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원순 손배소, 표현의 자유 제약”

대표적 보수 법학자 이상돈 교수, “소송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특정한 공직자도 아니고 정부가 자연인으로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명예훼손 소송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

<김정근 기자>

보수 성향의 법학자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정부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거액의 손배소를 제기한 것과 관련, “소송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법적 절차를 무시하며 진행하고 있으므로 소송으로 가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미국 뉴올리언스의 튤레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부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가 훼손됐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소송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재판 이전에 각하될 수도 있다. 각하되지 않으면 심리 과정에서 진실게임 양상이 벌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언론의 보도에 대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면 언론중재신청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왔다.”

이번 사태는 박 이사가 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이 시민단체와 사업하는 금융기관 등에 압력을 넣어 무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국정원이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소송을 한 것인데, 법적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보는가.
“특정한 공직자도 아니고 정부가 자연인으로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명예훼손 소송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 명예훼손은 주로 자연인, 즉 민간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소송이 아니고서는 회복할 수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동안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미국 CIA가 연루됐다고 주장하는 책이 무수히 나왔지만 CIA나 미국 정부가 책의 저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기거나 축소되고 있다. 반면에 뉴라이트 등 보수적 시민 단체들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말이 무성하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이 늘었고, 노무현 정부 때도 시민단체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통틀어 기본적으로 시민·사회 단체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치권이나 정부에 로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치적 행위다. 정부로부터 돈을 받은 단체는 정부의 정책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세제 혜택을 받는 단체는 절대로 로비를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런 단체는 연구활동과 봉사활동만 하도록 돼 있다.”

정부, 그 중에서도 정보기관이 소송을 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국정원은)원래는 미국의 CIA, 영국의 MI6 같은 조직이 돼야 한다. 박원순 이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원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법원에서 그런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파장은 더 클 것이다. 또한 정보기관은 소송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보기관은 자기가 하는 것을 비밀리에 하고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한다. 소송 과정에서 정보기관의 업무가 드러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번 소송에 대해 일각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밖에 없다. 영어에 ‘칠링 이펙트’라는 말이 있는데, 예를 들어 언론의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이 남발되면 해당 언론사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까지 위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인들은 기사를 내보내기 전에 우선 자기검열을 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그 사회는 막힌 사회가 되는 것이다.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경우도 언론이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기사화했기 때문에 닉슨 대통령이 임기 도중에 사임했다.”

9·3개각 인사들에 대한 청문회가 한창이다. 위장전입, 세금 탈루, 논문 중복 게재 등의 문제가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 법과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미국에서는 위장전입을 했다가 발각되면 중대한 범죄로 인식된다. 또 미국인들은 위장전입자를 보면 즉각 신고한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때에는 법무장관 지명 과정에서 불법 이민노동자를 가정부로 고용했다는 이유로 내정자 두 명이 잇달아 낙마하기도 했다. 이민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이 사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법무장관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했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이명박 정부 연착륙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처음에는 보통사람이 볼 때 이미지가 좋았는데 이제는 정 총리 후보자의 이미지가 회복될 수 없다. 정 총리 후보자가 중도층과 충청권을 껴안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애초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소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정 총리 후보자는 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 총리같이 자기만의 어젠더를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시 이회창 총리는 비록 4개월밖에 재임하지 않았지만 자기 어젠더를 만들고 나왔다.”

여권의 대선 후보를 다자구조로 만들기 위해 ‘정운찬 총리 카드’를 뽑아든 것 아닌가.
“여권의 의도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들어와 대선 후보의 다자구도를 만든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문회 때부터 실패해 더 이상 그것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할 확률과 비슷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4대강 사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이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하는가.
“이 대통령의 자존심 내지는 아집이다. ４대강 사업은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소송하면 중지시킬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당시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을 뚫을 때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과 절차를 지켰다. 하지만 현 정부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있다. 4대강 사업은 국가재정법, 하천법, 환경정책기본법 등 3개 법률에서 정한 절차를 무시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을 하면 모두 이길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개헌, 선거구제 및 행정구역 개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개헌은 이 대통령이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 개헌, 선거구제 및 행정구역 개편은 매우 큰 이슈다. 즉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이 말했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너무 큰 어젠더들이기 때문에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이런 논의들은 낭비적이라고 생각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