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학생 SNS 인맥도 스펙이다

취업에 도움 목적 ‘도구적 관계맺기’로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해

“공모전에 나가는 후배가 2차에 올라갔는데 그 회사가 페이스북에서 투표를 받게 하더라구요. 투표수가 떨어지면 또 불안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보험 팔 듯이 지인들한테 다 연락해 가지고, ‘투표 좀 해주세요’ 구걸하더라구요. 이게 사실 제가 보기엔 심사에 영향이 있다기보다는 공모전 자체를 많이 알려야 되니까 (기업이) 과제에 넣었을 거예요.”(23·대학생)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데, 준비하고 있는 직업군의 선배들 페이스북에 들어가 친구맺기를 신청해요. 미리 그 직업의 분위기도 알고 취업 정보도 얻고, 인맥도 쌓기 위해서 친구 신청을 하는 거죠. 가서 먼저 인사를 하며 아는 척도 하고 댓글도 달아요. 좀 민망하긴 한데 사실 오프라인에서라면 먼저 말 걸거나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을 텐데, 페이스북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인맥을 쌓아갈 수 있어서 좋아요.”(26·취업준비생)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에게 소셜네트워크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맥을 쌓고 관리하는 장소다. 인맥도 스펙이 된 대학사회에서 소셜네트워크는 소통의 도구로 활용되기보다는 대학생들의 스펙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화되고 있다. 맨 처음 제시된 사례처럼 기업이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공모전에 응모한 대학생들의 인맥을 이용하면서, 소셜네트워크는 단순히 친밀감을 나누고 소통을 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대학생들이 자신의 스펙을 높이는 수단이 됐다. 특히 요즘은 공모전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대학생들이 페이스북에 자신을 홍보하고 친구들을 동원해 ‘좋아요’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동시에 두 번째 사례처럼 소셜네트워크가 취업을 위한 인맥을 넓혀가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관계를 맺는 일종의 ‘감정노동’의 공간이 됐다.

친구들 동원 ‘좋아요’ 유도
지난해 6월 한선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네트워크 시대 ‘경제적인 것’ 되기의 통치술: ‘공모전 참여’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질적 연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대학생들이 공모전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인맥이나 관계자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인맥과 관계자원 모두 기업의 이윤화 과정에 포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관계맺기’가 도구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 대학의 취업게시판. / 경향신문

한선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이 관계맺기를 ‘도구적’으로만 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조심스럽지만 대학생들의 관계맺기가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그러한 방식의 관계맺기가 더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알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도구적 관계맺기가 알게 모르게 강화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이 언제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모르니까 방문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맺기를 하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이라면서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용할 일이 있으면 이용하고, 이용당할 일이 있으면 이용당하기도 하는 등의 도구적 관계맺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친구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그들의 소셜 미디어를 방문하고, 댓글과 인사를 남기고 적당한 호의를 표시한다. 동시에 페이스북 등에 자기를 홍보할 수 있는 표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네트워크 상에서 강화되고 있는 대학생들의 ‘인맥관리’는 이미 대학생활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과거에는 ‘비즈니스’에서나 주로 통용되던 ‘인맥’이라는 말이 오늘날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쓰이고 있다. 한 대학 축제에서는 축제 홍보문구로 ‘즐겁게 놀면서 인맥도 쌓고’라는 말이 쓰일 정도다. 대학생들에게 인맥은 스펙을 쌓는 데 유리하고 취업에 언제 도움이 될지 모르는 무기가 된 셈이다.

취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은 ‘인간관계’도 인맥이라는 하나의 스펙으로 만들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대학생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차별적 관계맺기’가 형성되고 있다. 연애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쓴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연애관계도 학과별 수능 커트라인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연구원은 “학교별로 차이가 있지만, 서울에서는 경영학과가 제일 수능 점수가 높다면, 지방대에서는 경영학과도 취업이 힘들다 보니 사범대가 수능 점수가 제일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 지방대학의 영어교육과는 다른 과와 수능 점수가 꽤 차이가 나는 편이라고 하던데, 그 학교에 다니는 친구 말이 영어교육과 학생들은 그 안에서만 연애를 한다고 하더라. 통계를 내서 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 학생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상대방 소셜미디어 방문 호의 표시
대학생들의 관계맺기가 소통의 창구라는 소셜네트워크 상에서도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이어지고, 연애관계 또한 무의식적인 차별적 시선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대학생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선 교수는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나에게 이득이 될지 모르는 관계를 선호하고 활용하는 정도가 높아졌는데, 이는 사실상 사회적으로 독려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교육받아 왔고 사회가 그렇게 가르쳐 왔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런 거대한 흐름에 자연스럽게 적응한 결과”라고 말했다. 오찬호 연구원은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관계맺음’이라는 것이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아니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면서 “대학 1학년 때부터 취업에 묶여 있다 보니까 이질적인 것에는 신경을 꺼버리고 비슷한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게토가 형성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