배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승객을 탈출시키는 데 급급했을 뿐 선박 안에 갇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승객들 구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 시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유리벽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하는데 해경은 헬리콥터 두 대 띄워놓고 한두 명씩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절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세월호 안까지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데는 투입된 구조 인원이 너무 모자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기에 군함 등을 동원해 세월호의 침몰을 막는 방법을 모색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구조대를 동원한 인명 구조에만 집중하느라 세월호의 침몰을 막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빠른 물살과 기상 악화 등이 겹치며 손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었다.

세월호 구조를 위해 해군 함정 23척과 군용기 12대, 병력 1000여명이 동원됐지만 별 쓸모가 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세월호 구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것은 배 안팎에서 구조작업을 벌인 초기 구조인력밖에 없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