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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퇴로 없는 방송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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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측, 여당 총선 승리로 강경 입장… 노조, 위기의식으로 결의 확고

“개표 방송은 따로 봤다. 다른 조합원들과 같이 안 본 게 다행이다.”
파업 중인 한 MBC 기자의 말이다.

19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는 단독과반 의석을 여당에 내줬다. 야권의 압승을 점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강한 반MB 정서의 포화를 뚫고 여당이 단독과반 고지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도 드물었다. 여당 관계자들도 놀라게 한 총선 결과는 야당 지지자들에겐 충격이었다. 그것은 최장 파업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는 방송사 노조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방송사 파업이 정권의 낙하산 사장 임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므로, 정치권의 역학구도를 바꾸는 총선이 파업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월 16일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공정방송쟁취 언론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한 MBC, KBS, YTN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4월 18일 여의도에서 만난 한 KBS 기자는 “야권이 압승까진 아니더라도 여당보다 우세할 거라고 봤는데 착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출구조사부터 예상과 달랐는데 밤 11시를 넘기면서부터는 내가 정말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나 자신에게나 다른 조합원들에게 힘 빠지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총선 결과에 영향을 받으면 어려운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으니까.”

낙하산 사장 퇴진해야 파업 종료
1월 30일부터 시작된 MBC 노동조합 파업은 이미 80일을 넘겼다. 공정보도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1992년의 최장기 파업 기록(52일)을 넘긴 지 오래다. KBS 새노조와 YTN 노조의 파업도 두 달을 향해 가고 있다. 이들 방송사 노조의 파업은 처음부터 장기파업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세 노조 모두 낙하산 사장 퇴진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파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업은 낙하산 사장들이 물러나야만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임기는 한참 남았다. 지난해 연임을 확정한 김재철 MBC 사장의 임기는 2014년까지다. 3월 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배석규 YTN 사장의 임기는 2015년까지다. 김인규 KBS 사장은 재선임되지 않을 경우 11월에 임기가 종료되지만, 지금부터 따져도 5개월 이상 남아 있다. 그간의 행보를 보면 이들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도 없다. 정치지형 변동 같은 외부 변수의 작용이 없는 한 파업 장기화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언론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총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새누리당, 파업 해결 의지 있을까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말이다. “야권이 압승하지 않는 한 새누리당과의 타협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총선 전에도 분명했다. 다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현 정권과 선을 긋기 위해 낙하산 사장 퇴진에 동의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그러나 여당이 이긴 지금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방송사 파업을 현 정권의 문제로 규정하고 정리를 하려고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방송사 노조 집행부는 “애초 총선과 무관하게 시작한 파업이기 때문에 총선 결과의 영향은 없다”고 말한다. 반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사장들은 총선 결과에 고무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4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로비에서 한 조합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노보를 보고 있다. MBC는 4월 2일 노조 간부 7명을 중징계했다. | 김기남 기자

MBC는 지난 17일 취재기자와 PD를 포함한 총 30여명의 1년 계약직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MBC는 MBC 기자협회가 제작 거부를 하고 있던 지난 2월에도 계약직 기자들을 채용한 바 있다. 김 사장은 18일에는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 나타나 관계사 임원인사 계획안을 제출하려다 거부당했고, 19일에는 이진숙 홍보국장을 임원급인 기획조정본부장으로 발령했다. 이 본부장은 그동안 후배들로부터 사측의 충실한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지난 3월 MBC 기자협회에서 제명됐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총선 전에는 사측에서 노조원들에게 개별적으로 회유하려는 모습도 있었는데 지금은 강경모드로 가고 있다. 파업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김인규 KBS 사장은 총선 다음날인 12일 KBS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파업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하루 속히 업무에 복귀하라”고 말했다. 13일에는 청원경찰을 투입해 KBS 새노조가 본관 앞에 설치한 농성천막을 철거했다. 김종욱 YTN 노조위원장은 “총선 이후 특별히 강경해졌다기보다는 노조 파업을 ‘정치 파업’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원들의 긴장감과 사장 퇴진 의지는 오히려 고조됐다. MBC 노조 집행부의 한 기자는 “애초 총선은 파업 일정과는 무관했고, 지금은 총선 결과가 불리하긴 하지만 충격에 빠질 여유조차 없다”며 “오히려 위기감이 높아졌다. 이젠 모두 진짜 우리 힘만으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BS도 마찬가지다. KBS는 오히려 총선 다음날 집회에 파업 시작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 <리셋 KBS 뉴스9>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강하게 뭉치는 것 같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파업을 시작한 게 총선 때문도 아닌데 잠깐이나마 총선이라는 거대한 이벤트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 반성을 좀 했다. 모두 뭉친 걸 보고 안심했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이 파업을 추동한 건 집행부가 아니라 결국 조합원들이다. 지금 파업하지 않으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는 정서가 강했다. 출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해야만 하는 싸움이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입김 강한 사장 선임구조 해결돼야
사측은 정치구도가 유리하게 조성되면서 물러설 여지를 보이지 않고, 노조의 결의는 더욱 확고해지는 모양새다. 파업 중인 방송사 내부에서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치권의 선택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대행은 취임 후 곧장 방송사 파업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현재 정치지형에서 방송 파업을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이남표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방송사 파업 문제는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 사장 선임구조에서 비롯됐다. 정치권에서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제 공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에 돌아갔다. 벌써 몇 달째 파업 중인데 넓게 보면 공영방송의 문제이고 좁게 보면 민생문제 아닌가. 책임있는 정당의 대표라면 이 문제를 풀고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숨가쁘게 총선을 치르는 동안 방송사 파업 문제에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던 새누리당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총선 전에 잠깐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일단 총선을 넘기고 보자는 분위기였다”며 “당장은 당에서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비대위에서 할 수는 없고 새로운 당대표가 들어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근혜의 언론관은?

19대 총선 다음날인 지난 4월 12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가면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언론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언론학자들은 방송사 파업문제를 박근혜 위원장이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박민규 기자


방송사 파업이 유례없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정치적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건은 방송사 파업이 향후 그의 대선행보에 미칠 정치적 파장과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다.

박 위원장의 언론관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박근혜 위원장이 극도로 말을 아끼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밝힌 것은 2007년 6월 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밝힌 내용이 거의 유일하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박근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방송 중립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을 지금 상황에 직접적으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당시 발언은 참여정부가 특정 언론사의 여론 독과점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신문법 개정안에 일부 위헌 결정이 내려지고 참여정부의 기자실 통폐합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비등하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박 위원장은 또 같은 자리에서 “언론개혁의 본질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지만, 동시에 “지금이 어떤 시대냐,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시대인데 매체 간의 겸업을 막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 과정에서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였다. 2008년 연말에는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라고 말했다. 2009년 2월에는 “한나라당이 많은 것을 양보했다”며 야당을 비판했다.

7월에는 여야 합의처리를 강조하며 강행처리에 제동을 걸었지만, 마지막에는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다. 박 위원장은 또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문제를 다룬 기사의 게재를 사측이 발행 중단시키고, 노조위원장 해임, 편집국장 징계 등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진 부산일보 사태에 대해서도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이라며 2005년 퇴임한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동아일보 전 편집국장)는 “미디어법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언론문제에서 MB와 다른 길을 가려는 고민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결국 MB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방송 파업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는데 언론의 희생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신태섭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여당의 대선주자인 만큼 방송 장악에 대한 비판적 공론이 형성된다면 박 위원장이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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