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보수세력의 ‘사법부 흔들기’ 총공세

최근 일련의 판결에 위기감 느낀 정부·여당 법원 장악 나서

최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을 일련의 법원 판결에 대한 검찰 등 여권의 반발 정도로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이는 마치 대규모 전쟁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만 국지전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서울 마포에 있는 서부지법·서부지검 청사 안내소의 화살표가 점입가경으로 흐르는 법원과 검찰 간의 갈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김세구 기자

한나라당과 검찰, 보수언론, 보수단체의 대대적인 사법부 공격에는 몇가지 노림수가 있다. 배경은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 국정 운영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사법부 길들여야 정국운영 용이
<PD수첩>, 전교조 시국선언,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무죄 등 최근 잇달은 판결들은 이명박 정부 국정 운영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가했다. 지난해엔 촛불시위 관련 야간옥외지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판사가 위헌심판을 제청해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모두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동안 국정 장악과 여론 통제를 위해 반대 세력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밀어붙이던 핫 이슈다. 이런 시국사건이 하나 둘도 아니고 속속 사법부의 퇴짜를 맞으면서 집권 중반에 접어든 이명박 정권은 정치적 코너에 몰리게 됐다. 그동안 입만 열면 ‘법치’를 외쳐 온 정부·여당으로선 ‘사법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과 같은 최대 위기 상황을 맞은 것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도 전교조 교사와 전국공무원노조 공무원들의 시국선언, 철도노조 파업, 집시법 위반 사건 등 민감한 시국사건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검찰은 전교조 ‘1차 시국선언’ ‘2차 시국선언’을 주도한 간부 100여 명을 기소해 놓은 상태다. 이 가운데 지난 19일 전주지법에서 전교조 전북지부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첫 판결이 나왔으며, 앞으로 지방법원별로 선고가 줄을 잇게 된다. 또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기소된 간부 6명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르면 3월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소송 결과가 나올 예정이고, 세종시 원주민들의 토지환매청구 소송도 예상된다. 모두 판결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여당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의 절반이 훨씬 넘는 169석을 차지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방송은 우군화에 성공했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지원은 천군만마처럼 든든한 상태다. 과거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국가인권위나 각종 과거사위는 보수 인사로 갈아치웠으며, 시민단체마저 정부 지원금을 무기로 어느 정도 재갈을 물려 놓는 데 성공했다. 검찰과 경찰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집권층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속된 말로 집안에 걱정이라고는 없는 상황에 마지막 남은 단 한 곳, 사법부가 이처럼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만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법원을 잡지 않고서는 남은 임기 3년간 정국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3심제를 두고 있는 나라에서 1심 판결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담당 판사의 이력을 뒤지고 법원을 싸잡아 매도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지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야당과 시민단체, 진보언론도 다 제쳤다고 생각하는데 판사들만 뜻대로 안되는 데 대해 심한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정국 국면전환 겨냥 측면도
‘국회 폭력’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무죄 선고는 위기의 여권에 반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우리로선 강기갑 무죄 판결이 구세주였다. 사실 정연주 전 사장, 미네르바, 전교조, <PD수첩>의 무죄에 대해서는 우리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강기갑 폭력사건은 좀 다르지 않은가. 강기갑 무죄가 나와서 다른 것들을 물타기할 수 있는 찬스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 |연합뉴스

물론 이들도 사법부 흔들기가 다소 무리이고, 사법권 독립 침해라는 비판에 맞서기에는 명분 없는 싸움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택한 공격이 색깔 공세를 통한 좌·우 간 이념 대결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좌파 판사들을 양성해 놓았다는 논리로 이용훈 대법원장과 ‘우리법연구회’를 타깃으로 삼는 것이다. “좌편향, 불공정 사법 사태를 초래한 이 대법원장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안상수 원내대표), “우리법연구회는 좌파 성향 판사들이 모여 만든 과거 군대 내 ‘하나회’ 같은 사조직”(사법제도개선특위 이주영 위원장)…. 한나라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법부 공격이 일사불란하게 ‘과거 정부 잔재 청산’에 맞춰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원 공격의 초점을 과거 정부→좌파→우리법연구회로 설정해 궁극적인 구도를 ‘이명박 정부 대 잃어버린 10년’으로 세우겠다는 의도다. 이미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효능이 입증된 바 있는 효자상품이다.

사실 <PD수첩>, 전교조, 미네르바, 정연주 전 사장 등 정작 민감한 시국사건 판결을 내린 판사 가운데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한 명도 없다. 우리법연구회 판사가 관련된 것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결정뿐이다. 그러나 이런 팩트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맞춰진 구도에 따라 밀어붙일 뿐이요, 보수언론은 선봉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다.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사법권 독립 침해’ 운운하며 침묵하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보수 세력의 ‘법원 때리기’는 발등의 불을 끄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종시 정국의 국면 전환을 노린 측면도 있다. 극심한 당내 분열만 드러낸 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종시 문제를 희석시키고 눈길을 다른 이슈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좌와 우, 보수와 진보 구도만 만들어 놓으면 세종시법 수정안을 놓고 친박대 친이, 서울과 지방으로 사분오열 찢겨진 지지층을 6월 지방선거 전에 재결집시킬 수 있다. 이미 보수세력의 결집 양상은 확연히 감지되고 있다. 위기 국면 타개는 물론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의 이른바 ‘사법 수술’은 거침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내에선 5~10년차 법관이 맡고 있는 단독판사를 부장판사 이상이 맡도록 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아예 단독판사가 아니라 합의부에 배당하는 방안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법원조직법에 사조직을 금지하는 방향의 입법 조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권으로 사법부를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3권 분립의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법권 침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사법부 장악이 뜻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군사독재 시절을 방불케 하는 무리한 사법 간섭은 거센 역풍을 맞을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작업이 하나 둘 구체화될 때마다 사회는 또다시 뜨거운 격랑에 휩쓸릴 것이다.

<박래용 경향신문 논설위원 le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