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기록 수호 나선 현대판 사관들 안병우 한국기록전문가협회장

“이명박정부는 악의적인 기록관리 수준”

황당한 이유로 미국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이 약 30년 전에 있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총격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존 힝클리는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광팬’이라면서 자기가 시시한 놈이 아니라는 걸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나중에는 정신병자로 판명됐지만 당시 수사기관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사상적 배경을 조사하려 해도 워낙 백수로 지냈던 인물이라 구체적인 단서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조사 대상이 그가 자주 이용하던 공공도서관에까지 이르렀다. 수사관이 도서관에다 그의 도서 대출 목록을 요구했다. 사서는 이를 수용했을까, 거부했을까. 대출 목록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신동호가 만난 사람]기록 수호 나선 현대판 사관들 안병우 한국기록전문가협회장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최근 별나게 전문성을 표방한 단체가 하나 탄생했다. 지난 11월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출범식을 가진 한국기록전문가협회다. 이름 자체에 ‘전문가’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게 심상찮다.

이 단체를 주목하는 것은 그 탄생 배경과 처한 현실이 현 정국 상황과도 민감하게 맞물려 있다고 보아서다. 민간인 사찰, 대포폰, 하드디스크 파기에서 4대강 사업,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파병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록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니, 말해주어야 한다. 모든 논란은 그렇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최근 곳곳에서 불거지는 기록의 위기를 아키비스트(기록전문가)들은 전문성의 위기에서 일차적으로 그 원인을 찾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모임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의 초대 회장에 선출된 안병우 한신대 교수(국사학과)를 지난 11월 17일 만났다. 마침 이 협회의 창립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소연 덕성여대 교수(문헌정보학과)가 함께 자리해 배경 및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우선 한국기록전문가협회가 만들어진 배경부터 말씀해 주시죠.
“기록관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전문적인 소양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인식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의 전문성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고요. 최근에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이하 기록관리법) 시행령 개정 시도에서 보듯이 기록관리의 전문성에 대한 위기가 계속되고 있잖습니까. 기록관리를 하는 사람이 전문가로서 소양도 갖추고 대우도 받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전문가라는 말을 아주 드물게 협회 이름에다 내걸었습니다.”

기록전문가의 전문성이란 어떤 것이고, 왜 필요한 거죠.
“사람들이 의사는 모두 전문가라고 생각하잖아요. 기록이라는 것도 사람처럼 태어나서 죽기까지 일생이 있습니다. 기록을 만들 때는 대개 의도하는 목표가 있는데, 업무의 정확성을 기하거나 업무의 증거로 삼거나 업무 자체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죠. 그걸 잘 관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디 가서 박혀 있는지, 어떤 맥락 속에서 생산이 됐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더군다나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 기록을 더 이상 행정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는 단계가 되면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평가를 해야 됩니다. 기록은 한번 죽이고 나면 다시는 살릴 수 없거든요. 많은 훈련과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들인 거죠.”

현 정부 들어서 기록관리의 전문성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기록관리는 서서히 위기에 들어갔다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우선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약한 것 같아요. 최근의 사태에서 보면 인식이 약한 정도가 아니고 기록을 남겨두면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록을 무시하는 단계에서 기록을 고의적으로 파기하거나 생산하지 않는, 기록관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악의적인 기록관리 수준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습니까.
“그 시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을 사저로 반출했다고 하는 사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기록의 원본을 다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기 때문에 원본을 가지고 나간 게 아니거든요. 사본을 가지고 나간 것이 과연 기록관리법상의 유출에 해당하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물론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동원해서 몰아쳤고, 임기를 보장하도록 돼 있는 대통령기록관장을 해임했거든요.”

대통령 기록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록일 뿐 아니라 그것이 공개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는 특별한 기록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이하 대통령기록관리법)은 물러나는 대통령이 지정한 그런 민감한 기록을 일정한 기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지정기록물제도)를 마련해두었다. 대통령기록관장을 자기 사람으로 교체한 것은 이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게 안 교수의 말이다.

“각 행정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에 기록관리 전문요원을 배치하도록 한 계획도 제대로 이행을 하지 않았고요. 게다가 지난 2월 국무총리실이 규제를 개혁한다는 이유로 기록관리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몇 가지 내용이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게 기록물 폐기와 기록관리 전문요원 배치와 관련한 것입니다.”

우선 기록물 폐기 부분은 보존기간이 1년이나 3년 정도로 짧은 기록물일 경우 폐기심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기관에서 임의로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조항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 철회됐다.

정부가 왜 폐기 절차를 완화하려 했고, 그럴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마 행정편의주의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 같아요. 거기에 해당하는 기록물이 많고 그것을 일일이 폐기심의회의 심의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계속 남겨놨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기록은 보존기간을 1년이나 3년으로 책정해놓고 생산부서에서 폐기해버리는 겁니다. 능히 그럴 소지가 있다는 게 최근의 총리실 사건에서 증명이 된 것이죠.”

기록을 폐기하거나 관리를 제대로 안 했을 때 국민 입장에서 어떤 피해가 따릅니까.
“소송이 걸리면 증거자료가 없어서 패하는 거죠.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과정을 담은 기록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제금융을 신청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기록도 정확히 남아 있지 않아요. 나중에 보수를 할 때 경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게 되죠. 이번 총리실 민간인 사찰도 그렇습니다. 김종익씨 한 명만 사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그런데 관련된 기록을 담은 하드디스크를 파기했기 때문에 밝혀낼 수가 없는 거예요.”

현행 기록관리법에도 무단 폐기는 7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라고 합니다. 그동안에도 많은 위반 사례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처벌받은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이번 총리실 하드디스크 파기 사건도 ‘기물손괴죄’인가로 처벌한다고 하지, 기록 무단폐기 혐의로는 검찰이 수사를 안 하고 있어요. 검찰이 적극적인 의지를 안 갖고 있습니다.”

기록전문가협회가 만들어졌으니까 협회 이름으로 고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업무가 남을 고발하는 것부터 시작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하더라도 재정신청 같은 걸 할 수 있거든요. 협회가 생긴 이상 (총리실 사례와 같은) 기록물의 무단 폐기나 파기를 좌시할 수 없죠.”

공교롭게도 이 대목에서 기록관리법 시행령의 두 번째 핵심 사안인 기록관리 전문요원 자격 문제가 결부된다.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기록전문가의 법적 용어다. 행정적으로는 2005년부터 배치된 기록연구사 직렬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석사급인 현행 기록연구사의 자격을 학사급으로 완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소연 교수가 한 마디 거들었다.

“법이 있더라도 대부분이 지키지 않는 상황이라면 처벌보다는 법의 시행을 유도하는 노력이 먼저입니다. 전문요원제도를 지키는 게 그래서 필요해요. 범죄자를 양산하는 법 집행보다는 법의 취지를 지키는 문화를 만들고, 의도적으로 법을 위배한 사람을 벌 줄 수 있는 문화가 정착할 때까지 그것을 자기 삶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전문요원이 부서마다 들어가서 감시견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프로와 아마추어의 다른 점은 실력 차이뿐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의식과 직업윤리에 얼마나 철저한가에도 근거할 것이다. 기록전문가협회의 창립선언문에도 ‘기록의 과학적 관리와 보존은 시대적 과제’ ‘신망받는 기록관리의 실천자’ ‘기록과학의 성과를 역사에 새길 것’ 등 이와 관련한 문구가 담겨 있다. 안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록전문가는 어떤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까.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듯이 아키비스트는 기록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수호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사람이죠. 기록이라는 건 대단히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생산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하고, 생산한 것을 은폐하거나 폐기하려고 하는 유혹을 많이 느끼거든요. 과거 사관(史官)이 목숨을 걸고 실록을 지켰듯이 아키비스트도 외부, 심지어 위로부터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기록을 지키고 그 가치의 수호를 위해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런 기록을 시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공개하는 일도 해야 하고요.”

안 교수는 1998년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직을 맡으면서 기록학과 인연을 맺었다. 국가기록연구원에서 그는 역사학계와 함께 현대적 기록관리제도의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관리법 제정을 선도했다. 2004년부터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 참여해 기록관리 혁신 업무를 총괄했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기록관리제도가 대부분 그때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는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조선시대 사관은 임금의 명령도 거부하고 임금 또한 그런 사관의 뜻을 존중해주었는데, 현대판 사관이라고 하는 기록연구사가 처한 위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기록관리는 민주주의 수호의 기본으로서, 가치적인 측면에서 중립성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찬성만이 아니라 반대의 기록까지 모두 보호해야 합니다. 국정 방침에 어긋나는 기록은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생산하더라도 자기네끼리 보고 없애버리면 안 되는 거죠. 이런 게 기록연구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낮은 신분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해나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직 기록연구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5년 전 주로 젊은 여성이 6급 상당의 직급으로 중앙부처에 처음 들어갔어요. 낮은 직급에다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것은 물론 공무원 인식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부처 전체의 기록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기록관리가 뭐냐, 문서수발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말하고선 ‘문서수발할 게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예비군 업무도 시키고 주차장 배차관리 업무도 시키고 심지어는 국회 국정감사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님 맞는 일까지 하라고 했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막 울어요. 5년 동안 틀이 많이 잡히긴 했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안 교수는 조선 태종 때 사관 임인생에 얽힌 얘기를 했다. 당시 사관은 정전에만 입시할 수 있었다. 태종은 정전에서는 조회나 큰 행사만 하고 대부분의 정무를 편전에서 보았다. 임인생은 편전에 입시하려다 거부당했다. 그는 밖에서 엿들어서 적다가 발각됐다. 그는 처벌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사관이 편전에도 입시하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나 정착됐다. 이처럼 기록관리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 과도기에 있는 만큼 기록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격에 비해 기록문화의 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경제나 환경, 부패 등의 분야처럼 기록관리 수준에 대한 국제적인 지표가 있습니까.
“그런 게 나와 있는 건 없는데, 기록관리 측면에서 보면 국격이 자꾸 떨어지고 있죠. 인권이나 기록관리,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같이 갑니다.”

이제 글머리에 언급한 레이건 저격범의 대출 기록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살펴볼 준비가 충분히 됐을 것이다. 사서의 윤리규약 중에는 도서관 이용자의 개인 신상정보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출기록 등을 내주지 않겠다는 서약이 포함돼 있다. 과연 도서관의 사서 한 사람이 그 기록을 지킬 수 있었을까. 이소연 교수가 답을 주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사서가 (그런 요구가 있다는 사실을) 미국도서관협회에다 제보를 했어요. 도서관협회는 그 문제에 대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 관련 단체와 공동 대응을 했어요. 기록전문가협회의 존재 이유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이 그런 것 아니겠어요?”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